울산 중구ㅡ고복수길·똑딱길·맨발의 청춘길…7080 추억을 소환하다
▲울산 중구 문화의 거리에 세워진 ‘울산 큰애기’ 캐릭터 조형물. 중구 구도심의 명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울산 큰애기 캐릭터는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지역 공공 캐릭터로는 드물게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압축성장의 시간 켜켜이 쌓인 울산 - 1
우리나라 최대의 공업 도시 울산. 그곳에서 울주의 영남 알프스 산군(山群)이나 태화강 상류의 반구대암각화, 간절곶과 대왕암 같은 내로라하는 관광 명소를 다 빼고, 공업 도시의 심장이었던 골목길을 여행합니다. 공업 도시는, 사실 여행의 즐거움과는 가장 멀어 보입니다.
오죽했으면 울산을 ‘노잼 도시’란 별명으로 불렀겠습니까. 하지만 울산에는 최빈국에서 시작해 압축 성장의 견인차로 성장하기까지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울산만의 풍경입니다. 울산의 시간에는 어려웠던 시절의 희망, 성취감과 자부심, 아련한 추억이 골고루 버무려져 있습니다.
울산의 도심을 여행한다는 건, 그런 시간을 엿보는 일인데, 그 재미가 각별합니다. 인구 100만 명이 넘는 광역시의 덩치 때문인지 울산은 같은 도시여도 지역에 따라 저마다 다른 시간이 고여 있더군요.
울산 여행 얘기를 한 번에 다 하려 했는데, 줄줄이 딸려 나오는 이야기 앞에서 고민하다가 결국 두 번으로 나눠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주는 울산으로 가는 첫 번째 여행. ‘울산 큰애기’가 안내하는 중구로 떠나는 여정입니다.
-울산 큰애기’를 찾아라
60년대 히트가요 속 주인공
홍보캐릭터로 곳곳에 조형물
‘빨간원피스 입은 8급 공무원’
실존인물처럼 스토리도 부여
# 울산에는 ‘큰애기’가 있다
울산에는 ‘울산 큰애기’가 있다. 쇠락해가는 울산 구도심 상권을 살리기 위해 울산 중구청이 만든 캐릭터다. 캐릭터가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울산 큰애기란 누구일까. ‘가수 김상희’를 모르는 50대 이하에게 울산 큰애기는 그야말로 금시초문이겠다.
‘울산 큰애기’는 1965년에 히트한 가수 김상희의 노래 제목이자 노랫말의 주인공이다. 노래 가사가 이렇다. “내 이름은 경상도 울산 큰애기/ 상냥하고 복스런 울산 큰애기/ 서울 간 삼돌이가 편지를 보냈는데/ 서울에는 어여쁜 아가씨도 많지만/ 울산이라 큰애기 제일 좋대나/ 나도야 삼돌이가 제일 좋더라.” 돈 벌러 상경한 삼돌이가 서울에 가서도 일편단심 울산 큰애기만 생각한다는 내용이다.
노래 속의 ‘큰애기’란 젊은 여성을 뜻하기도 하고, 맏며느리를 부르는 호칭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하필 서울도 부산도 아닌 ‘울산’ 큰애기일까. 이 노래는 이미자의 ‘열아홉 순정’을 비롯해 ‘무너진 사랑탑’ ‘청포도 사랑’ ‘뉠리리맘보’ 등의 노래를 쓴 나화랑(본명 조광환)이 작곡했다.
김천 출신의 그는 대중문화인 최초로 태어난 집이 2020년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을 정도로 1950~1960년대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작곡가다. 자료에는 가사를 ‘탁소연’이 썼다고 돼 있는데, 탁소연은 다름 아닌 나화랑의 필명이다.
나화랑의 고향은 울산도 아니고, 살아본 적도 없다. 나화랑은 훗날 ‘울산에서 상경한 친척 아주머니에게서 들은 얘기를 노랫말로 옮겼다’고 했다. 곡조나 가사는 전혀 다르지만, ‘울산 큰애기’와 같은 제목의 노래가 한참 전에 또 있었다.
1943년 가수 황금심이 불러 대히트한 ‘울산 큰애기’다. 이 노래 원곡은 이보다 10년 전인 1933년에 나온 신민요 ‘울산 타령’이었다. 울산 타령 속 울산 큰애기는 인정도 많고, 사려 깊은 여성이다. 이런 이미지의 캐릭터가 대중음악으로 지금까지 이어오는 셈이다.
