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비치 로드ㅡ빛나는 땅, 빛나는 바다
▲17세기에 세워진 갈(갈레)의 등대
▲갈 포트 입구로 들어가면 시간의 흐름이 달라진다
성곽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시간의 흐름이 달라졌다.3km에 이르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갈(갈레) 포트(Galle Port)다. 오래된 도시에 오면 항상 그렇듯 차는 무용지물이 됐다. 성벽을 따라 휘휘 돌며 건성으로 이건 뭐, 저건 뭐를 외치던 가이드는 곧 주차를 하고 자유시간을 선언했다. 다행이었다.
▲인도양이 보이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한달 살이는 어떨까
흔히 ‘갈레’라고 표기하고, 현지인들은 거의 ‘골’에 가깝게 발음하는 갈은 스리랑카 남부 해안에 위치한 유네스코 세계 유산이다.중국을 왕래하던 페르시아 상인들이 즐겨 드나들었던 천혜의 항구 도시는 1505년 포르투갈 선단의 도착으로 식민지의 거점이 되었고, 1658년부터는 두 번째 침략자인 네덜란드의 건축술로 요새가 되었다.
1796년부터 세 번째 정복자가 된 영국이 콜롬보에 새로운 항구를 건설하기 전까지 갈(갈레)은 아시아 최대의 포르투갈 식민 요새로 200년 이상 전성기를 누린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 역사가 등대와 성곽, 주택, 교회, 시계탑 등으로 고스란히 남아 유산이 되었다. 여전한 아름다움도 함께.
▲흐드러진 그늘마다 쉼이 있다
자유시간 내내 그 골목을 누비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에코백을 사고, 방파제에 올라가 탁 트인 인도양을 오래 구경했다.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공통점은 지금 이 순간, 인생숏만이 전부라는 것. 남자아이들은 다이빙이 세상 제일 재미있는 오락이고, 그들보다 10년쯤 전 태어난 청년들은 용하게도 틈을 찾아 연인과 함께 애정행각 중이었다.
▲레게 머리의 그는 다이빙으로 방송에도 출연한 명사다
작은 요새지만 골목마다 크고 작은 박물관, 역사 유적들이 풍부하다. 갈 국립박물관, 갈 포트 국립해양박물관을 제치고 전통주택박물관에 잠시 들렀다. 흙과 돌에 조개와 산호를 개어 건축 재료로 쓴 집 정원에는 레이스를 짜거나 보석을 다듬는 장인들이 각자의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갈(갈레)은 언제나 로맨틱한 데이트 장소다
갈 요새에서 시간이 유난히 짧았던 이유를 나중에 알게 됐다. 휘발된 시간은 긴 회상을 위한 비축이었다.햇볕 가득한 인도양의 어느 날을 오래 간직할 수 있도록. 참, 스리랑카는 싱할라어로 ‘찬란하게 빛나는 섬’이라는 뜻이다.
▲벤토타에서 만난 아이들
여행을 처음 시작했던 콜롬보를 향해 다시 북상하는 여정에 접어들었다. 스리랑카 남서쪽 해안도로를 훑으며 올라가는 드라이브 코스다.나무와 건물 사이로 언뜻 바다가 보일 때마다 탄성이 나왔다. 이토록 완벽한 바다와 모래사장이라니. 게다가 한적하기까지 하다.
나서면 얼마나 뜨거울지 알면서도 몇 번이나 차 밖으로 뛰어나가고 싶었다.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 히피 서퍼들의 문화를 감지할 수 있었던 히카두와(Hikkaduwa)에서는 미래의 한 달 살기 계획을 위해 예산을 짤 지경이 되었다.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히카두와
그렇게 하루 종일 퇴적된 욕구불만을 한번에 풀어 준 곳이 벤토타(Bentota)와 베루왈라(Beruwala)였다. 서해안으로 흘러가는 벤토타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은 벤토타, 북쪽은 베루왈라다.숙소로 잡은 시나먼 베이 리조트는 베루왈라에 위치했다. 체크인을 하자마자 수영장을 건너뛰고 해변으로 나갔다.
기념품 상인과 보트 투어를 권하는 이들의 호객은 점잖았고, 거절을 반복하게 하지도 않았다. 파도의 끝을 밟으며 산책하는 사람들 너머로 히잡을 쓴 여인들도 밝게 해수욕을 즐겼다. 베루왈라는 스리랑카 최초의 무슬림 정착지로 그 역사가 1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슬림 정착지인 베루왈라의 해변
▲히카두와 어촌마을의 석양
해변을 따라 늘어선 크고 작은 리조트들은 울타리를 치고 있었지만 바다는 경계가 없었다. 남쪽으로 100여 미터만 걸어 내려갔을 뿐인데, 까끌거렸던 산호모래가 아주 부드러운 파우더 모래로 바뀌어 있었다.2박은 터무니없이 짧았다. 해변마다 모래도 파도도 다 다른데 말이다.
강 하구에 모래 사구로 형성된 벤토타의 해변들은 더 유명한데, 가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다시 부활하는 욕구불만을 가장 확실하게 누르는 것은 돌아가는 다음날로 예정되어 있는 귀국행 티켓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돌아가야 했다. 다시 오기 위해.
자료출처 / Travie 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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