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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 아시아****국가들/⊙미얀마****기행

미얀마ㅡ미얀마기행(紀行)ㅡ내 마음의 깊은 그늘을 찾아서, 미얀마

by 삼수갑산 2022. 1. 31.

미얀마기행(紀行)ㅡ내 마음의 깊은 그늘을 찾아서, 미얀마

▲이곳에도 사랑은 있습니다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미얀마 양곤으로 가는 KE471편을 기다리고 있다. 미얀마는 아주 오래 전부터 가 보고 싶은 곳이었다. 바간, 새벽안개가 가득한 들판에 서 있는 수많은 불탑들, 그 뒤로 해가 솟아오르는 풍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말을 누군가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보랏빛으로 물드는 바간의 아침을 나도 곧 보게 되겠지.

 

어느 날 문득 선물 같은 여행

미얀마 여행을 앞두고 무언가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마흔 다섯. 예전과는 조금 다른 음악을 듣게 됐고 약간은 낯선 단어를 사용하게 됐다.

 

이제는 모퉁이에서의 우연한 만남 같은 건 믿을 나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어느 봄 오후, 나는 속상하지 않아도 될 일에 속상해 했다는 걸 알게 됐고 하루 종일 스스로의 편협하고 좁은 마음에 화를 내고 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것이 나이라지만, 어찌 이리 마음은 세월이 흘러도 자라지 않는 것일까. 그러던 중 갑작스런 미얀마 취재 의뢰가 들어왔고 나는 떠나기로 했다.

 

때로 여행은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대책 없고 무작정인 해결책 말이다. “모두들 문제를 안은 채 나이를 먹고, 모두가 싫어해도 죽어 가는 거야. 옛날부터 죽 그랬고, 앞으로도 죽 그럴 거야.

 

너만이 문제를 안고 있는 건 아냐”라고 말했던 건 하루키였던가, 나는 이 말을 중얼거리며 짐을 꾸렸다.비행기는 늦은 밤에서야 양곤국제공항에 바퀴를 내려놓았다.

 

버스를 타고 호텔에 들어온 시각은 새벽 1시. 입국장부터 따라온 모기가 침대에 누웠는데도 귓가에 윙윙거렸다.잡아야지, 잡아야지 하며 서너 시간 눈을 붙였을까. 알람이 울렸고 다시 바간으로 가는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냥우 시장에서 만난 미얀마 아이, 얼굴에 하얀 타나카를 바르고 있다

1시간 20분 동안의 비행. 기내식으로 사과파이가 나왔다. 파리바게트에서 먹던 익숙한 맛이었다. 함께 나온 카스텔라는 달지 않고 맛있었다. 냥우 국제공항에 도착해 거리로 나오니 동남아시아 특유의 시끌벅적한 풍경이 펼쳐졌다. 한국에서 듣던 미얀마의 폭력적인 더위는 봄에는 해당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날씨는 한국의 초여름과 비슷했다. 손수건 한 장만 있으면 그럭저럭 다닐 만했다. 첫 목적지는 ‘냥우 시장’이었다. 냥우는 바간으로 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도시다.

 

바간은 바간왕조와 불교의 주요 유적지가 위치한 ‘올드 바간’, 휴양시설이 몰려 있는 ‘뉴 바간’, 행정청과 시장 등 도시의 주요 기능이 몰려 있는 냥우 지역으로 구분된다. 냥우에는 그다지 볼 만한 것은 없지만 재래시장인 ‘냥우 시장’은 많이 찾는다.

 

▲냥우 거리를 걷는 미얀마 여인들

 

시장 입구부터 상인들이 팔꿈치를 잡아끈다. 얼굴에 바르는 타나카를 선물이라며 뺨에 슬쩍 발라 주고는 1달러를 달라고 계속 쫓아다닌다. 미얀마 사람들과 다른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외모로 구분할 수 있는 포인트는 얼굴에 바른 ‘타나카’다.일종의 자외선 차단제로 타나카라는 나무의 가지를 돌에 갈아 가루를 낸 뒤 물과 섞어 바른다.

 

직사광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해 주고 보습효과도 있다.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 중 반은 이 타나카를 바르고 있다. 시장에는 ‘롱지’를 입고 타나카를 바른 사람들로 가득했다. 롱지는 미얀마 전통의상이다.