# 울산 큰애기의 8급 공무원 승진
울산 곳곳에는 울산 큰애기 캐릭터가 인형으로 세워져 있다. 시장에도, 골목에도, 상가 앞에도 새침한 표정의 빨간 원피스를 입은 울산 큰애기 캐릭터가 있다. 울산 중구의 구도심 여행은 이 캐릭터가 안내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도심 골목을 천천히 돌아보며 캐릭터 인형의 위치를 기록하고 수를 세기 시작했는데, 금방 스무 개가 넘는 바람에 의미 없다 싶어서 포기했다.
중구청에서 만든 캐릭터를 울산광역시가 가져다 쓰면서, 울산 큰애기는 이제 중구의 경계를 벗어나 시내 전역에 출몰하기 시작했다. 숫자도 당연히 크게 늘었으며 존재감도 커졌다. 태화강 국가정원에 지난 4월 세워진 울산 큰애기 조형물은 키가 2.8m나 된다.
울산 큰애기 캐릭터에는 실존 인물처럼 나이와 성격, 직업 등의 스토리도 부여됐다. 중구 반구동에 사는 20대 여성이며 키는 160㎝ 중반. 배춧국을 좋아하고 머리핀과 원피스를 즐겨 입는다. 친절하고 새침하며 도도하고 적극적이다.
취미는 관광객과 사진 찍기와 태화강 변에서 자전거 타기. 직업은 중구청 소속 8급 공무원. 오랜 백수 생활을 거쳐 2017년 봄에 9급 공무원으로 임용됐다가 3년 만인 2020년 승진했다. 지금 맡은 업무는 ‘울산시 특별홍보주무관’이다.
▲청춘 고복수길’ 골목에 세워진 가수 고복수 동상.
# 노래로 집단 기억을 공유하다
울산 큰애기는 지역 공공 캐릭터로는 드물게 성공한 케이스라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평가는 박하다. 특히 외지인의 경우는 더 그렇다. 외지에서 온 젊은 여행자들에게 물었더니 여러 명에게서 이런 대답이 나왔다. ‘대박(?) 촌스럽다’. 그런데도 울산광역시나 중구청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울산 큰애기의 존재가 울산에는 그저 한 곡의 대중가요 차원을 넘는 것이어서 그렇다.
노래 ‘울산 큰애기’가 히트한 1965년 무렵은, 공업 도시로 지정된 울산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때였다. 공장이 속속 들어서면서 일자리를 찾아 전국에서 외지인이 쏟아져 들어왔고 울산의 경기는 흥청거렸다. 커피에 달걀을 타주는 이른바 ‘모닝커피’가 유행했고, 술집과 여관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중앙호텔 앞에 ‘홍콩 비어홀’이 들어섰고, 옥교동 미나리카바레 인근에 ‘미광 통술집’이 문을 열었으며, 중앙시장 앞에는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장식한 ‘동경 비어홀’이 성업하던 무렵이었다.
‘울산 큰애기’ 노래는 울산 시민들이 모두 다 미래에 대한 기대로 흥청거리던 그 무렵에 나왔다. 그때도 어디 좋았던 일만 있었을까. 성공에 대한 희망과 함께 열심히 일했지만 너나없이 다들 가난했던 시절의 추억과 회한이 이 노래의 배경이다.
울산에는 토박이가 드물다. 대부분 압축 성장 시기에 이주해왔다. ‘울산 큰애기’ 노래는 이들이 ‘울산 사람’으로서 집단 기억을 공유하기 시작할 즈음에 나왔다. 울산 사람들이 울산 큰애기에 각별한 이유다. 이 지점이야말로 ‘울산 큰애기’ 캐릭터의 진정한 가치다.
-‘이야기路’에서 시간여행
돔 닮은 시계탑은 공업화 상징
보세거리·100년 된 시장 지나
이소룡 벽화 골목길 등 인상적
▲맨발의 청춘길'의 건물 외벽에 그려진 홍콩 액션 배우 이소룡 벽화.
# 울산의 추억을 따라 걷는 길
울산 중구의 원도심을 잘 볼 수 있는 걷기 여행 코스가 있다. 울산 큰애기 캐릭터를 앞세운 ‘울산 큰애기 이야기로(路)’다. 길은 구도심을 누비며 근현대의 이야기가 스며 있는 곳들을 두루 들른다. 3개 코스의 길을 다 해봐야 4.5㎞ 남짓이니, 코스를 구분할 것 없이 그냥 다 걷기로 하고 운동화 끈을 매는 게 좋겠다.
