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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아시아****국가들/⊙중국****화북지방

베이징(北京)ㅡ원명원(圓明園)ㅡ자금성의 5배 淸 황실 별궁 아편전쟁때 英.佛군이 파괴

by 삼수갑산 2022. 1. 12.

원명원(圓明園)

자금성의 5배 淸 황실 별궁 아편전쟁때 英.佛군이 파괴

▲ 청나라 황제의 별궁 원명원이 폐허가 된 모습(위)입니다. 최근 중국 정부가 기증받은 말머리 동상이 있던

원명원 서양루 해안당의 분수 그림(아래)을 보면 '정원중의정원'이라 불렸던 원명원의 화려함을 상상할 수 있어요.

 

18세기 淸 황제 강희제가 건축… 베르사유 궁전에 비견될 만큼 화려2차 아편전쟁 중 淸이 영국인 억류… 보복으로 사흘간 불태우고 파괴했죠 서구열강 약탈에 유물 150만점 반출… 현재 부서진채 보존돼 역사 상기시켜

 

지난 14일 청나라 황실 별궁이었던 원명원(圓明園)에 있던 말머리 동상이 150년 만에 중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동상은 청나라 때 원명원의 장춘원 서양루 해안당 밖의 십이지(十二支) 동물 머리로 만들어진 분수를 구성하는 중요 구조물이었는데 1860년 원명원이 약탈·파괴될 때 외국으로 유출됐어요.

 

말머리 동상은 지난 2007년 홍콩 소더비 경매를 앞두고 있었는데 마카오 카지노 재벌 스탠리 호(98)가 협상 끝에 경매 전에 약 82억원에 사들였다가 이번에 중국에 기증했습니다. 프랑스의 베르사유궁처럼 호화스럽고 면적이 자금성의 5배가 넘었다는 원명원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파괴되었을까요?

'정원 중의 정원'으로 불린 청나라 별궁

원명원은 베이징 서북쪽으로 8㎞쯤 떨어져 있던 별궁입니다. 1709년 청나라 황제 강희제가 훗날 옹정제가 되는 넷째 아들 윤진에게 선물로 하사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원명'은 '원만하게 널리 비추다'라는 뜻으로, 강희제가 직접 이름을 지었고 친필로 현판을 써 주기도 했어요. 이후 황위에 오른 옹정제와 그의 아들 건륭제는 원명원을 확장해 가꿔나갑니다.

 

특히 건륭제는 원명원의 동쪽에 장춘원, 동남쪽에 기춘원을 만들며 원명원을 대대적으로 넓혔어요. 원명원은 동서로 약 2.4㎞, 남북으로 약 1.9㎞ 펼쳐진 드넓은 공간이 됐어요. 인공호수, 정원, 중국 각 지방의 건축 양식을 모아놓은 건물과 서양식 건축물 등이 한데 어우러졌죠. 곳곳에 청 황실이 소장한 진귀한 보물, 도자기, 공예품이 전시됐고요.

 

특히 원명원의 장춘원 안에는 서양 양식의 건물과 정원을 꾸며놓은 '서양루'가 있었습니다. 서양루 해안당에는 자시(子時)에는 쥐머리 동상이 물을 뿜고, 오시(午時)에는 말머리 동상이 물을 뿜는 분수가 있었죠. 이번에 돌아온 말머리 동상은 바로 이 분수에 있던 겁니다. 서양루의 유럽식 건축과 조경은 유럽에서온 선교사와 화가 등이 담당해 설계했죠.

이 호화스러운 궁전과 정원이 결합된 별궁에서 황제들은 나라를 다스리고, 쉬고, 외국 사절단을 맞이했어요. 원명원의 별명은 만원지원(萬園之園), 즉 '정원 중의 정원'이라는 뜻이었죠. 18세기 말 원명원에 방문한 영국 사절 조지 매카트니는 "지상 최고의 경관에 완전히 매료돼 그 감동을 뭐라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고 했다고 합니다.

제2차 아편전쟁 중에 약탈

그렇지만 청나라가 서구 열강 앞에 무릎 꿇으면서 원명원은 졸지에 폐허로 변합니다. 1차 아편전쟁(1840~1842)에서 패한 청나라는 종이호랑이 신세가 됐어요. 영국과 프랑스 등은 청나라에 더 많은 이권을 요구하며 2차 아편전쟁(1856~1860)을 일으키죠.

1860년 영국과 프랑스는 베이징까지 병력을 진출시키고 조약 체결을 요구합니다. 조약 체결을 위해 영국 대표가 협상에 나섰고 영국인 기자도 취재하러 따라갔어요. 그런데 청나라 보수파가 이들을 억류하고 고문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영국과 프랑스군은 이 소식을 듣고 보복에 나섭니다.

 

바로 당시 청나라 황제 함풍제가 아끼던 원명원을 파괴하고 약탈하는 것이었죠. 영국과 프랑스군이 사흘에 걸쳐 원명원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서양루 해안당에 있던 분수의 십이지상도 이때 모두 사라졌고요.

 

원명원은 1900년 중국에서 의화단 운동이 일어나 열강 8개국 연합군이 의화단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약탈당하고 훼손됩니다. 중국은 150만점에 달하는 유물이 약탈당했다고 보고 있어요.

 

원명원을 찾으면 지금도 산산조각 난 건축물을 볼 수 있어요. 부서진 채로 보존되는 한때 '정원 중의 정원'은 중국인들에게 서구 열강에 침탈당하며 겪었던 수모를 상기시켜주는 역사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지요.

[英·佛 강도라 비판한 빅토르 위고… 중국이 원명원에 흉상 세워 칭송]

서구 열강에 의해 약탈당한 원명원에 2010년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흉상이 세워졌습니다. 어떤 사연일까요? 위고는 원명원 파괴 소식을 듣고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두 강도가 박물관을 부수고 물건을 약탈하고 그곳에 불을 지른 뒤 가방에 한가득 보물을 담아 손을 잡고 낄낄대며 나왔다.

 

한 강도의 이름은 영국이고, 다른 강도는 프랑스'라고 비판했습니다. 다른 편지에서는 '언젠가 프랑스가약탈한 것을 돌려주길 바란다'고 적기도 했어요. 중국 정부는 빅토르 위고를 '서양의 양심'이라고 생각해 흉상을 세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