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北漢山)ㅡ대성`남문, 문수봉, 승가봉, 사모바위, 비봉, 향로봉
파란하늘과 짙푸른 숲을 담은 정릉천은 싱그럽다. 며칠 전 내린 빗물은 정릉계곡(貞陵溪谷)의 바윌 내달리느라 신명이
났다. 청정물길에 자맥질하는 청둥오리와 두루미와 비둘기의 유려한 포퍼먼스에 사람들이 넋을 놓는다. 정릉천이 사랑받는 소이다. 자연을 아끼며 뭍 생명과 공존하는 지혜는 삶을 풍요롭게 한다
▲영취사대웅전
영취사를 휘두르는 된비알산길을 십 분쯤 오르면 조붓하고 평탄한 숲길은 팔부능선산책의 맛과 멋에 달뜨게 한다.칼바위능선이 수풀을 헤치고 다가서는 정취는 여길 통과하는 산님만의 특혜다.
대성문(大城門)이 언덕위북한산성으로 양날개짓하면서 하늘로 치솟나 싶다. 산국(山菊)화환을 두른 대성문루엔 많은 산님들이코로나19에서 해방된 듯 활달하다. 좋은 자린 여지가 없어 그냥 산성길을 오른다.
▲대성문
정오가 훨씬 지났다. 많은 산님들이 선점해 기갈(飢渴) 때울 장소가 마땅찮았다. 북한산성은 따라 문수봉을 향했다. 화창한 초가을햇살에 눈부신 화강암의 문수봉(文殊峰, 727m)은 산님들로 울긋불긋 성장(盛裝)했다.
인증 샷 하려 줄서고 있는 산님들 누구라도 신바람이 난듯 싶다. 코로나 팬데믹 세상에서 탈출한 밝은 얼굴들이라! 코로나19해방구는 북한산숲 헤치기 두 시간여면 들어설 수 있다.
▲문수봉
보현봉(普賢峰,714m)을 앞세운 형제봉능선과 비봉으로 치닫는 비봉능선의 화강암바위군상들이 양 날개처럼 뻗쳐만물상을 연출한다. 문수봉 턱밑 바위자락 석부작소나무에 의지해 배낭을 풀고 자릴 잡았다.
파란하늘을 가르는 보현봉 바위능선이 장엄하다. 45°기운 바위벼랑 아래 문수암이 검정기와차일을 치고 숨었다. 마음에 담는 멋진 풍광은 치유의 당의정이라.
▲문수봉눈깔로 본 똥바위
1109년(고려예종4년) 묵암(默庵) 탄연(坦然)이 여기 암굴에서 수도 중에 문수보살을 선몽하고 암자를 여니 문수암(文殊寺)이다. 그 문수암에서 영봉이름도 유래됐단다.
문수봉 우듬지의 두꺼비 모양의 바위에 올라 아들을 낳기를 기원하면 득남한다는 전설도 구전된다. 또한 초대대통령 이승만(李承晩)도 어머니가 문수암에서 백일기도를 하여 태어났단다. 하여 이승만은 1960년경 암자를 참배하고 ‘文殊庵’이라는 현판글씨를 남겼는데 요사에 걸려 있다.
▲문수봉에서 조망한 보현봉과 형제능선
의상능선과 비봉능선과 형제능선 만나는 문수봉은 거대한 수직 암봉(巖峰)으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해야 자릴 내준다
(동암문을 거치는 쉽게 에두르는 코스도 있긴 하다). 반시간쯤 문수봉을 깔고 앉아 신선이 된 기분에 빠져들었다.
승가봉을 향하는 문수봉 절애(絶崖)바위 타기는 난코스 중 난코스다. 수직에 가까운 암벽을 오직 자일에 의지해야한다.
이 험난한 코스를 오르는 많은 여성 산님들과 교차하면서 코로나19가 낳은 축복이려니 생각해 봤다.
▲문수봉에서 조망한 백운대영봉들
▲문수암벽 자일등로
갈 데가 마땅찮은 젊은이들의 해방구가 심신을 단련하는 산행이라는 걸 절감해서일 테다. 몇년 전까지 나의 산행동반자였던 L이 생각났다. 산을 어지간히 좋아한 그도 바위타길 다람쥐하듯 했다.