느긋하게 걸어도 서너 시간이면 다 둘러볼 수 있다. 길은 도심의 골목을 누비며 울산의 과거가 새겨진 구도심 명소 곳곳으로 데려다주는데, 아쉽게도 압축 성장 과정을 거치면서 사라진 곳이 많아서 온전히 남아있는 과거가 그리 많지는 않다.
출발 지점은 문화의 거리에 있는 ‘울산 큰애기집’이다. 1층은 관광안내소이자 기념품 판매점을 겸하는데 여기서 걷기 코스 지도를 받을 수 있다. 2층에는 ‘울산 큰애기집’이 있다. 핑크색 벽지와 침대 등을 놓아두고 ‘울산 큰애기가 사는 방’을 구현해 놓았다.
다소 억지스럽고 유치해 보였지만, 관광객들의 사진 촬영 장소로는 나쁘지 않아 보였다. 3층에는 개화기 복고풍 복장 등으로 갈아입고 다양한 배경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이팔청춘 사진관’이 있다.
중구 원도심의 상징은 뭐니 뭐니 해도 문화의 거리와 학성로가 열 십(十) 자로 만나는 교차로에 있는 시계탑이다. 1967년 라이온스클럽이 울산의 공업화를 기념하기 위해 기증한 시계탑은, 처음에는 철제 아치에 대형 시계를 매단 형태였다. 1977년 원활한 교통 통행을 이유로 철거됐다가 시계탑 복원 민원이 쇄도하자 다시 만들었다.
1998년에 새로 만들고 2015년에 고쳐 지은 지금의 시계탑은 돔을 닮은 왕관 형태다. 매시 정각이면 다섯 량의 객차를 매단 모형 기차가 기적을 울리며 왕관 모양의 테두리를 달린다.
걷기 코스는 원도심 곳곳을 누빈다. 1984년 문을 연 울산의 첫 토종 백화점 ‘주리원백화점’이 있었던 성남동 ‘젊음의 거리’를 지나고, 옷 가게와 미장원 이불집, 신발 가게가 늘어선 ‘보세거리’도 지나고, 올해로 꼭 100년이 된 울산에서 가장 큰 상설시장인 중앙전통시장 주변의 곰장어골목이나 분식거리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원도심에 여태 남아있는 오래된 상점은 드물다. 울산 사람들이 선명하게 기억하는 원도심을 추억하는 공간은 ‘다방’이었다. ‘가로수다방’ ‘명다방’ ‘신천지’…. 지금은 다 사라졌고 상호만 전설처럼 전해지는 곳들이다. 상인들 중에는 ‘좋았던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이 적잖다.
영화관 ‘메가박스’ 맞은편 골목 귀퉁이 점포의 모자 가게 ‘삼천사’에서 43년째 좌판을 깔고 장사를 하고 있는 전충웅(79) 씨도 그중 하나다. 전 씨는 “1980년대 이 일대는 하루 종일 인파로 떠밀려 다녔다”며 “카세트 녹음기와 라디오, 면도기 등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던 시절이었다”고 했다.
무료하게 좌판을 지키던 그는 “지금이야 집에서 쉬는 것보다 낫지 싶어서 나오는데 하루 일당도 못 챙겨 가는 날이 허다하다”며 웃었다.
▲청춘 고복수길’ 골목길의 담에 걸어놓은 ‘조선악극단’ 사진. 고복수는 1930년대 중반부터 최고의 전속 가수들로만
선발된 조선악극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 ‘타향살이’ 가수 고복수의 고향
‘울산 큰애기 이야기로’ 뒤편에는 별책부록 같은 3개의 짧은 골목이 있다. 성큼성큼 걸으면 금방 다 걷는 짧은 골목들이다. ‘청춘 고복수길’과 ‘똑딱길’, 그리고 ‘맨발의 청춘길’이다. 세 골목 모두 다 몰락해가는 구도심을 도시 재생으로 다듬은 곳이다.
