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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국가들/⊙발칸반도*국가들

보스니아ㅡ모스타르(Mostar)ㅡ이슬람 터키거리에 사망연도가 같은 공동묘지!

by 삼수갑산 2022. 1. 19.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모스타르(Mostar)ㅡ이슬람 터키거리에 사망연도가 같은 공동묘지!

▲아침에 보스니아- 헤르쩨고비나 의 도시 모스타르 에서, 호텔에서 일어나 호텔에 딸린 주방에서 밥을 지어 먹고는밖으로 나와 골목 길을 걸어서 스타리 모스트 Stari Most 다리를 구경합니다

 

모스타르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남부에 있는 도시로 헤르체고비나네레트바칸톤의 주도이다. 네레트바강이 시내를 관통해서 흐른다. 16세기에 지은 다리 스타리모스트는 모스타르의 대표적 명소로 보스니아내전 때 파괴되었으나 새로 지어졌다. 옛 도시와 함께 2005년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문화유적이 풍부한 관광도시이다.

 

▲그러고는 기념품 가게 에 들러 텔레비전 에서 흘러나오는 내전시 크로아티아군의

폭격 으로 부숴져서 네레트바 강으로 떨어져 내리는 다리 파편을 봅니다.

 

▲다리 입구 돌비석 에 새겨진 “ Don't Forget '93" 이라는 글귀를 보고는 다리를 건너서

자그만 박물관 에 들러 지배자 오스만 터키인들의 모습과 다리 설계도 를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계단을 올라 이슬람 지구 로 들어가는데 2층 지붕이 날아가고

없는 어느 벽돌 건물 에 뚤린 무수히 많은 "총탄 자국" 을 발견합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Bosnia and Herzegovina) 는 7세기에 슬라브족

들이 남하해 터를 잡고 살면서 그리스정교 를 믿게되는 데...

이민족들의 지배 를 받다가 12세기에야 보스니아 왕국 을 세우게 됩니다.

 

▲1389년 동쪽 오스만 투르크 가 서쪽으로 진출해 코소보 전투 에서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를 비롯한

발칸의 기독교도 군대 를 격파하고 불가리아를 편입한 후 1453년 비잔틴을 멸망 시키고.....

보스니아 1463년에 그리고 여기 헤르쩨고비나는 1482년에 오스만투르크의 지배 를 받게됩니다.

 

▲1389년 6월 28일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 무라드1세 군대와 세르비아의 라자르공 이 주축인 기독교연합군은코소보에서 전투 를 벌이니 전날밤에 세르비아인이 적진에 침입해 술탄을 암살하면서 시작된 전투는기독교군의 승리로 끝난느듯 했으나 후계자 바예지드 1세는 대군을 결집해 결국 승리했고 이후 발칸반도는 400년간 이슬람의 지배하에 들어가는데 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암살한 날도 같은 6월 28일 입니다.

 

▲사라예보가 위치한 보스니아 와 이 도시 모스타르가 있는 헤르쩨고비나 는 오스만 터키에 의해 통합 되고 이어

이슬람 을 믿게 되었는데......

 

▲1878년 오스만 터키가 러시아에 패한후 1908년에 이러러서는 이 땅은 가톨릭 세력인 오스트리아에 병합 됩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해 비잔틴을 멸망시킨 오스만 터키는 1529년과 1628년 두차례나 서쪽으로 오스트리아 수도 빈을 포위 공격 했었는데 이젠 사정이 정반대로 바뀐 것입니다?

 

▲1529년 오스만 터키 쉴레이만 2세 12만 은 합스부르크군을 격파하고 헝가리를 집어삼키니 페르디난트대공은 형인 카를 5세에게 원군을 요청하는데 9월 말에 빈은 포위 되었고 3만 독일군은 공격을 받으니 성벽이 무느지자 오히려 반격에 나선 독일군의 역습에 터키군은 패퇴하고 보급 이 안되는지라 철수 합니다.

 

▲1683년 헝가리 개신교도들이 합스부르크제국에 반란을 일으켜 지원을 요청하자 오스만터키 카라 무스타파 파샤는 15만을 지휘해 7월에 빈을 포위 하는데 빈의 해자와 성벽은 엄청 견고 한지라 섣불리 공격하기보다는 말려죽이기 작전에 돌입 하니 2만 수비군은 버티는데 몇달후 독일과 폴란드군 8만명 이 구원오자터키군은 총공격으로 성벽을 무느뜨리나 폴란드군 기병대가 터키군 후위를 급습 하니 무느져서 철수 합니다.

 

▲1914년 오스트리아의 지배 하에 있던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 (Sarajevo) 에서 그리스 정교도 세르비아 청년 프란치프 에 의해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페르디난트 가 암살 되니..... 제1차 세계대전 의 발화점 이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뒤에 보스니아와 헤르쩨고비나는 유고슬라비아 에 속했으나티토 사후에 1992년 독립을 선언 하자 세르비아 군대 에 의해 450만 인구 중에 20만명이 인종청소로 학살 되고 180만명의 피난민 이 발생합니다.

 

▲지금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 라고 하는 나라는 국경이 복잡해 이슬람-크로아티아 연방 과 세르비아인들의 나라

스르프스카 공화국 의 연합체 입니다.