 

치마처럼 생겼는데 발목까지 내려온다. 남자들이 입는 것은 ‘파소’, 여자들이 입는 것은 ‘타메인’이라고 부른다. 보기에는 스윽 입으면 될 것 같지만 막상 입으려고 하면 좀 어렵다. 매듭 묶기가 쉽지 않다

 

▲냥우 시장, 우리의 재래시장과 그 풍경이 비슷하다

 

타나카를 얼굴에 발라 준 소녀는 아직도 팔꿈치를 잡아끌며 1달러를 달라고 조르고 있다. 주고 싶지만지갑을 버스에 두고 왔다. “미안해, 난 돈이 없어.” 소녀는 약간 실망한 눈빛으로 바지 주머니에 타나카 하나를 넣어 준다. “돈 없어도 돼, 이건 그냥 선물이야. 미얀마를 여행하려면 필요할 거야. 햇볕이 따갑거든.”

문득 일본의 여행작가, 후지와라 신야의 책 <동양기행>에서 본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후지와라 신야가 양곤을 여행하던 중 뜨거운 뙤약볕 아래 노천식당에서 쌀국수를 먹고 있는데, 어떤 아이 두 명이 그의 등 뒤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후지와라는 그 아이들이 소매치기일까 의심하며 배낭을 꼭 안고 국수를 다 먹었다. 그러자 아이들은자기 갈 길을 갔다. 후지와라는 옆에 있던 남자에게 저 아이들은 소매치기냐고 물었는데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 아이들은 ‘응달’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땡볕 아래에서 쌀국수를 먹는 이방인이 너무 더울까 봐 그들의 몸으로 그늘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나는 바간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타나카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바간, 낮잠의 도시

 

바간은 미얀마 이라와디강 동쪽에 자리한 도시다. 11~13세기 버마족은 이 도시를 수도로 삼아바간왕조를 세웠다. 2,000여 기가 넘는 불탑과 사원이 아득한 들판을 메우고 서 있다.바간의 수많은 불교 사원들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과 인도네시아의 보로부두르 사원과 함께 세계 3대 불교 유적지로 꼽힌다.

 

바간에는 고고학 구역이 있다. 서울 강남구와 비슷한 면적이다. 불탑은 이곳에 몰려 있다. 사람들은 불탑 앞에서 도시락을 먹고, 사원 안에 자리를 펴고 낮잠을 잔다.

 

여행자들은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빌려 탑과 탑 사이를 메뚜기처럼 건너다닌다. 가이드북에는 “바간에서는 사방 어디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켜도 반드시 불탑을 볼 수 있다”고 씌어져 있는데,이는 절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아난다 사원은 동남아시아 불교 건축의 전형을 보여 준다

수직과 수평이 완벽한 건축을 이루는 이 사원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 중 하나로 꼽힌다

 

바간의 불교 유적은 훼손된 것이 많다. 1975년 대지진 때 많은 불탑이 무너져 내렸다. 이후 군부정권이 복원작업을 벌였지만 중구난방이었다. 유네스코가 아직 바간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거부하고 있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여행자들은 며칠을 머물며 주요한 불탑과 사원을 돌아본다금장식이 화려한 쉐지곤(Shwezigon) 파고다와 건축미가 빼어나고 내부에 불상과 벽화가잘 보존되어 있는 아난다(Ananda) 사원 등이 반드시 봐야 할 곳이다.

 

▲한때 400만개의 불탑이 있었다는 바간. 지금도 2,000여 기가 넘는 불탑이 남아 있다

바간이 내게 심어 준 이미지는 ‘낮잠’이었다. 사원과 탑을 찾을 때마다 신발을 벗어야 하는 것이 귀찮았지만 이 도시를 다시 한 번 꼭 찾아오고 싶었다. 나무그늘 아래서 낮잠을 자며 느긋하게 탑과 탑 사이를 돌아보고 싶었다.

 

탑과 탑 사이로 소떼를 몰고 다니는 목동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는 여행자들, 수레에 앉아 ‘꽁야’를 씹고 있는 노인들… 모든 사람들은 평화로운 동작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모든 풍경들은 게을렀다.