청춘 고복수길은 울산 출신 ‘타향살이’의 가수 고복수를 기리는 골목이다. 골목은 고복수의 사진과 조형물 등으로 장식됐는데, 골목 중심에 2층 주택을 개조해 만든 ‘고복수 음악관’이 있다. 마당에 동상과 노래비가 있고, 전시실에는 흉상과 몇 개의 유품, 옛 축음기와 진공관 라디오를 비롯한 당시 물건을 진열해 두었다.
인상적이었던 건 그 시절 축음기에다 복각한 레코드판을 올려놓고 들은 고복수의 노래 ‘타향살이’였다. 지글거리는 잡음 속에서 흐릿하게 ‘타향살이 몇 해던가…’ 하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음악관이 들어선 곳이 고복수의 생가인가 싶었는데, 그가 태어난 곳은 여기 성남동이 아니라 좀 떨어진 병영동이다. 별 연고 없는 자리에다 음악관을 세웠던 건 순전히 쇠락한 구도심 상권 부활을 위한 것이었다.
뭐 그렇다고 고복수가 구도심과 인연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성남동 뉴코아아울렛 자리에 6·25전쟁 직후에는 목재 창고가 있었다. 공연장으로 자주 사용된 곳인데 이곳에서 고복수가 여러 번 공연을 했다.
고복수의 생전 사진과 벽화 등으로 단장된 청춘 고복수길은 ‘똑딱길’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똑딱길은 산업화의 역군인 7080세대를 위로하고 그들의 과거를 돌아본다는 의미로 조성된 도시 재생 골목이다.
누추한 옛 골목에다 타일 조각을 붙이고 벽화를 그려 넣었다. ‘똑딱’이란 길 이름은 바지런한 시계 소리에서 가져온 것이다.
‘맨발의 청춘길’은 성남동 ‘젊음의 거리’의 뒷골목이다. 울산이 급격한 공업화와 도시화 과정을 겪던 무렵에 청년 시절을 보낸 7080세대들의 추억을 주제로 꾸민 골목이다.
벽화 몇 개와 조형물 몇 개가 고작이어서 그다지 볼 건 없지만, 쇠락하고 누추한 뒷골목이 가진 분위기가 저절로 추억을 환기한다. 골목의 건물 외벽에 그려진 이소룡 벽화가 인상적이다.
▲공업 도시 울산의 상징과도 같은 공업탑.
# 모던 록 밴드가 노래한 공업탑 이야기
울산과 관련된 또 한 곡의 노래와 가수 얘기. 이번에는 요즘 노래다. 모던 록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 ‘공업탑’이다. 읊조리는 듯한 가사와 나른한 목소리가 매력적인 노래다. 노래 제목인 공업탑은 울산에 있다.
정식 명칭은 ‘울산공업센터 건립 기념탑’이다. 1962년 울산이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되고 울산 공업센터가 조성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5년 뒤인 1967년에 세워졌다. 공업탑은 차들이 물결처럼 흘러다니는 거대한 로터리 한가운데 섬처럼 서 있다.
공업탑이 기념하는 울산 특정공업지구 지정은 도시의 역사를 말 그대로 송두리째 바꿨다. 상전벽해도 그런 상전벽해가 없었다. 삼치나 고등어 따위를 잡던 바다가 메워져 정유공장이 들어섰고, 뒤를 이어 비료공장과 화학공장, 화력발전소가 잇따라 들어섰다.
그렇게 울산은 일약 석유화학, 자동차, 조선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국내 최대 중화학공업단지가 됐다. 그 시작을 알리는 기념물인 공업탑이야말로, 도시의 발전 차원을 넘어 국가 경제를 어깨에 메고 걸어갔던 울산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울산공업센터 건립을 기념하는 공업탑이 세워진 1967년은 제1차 경제개발계획이 성공리에 끝나고, 2차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된 해다. 공업탑에 새겨놓은 공업센터 건립 치사문이 뭉클하다.
“4000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 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곳 울산을 찾아 여기에 신생 공업 도시를 건설하기로 하였습니다.” 공업센터가 착공된 1962년 우리나라는 1인 국민소득이 70달러 남짓에 불과한 세계 최빈국이었다. 너나없이 절대 빈곤의 고통에 허덕이던 시절이었다.
▲울산 중구 구도심 사거리의 왕관 모양 시계탑.