 

▲모두 합쳐서 460만에 불과한 인구는 이슬람계는 44% 이고... 그외에크로아티아계 17% 그리고 세르비아 인 31% 로 구성되어있으며 이슬람-크로아티아 연방 도 사실상 양분 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스타리 모스트 다리 를 건너 자갈이 깔린 보도를 걸어 Old Town 인 Stari Grad 로 들어서니 여긴 터키인들의 거리Kujundziluk 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건물은 한옥을 닮은 돌 기와집 으로 전통 공예품 이 많은데 짜이 라 불리는 터키식 커피 는 1마르크 한다지만 마침 파는 곳이 보이지를 않네요?

 

▲그리고 전통 공예점 앞에 있는 어느 기념품 가게 를 보자니 세상에나??? 일반 기념품에 뒤섞여 총알 까지 팔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기념품 가게들 이 늘어서 있는 거리를 걷는데 어제강 저편 기독교 지구의 기념품 가게들 과는 달리 여기

이슬람 지구 는 유난히도 구리 제품 이 많은 것을 봅니다.

 

▲장인들이 망치 를 들고 직접 두드려 만든 구리 제품 은 차를 따르는 주전자 와 벽 장식용 방패같은 큰 접시 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네요?

 

▲특히나 우리 눈길을 끄는 것은 시샤 라고 부르는 아랍식 물담배 파이프 기구 인데 몇년 전에시나이 반도 다합 에서 본 바 서양 여자 관광객들에게 더욱 인기 가 많았던 것을 떠올립니다.

 

▲강변에서 옛 우물 과 스타리 모스트 다리 며 이슬람 사원들 을 바라보고는 언덕으로 올라와 어느 이슬람 사원 에 들어섭니다.

 

▲코스키 메흐메드 파샤 모스크 (Koski Mehmed Pasha Mosque) 이슬람 사원 경내에 있는 공동 묘지 에 들러 줄지어 선 비석들 을 보노라니.....

 

▲묘지석에는 출생연도와 사망연도 가 적혀있는 데..... 1970 - 1993 이며 1973 - 1993 같은 묘비명 을 보자니 스무살 초입에 죽어간 젊은이들 을 떠올리게돼 슬픔 이 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이슬람 사원 구내에 마련된 묘지에는 사망 연도 가 유독 내전이 한창이던 1993년에 집중 되어 있는데에 전율 합니다!

 

▲이 거리에도 총탄자국 이 선명한 부숴진 집들 이 많이 보이는 데..... 돈이 없는 탓인지 그중에 일부만을 복구해 페인트칠 을 한 모습이 서로 부조화스러워 슬픔 을 자아냅니다.

 

▲모스타리 다리 주변 거리에서 보이는 여인들은 모두 이슬람 교도인 무슬림 들이라한결같이 차도르 를 썼는데....... 칼라가 아닌 검은색 일색 인게 흥미롭네요?

 

▲되돌아 걸어서 스타리 모스트 다리 입구 에 이르니 어제 밤에 맥주 를 마셨던 카페 가 보이는데 탁자에 파라솔이 코카콜라 라! 이제 이슬람까지 파고든 코카콜라 가 들어가지 못한 유일한 두 나라가 있으니 쿠바와 북한 이라.....

 

▲평양 유경체육관 김정은 옆에 앉은 미국 흑인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 탁자에 콜라캔 이 놓여 있었으니 2차 대전후 프랑스에서 코카콜라 판매자는 미국 OSS(CIA전신)의 스파이 로 간주되고 상젤리제를 지나는 트럭을 뒤엎고 콜라를 깨뜨리는 등 반발이 많았는데 이제는 소련에 이어 북한도 무느뜨리려나?

 

▲그러고는 스타리 모스트 다리 를 건너 네레트바 강 을 건너와 강변에 있는 레스토랑 으로 들어가서는 햄버그와

터키 차 를 시킵니다.

 

▲그런데 터키 차 에 딸려나온 각설탕 을 보니 갑자기 쓴웃음이 나오며 불현듯 몇년전 이스탄불 여행 이 생각나는 것이니....

 

▲이스탄불의 갈라타 다리 옆 에미노뉴 부두 에서 페리 를 타고 보스포러스 해협 을 거슬러 올라가서는 흑해 가 바라보이는 아나돌루 요새 에 올랐는 데.....

 

▲현지인 소풍객이 차 한잔 을 건네고는 "포..." 라고 말하기에 아니 공짜가 아니고 4달러 라?

또 바가지를 썼구나....... 하고 얼굴을 찌푸리니 차를 준 청년이 어찌나 당황 하던지....

 

▲원래 부터 설탕을 조심 하는 울 마눌이 각설탕 하나 를 차에 넣은 것을 보고는......터키에서는 각설탕 4개 를 넣어야 한다는 뜻으로 얘기한 것인데 오해 를 산 것이라!!!

 

▲하지만 중소 도시나 시골 에서는 사람들이 그리도 순박하고 인정 이 있었던 것이라!!! 그런데 오늘은 그때 터키 이스탄불에서 보담은 각설탕의 크기 는 매우 크다만...... 한개 뿐 이라 그럴일은 없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