 

나는 이 도시를 ‘낮잠의 도시’라고 부르기로 했고 약간의 과다노출로 사진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휩싸였다.

그러는 사이 서울에서의 속상한 일은 어느새 까마득한 일처럼 느껴졌다. 여행의 힘.

 

▲만달레이 쿠도더 사원의 황금빛으로 찬란한 불탑

옛 영화는 없고, 만달레이

 

이튿날, 바간을 떠나 만달레이로 향했다. 냥우 국제공항에서 날아오른 비행기는 이륙 후 16분 만에 착륙 안내방송을 했다. 스튜어디스가 나눠 준 사탕 하나를 다 먹기도 전이었다. 비행시간은 24분, 하지만 차로 가면 여덟 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공항을 빠져나와 시내로 들어서니 바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거리는 삼륜오토바이와 자동차, 마차로 북적였다. 시인 키플링이 노래했던 만달레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미얀마 전통 옷을 입고 쿠도더 사원을 찾은 미얀마 여인.

하얀색 탑 속에는 부처님의 말씀을 새긴 석판이 들어 있다

 

미얀마 정중앙에 자리한 만달레이는 약 200만명이 넘게 사는 미얀마 제2의 도시다. 미얀마가 19세기 중엽부터 1948년까지 영국의 식민지였을 당시 수도였다. ‘황금의 도시’로도 알려졌던 이 도시는 19세기, 버마왕국 최후의 왕족들이 건설했다.

‘키플링’은 1890년 몰메인에 며칠 머물고 <만달레이 가는 길>이라는 시를 썼다. ‘프랭크 시나트라’가 이 시에 곡을 붙여 노래로 불렀다. 서양인들이 만달레이에 대해 가지는 로망은 ‘키플링’과 ‘프랭크 시나트라’ 때문일지도 모른다.만달레이를 찾는 여행자들이 가장 먼저 가는 곳은 왕궁이다. 1857년, 민돈왕이 ‘아마라뿌라’에서 이곳으로 천도하고 지었다. 성벽의 높이가 8m나 된다.

 

1885년, 영국군이 미얀마를 점령했을 때 영국군은 왕궁을 클럽으로 이용해 수치심을 안겨 주었다. 1942년, 일본군이 함락했을 때는 왕궁에 불을 질러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지금의 왕궁은 1990년에 복구된 것이다. 높이 33m의 전망대에 오르면 왕궁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우베인 다리도 유명하다. 타웅타만(Taungthamn) 호수를 가로지르는 1.2km의 다리다. 1850년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목조다리다. 당시 시장이었던 우베인이 잉아 궁전을 짓다 남은 티크목으로 다리를 만들었다.

 

오랜 세월 굳건하게 버티던 다리기둥은 양식사업을 위해 호숫물을 가두는 바람에 썩기 시작해 지금은 콘크리트 기둥으로 교체했다. 다리 기둥 수는 무려 1,086개에 달한다.

운이 좋지 않아 비가 왔다. 이 다리는 낮에는 별 볼품이 없지만 일몰 때면 그 풍경이 180도 변한다. 다리 주차장은 대형 관광버스로 가득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우르르 다리로 몰려갔다.

 

다리 위에는 ‘유명해서 와 봤는데, 별로 볼 게 없군!’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앞 사람의 등만 보고 줄지어 걸어가고 있다. 걷다가 중간에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 다음에는 꼭 날씨 좋을 때, 해 저물 무렵에 와 봐야지

 

▲불경으로 가득한 쿠도더 사원의 별칭은 ‘세상에서 가장 큰 책’이다

‘쿠도더 사원’도 특별한 곳이다. 사원 경내에는 하얀색 탑이 무려 729개나 있다. 탑마다 대리석에 새겨진 불경이 안치되어 있다. 그래서 이 사원의 별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책(The World’s Biggest Book)’이다. 미얀마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스타그램 핫스폿으로 불리는 곳이다.

 

▲인레 호수 주변에서 살아가는 샨족이 만든 우산

인타족의 영역, 인레 호수

 

다음날 다시 인레(Inle) 호수로 향했다. 호수는 해발 880m 고원지대에 자리한다. 호수 주변에는1,2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다. 호수의 넓이는 충주호의 두 배쯤 된다. 길이는 22km, 폭 11km로 미얀마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다.