# 도시의 정체성을 찾아서…
다시 노래 ‘공업탑’ 얘기로 돌아가자. 노래 제목은 울산의 공업탑에서 가져다 쓴 것이다. 브로콜리너마저에서 키보드와 보컬을 맡은 멤버 잔디가 울산이 고향이다. 공업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울산여고를 졸업했다. 그런데 노래는 공업탑의 역사적 의미 따위에는 티끌만 한 관심도 없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경험하지 못한 시간과 공간에 공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가사를 보자. “돌고 돌고 돌고 돌아/ 다시 여기로/ 돌아오라고 했지/ ‘여전하네’ 하고 난 웃었지만/ 참 많이 많이 달라진 우리….” 노래에서 공업탑은 회전하는 로터리일 따름이다. 공업탑 로터리는 쳇바퀴 돌듯 하는 연인과의 관계로 은유한다. 땀과 눈물로 지어진 공업탑 얘기가 아니라, 회전교차로가 불러낸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공업탑을 해독하는 세대 간의 차이는, ‘울산 큰애기’에 대한 세대 간 반응이 다르듯,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이런 간극을 유심히 살피는 것이야말로 울산을 여행하는 가장 흥미로운 방법이다. 인구 8만의 작은 신흥 도시가 국가 경제발전의 무거운 짐을 지고 60년의 세월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공업’만으로는 이제 도시의 당위나 정체성을 설명하지 못하는 시대. 그렇다면 세대 구분 없이 구성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울산의 정체성은 이제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이런 이야기는 비단 도시에 국한하지 않는다.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걸 가장 자랑스러운 트로피로 여기는 기성세대의 정체성도 비슷하다. 그렇다면, 울산 여행을 통해 가끔 뒤돌아보는 법을 배우게 될지도 모르겠다. 중년 이상의 세대들에게 울산 중구로 떠나는 도시 여행을 권하는 이유다.
▲젊음의 거리’에서 43년째 문을 열고 있는 모자 가게 ‘삼천사’.
■대표 맛집- 4대째 육회비빔밥‘함양집’ 두툼한 일본식‘복산돈까스’
울산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식당이 ‘함양집’이다. 육회비빔밥을 전문으로 하는 곳인데, 1924년 개업했으니 100년이 코앞이다. 맏딸에서 아들로, 다시 둘째 딸로 4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받았다. 신선한 한우 육회와 엿기름으로 직접 담근 찹쌀고추장이 맛의 비결이다.
함께 나오는 소고기뭇국도 깊은 맛이 있다. 울산 시내에만 6개 지점이 있을 정도로 울산 시민의 사랑을 받는다. 경주에도 지점이 있는데, 웬만한 인내심으로는 맛볼 수 없을 정도로 대기 줄이 길다. 2시간 정도 기다리는 건 예사. 그러니 원조인 울산의 함양집에 가면 뭔가 큰 이득을 보는 느낌이다.
두툼한 일본식 돈가스를 내는 복산동의 ‘복산돈까스’도 울산을 대표하는 맛집이다. 대기 손님을 위해 가게 맞은편에 점포 하나를 더 쓰고 있을 정도이니 말 다 했다. 제주와 지리산에서 자란 흑돼지를 쓰는데, 안심돈가스에는 트러플 오일과 핑크소금을 곁들여주고, 경양식 돈가스에는 마늘 드레싱과 돈가스 소스를 함께 낸다.
바삭한 새우튀김을 올려 내는 소바도 인기 메뉴다. 가게 이곳저곳에 붙여둔 안내문들이 유머러스하다. 원산지를 표시하면서 새우는 ‘강대국 베트남산’이고, 고춧가루는 ‘물이 맑은 중국산’이라고 써놓았다.
성안동의 ‘태양칼국수’는 문을 연 지는 몇 해 되지 않지만, 빠르게 이름을 알린 맛집이다. 메뉴는 해물칼국수와 매운칼국수, 비빔국수, 콩국수. 여기에다 돈가스도 판다. 깻잎전과 고추튀김은 대부분 테이블이 함께 주문하는 곁들이 메뉴다.
여기도 주말에는 대기를 피할 수 없지만 평일 점심 피크 시간을 피해 가면 좀 낫다. 청춘 고복수길 인근에는 ‘상일상회’가 있다. 유리온실 스타일의 카페 겸 복합문화공간이다. 원도심 관광의 거점 공간이기도 하다. 채광 좋은 공간의 스마트 가든에서 식물들이 자라 초록 분위기도 좋고, 다양한 음료나 메뉴도 잘 갖추고 있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글.사진 출처 / munhwa.com / 울산 중구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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