해찰 많은 나를 따르느라 언짢키도 했을 텐데 게의칠 안했다. 오늘 그도 산행 중일지 모르겠다. 이 북한산코스를 L과 함께라면 좋을 텐데~! 마음 속에 이쁘게 품은 사람은 평생의 동반자로 정서를 살찌운다.
▲문수암벽타기는 자일이 생명줄이다
▲문수봉단애에 서면 의상,용출,용혈,증취봉의 의상능선이 코 앞에 바짝 다가선다
휴일 서울근교의 산들은 끼리끼리 산님들로 넘쳐난다. 통천문을 통과하여 승가봉에 오른다. 승가봉僧伽峰)은 문수봉과 사모바위 사이의 높이567m 봉우리로 바로 아래에 신라 경덕왕 때(756년) 수태스님이 창건한 승가사(僧伽寺)에서 이름이 유래한다.
가파른 승가사 경내는 눈길 뺏는 볼거리가 많지만 뒤쪽 아찔한 계단 끝의 마애석가여래좌상을 참배하면 여래상단애 끝이 곧 승가봉임을 알 수 있다.
▲문수봉에서 조망한 승가봉과 똥바위
▲사모바위
높이560m비봉碑峰은 정상에 세워진 신라 진흥왕순수비에서 명칭을 땄다. 진흥왕이 555년 10월 북한산순행(巡行)시에
국경을 확정하고 11월에는 북한산인근의 여러 고을에 1년치 세금을 탕감해주고 죄수들을 사면하였다.
그 경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게 진흥왕순수비다. 김정희(金正喜)가 승가사에 참배했다가 비봉에 올라와 이끼가 덮인
비면(碑面)을 닦아내고 판독하여 진흥왕순수비임을 확인 한다.
▲비봉
현재의 비는 2006년의 복제비란다. 전에 정상에 두 번 올라섰다고 오늘은 그냥 서둘러 하산한다. 향로봉(香爐峰,535m)은 아예 출입금지구역이라 한 번도 실체를 본적도 없다.
봉우리 모양이 멀리서 보면 향로처럼 생겼다는데 울창한 수목에 가려져 여태껏 사진으로만 봐왔다. 언제 개방하는 날이 오겠지? 더 늙어지면 멍석 깔아줘도 못 올 텐데? 라고 싱거운 기우(杞憂)까지 해본다.
▲족두리봉
족두리모양 같다는 족두리봉(370m)은 독수리의 머리처럼 보인다 하여 수리봉 이라고도 한다. 거대한 암봉은 150m암벽을 올라야 정상을 내준다. 스릴 만점이다.
나는 그 동안 몇 차례 등정했기에 오늘은 그냥 하산키로 했다. 구기계곡을 따라 비봉탐방지원센터를 향한다. 깊고 험한 바위너덜 길은 여간 조심할 하산코스였다. 이북오도청에 잠시 눈길을 머물렀다.
▲의상봉능선
북한산(北漢山)이란 이름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등장한다. 백제 개로왕(132년)때 위례성 을 지키는 북방의 성으로 북한산성이 축성되었고, 백제의 북진정책의 요새로 북정군이 상주했다.
글다가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에 대항하려 백제는 신라와 나제동맹을 맺었는데 동맹이 깨지면서 삼국의 치열한 각축지역이 된다. 우리끼리 편가르기 하는 기질은 삼국시대부터 싹텄는지 모른다.
▲구기동계곡의 송림등로
북한산은 천해의 요새로 군사적 요충지였던 것이다. 그 북한산이 오늘날 서울의 허파역할과 심신치유 장소로써의 자랑스럽고 보배스런 진산이 됨이다.
세계의 유수한 수도 중에 서울처럼 멋진 산록을 병풍처럼 휘두른 데가 몇이나 될까? 북한산 없는 서울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테다. 이성계와 무학과 삼봉에게 새삼스레 경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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