 

호수 위의 수상마을만 스무 곳에 달한다. 미얀마에는 160여 개의 소수민족이 살아가는데, 이곳 인레 호수에는 샨족과 인타족, 파오족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가장 많이 사는 부족은 인타족이다. 미얀마 전역에 흩어져 있는 인타족의 75%인 8만여 명이 호수 주변에 마을을 이루며 살아간다.

 

이들은 장대로 물을 내리쳐서 고기를 잡으며 배를 타고 한 발로 노를 저으며 호수를 가로지른다. 한 발은 배 위에 딛고, 노를 다른 발 장딴지에 끼워 젓는데, 드넓은 호수에서 방향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전통의상을 입고 삿갓처럼 생긴 모자를 쓰고 노를 젓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은 관광객들에게 돈을 받고 보여 주기 위해 공연하는 사람들이다.

 

진짜 어부들은 그럴 시간이 없다. 평상복을 입고 그물질에 열중이다. 고기잡이 외에도 이들은 갈대와 대나무를 이용해 물 위에 밭을 만들어 수경재배를 하며 생계를 이어 간다. 대부분의 인타족은 태어나면 죽을 때까지 호수 위에서 생활한다. 이들은 티크 나무를 호수 바닥에 꽂아 기둥을 세운 뒤 수상가옥을 짓는다.

 

관광객들은 배를 타고 호수 위 상점을 차례차례 방문한다. 연 줄기에서 실을 뽑아내 천을 만드는 마을, 은세공 상점, 목이 긴 카렌족 가옥 등을 방문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관광객들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팔려고 하고 남자들은 의자에 누워 꽁야를 씹고 있다.

나는 연 줄기에서 뽑은 실로 만든 자주색 스카프 하나를 7,000원에 샀다. 이런 마을에 가다 보면 늘 뭔가를 사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긴다. 뭐라도 이들의 삶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기 때문이다. 질은 중요하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한 시간 정도 스카프를 하고 있었는데 티셔츠의 목 부분에 자주색 물이 들어 버렸다. 어쩔 수 없다. 여행이라는 행위에는 현지 상품을 바가지 쓰고 사는 것도 포함이 된다.

 

▲인레 호수에는 발로 배의 노를 젓는 인타족이 살아간다

여행은 언제나 옳다

 

어쨌든 인레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다시 공항이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공항 대합실에서 양곤으로가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여행은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 떠나는 일, 잊는 일, 보내는 일, 그것은 어쩌면 모래를 한 움큼 쥐었다가 놓는 일일지도 모른다.

 

스르르 빠져나가는 모래는 덧없지만 모래를 쥐었던 손의 감촉은 남아 있겠지. 그 옛날 소중했던 일이 지금은 아무 일도 아니듯 지금의 간절한 하루 역시 먼 훗날에는 한낱 사사로운 일이 되어 희미해질 것이다.

 

절망과 슬픔을 말하기에 우리의 경험은 언제나 모자라지만 새로운 기억을 시작하기에 공항만 한 곳이 또 있을까. 그나마 우리에게 다행인 건 우리가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행기가 왔다. 날개 위로 노을이 내리고 있다. 비행기를 향해 걸어가며 다시 미얀마를 찾고 싶다고 생각한다.

 

바간을 다시 찾았을 때 새벽 속을 떠다니는 벌룬을 바라보며 새로운 문장을 써야겠다는마음이 생겨나면 좋으련만. 인레 호수의 물소리를 들으며 잠을 뒤척이고 싶다.비행기가 이륙했다. 창밖 풍경이 멀어져 간다. 내 곁엔 아직 소중한 것들이 남아 있다. 그것들을 가지지 못하고 쓰다듬지 못하는 마음,

 

그 안타까움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된다면, 나는 여전히 사랑을 하고 있다. 하루가 가고 하루가 가고, 또 하루가 가고 이젠 그 사랑에 대해 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안다. 그래도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나는 언제나 떠날 시간 앞에 서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의 일들은 이제 모두 잊었다. 먼 하늘에 별이 떴다. 떨고 있다.

출처 / Travie Magazine / 글·사진 최갑수 에디터 강화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