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청라언덕에 남은 선교사들의 선물, 교회·학교·병원·사과나무.
▲대구 청라언덕의 기독교 역사 유적을 찾은 중학생들. 청라언덕엔 대구제일교회와 동산병원, 신명학교 등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의 '3각 선교'의 증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김한수 기자
‘사과나무 100년’.
지난 10월 7일 오전 한교총 순례단이 찾은 대구 중구 청라언덕엔 이런 설명판이 있고 그 뒤엔 사과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이 사과나무는 1899년 동산병원을 세울 당시 초대 병원장이었던 존슨 박사가 미국 미주리주에서 주문해 들여온 사과나무의 자손 나무이다.
당시 선교사들은 한국 사람들이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작물이나 과일나무를 보급했는데 대구의 선교사들은 사과를 택했던 것. 대구를 사과의 고장으로 키운 서양 사과나무는 선교사들이 들여온 것이다.
▲대구 청라언덕의 '사과 나무 100년' 표석. 1899년 초대 동산병원장으로 부임한 존슨 박사는 미주리주에서
사과나무 묘목을 들여와 대구 주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왔다. /김한수 기자
19세기말 한국을 찾은 선교사들은 주요 지역에 선교 기(미션 스테이션)를 세우고 ‘교회·학교·병원’을 세웠다. ‘삼각 선교’로 불리는 이 선교 정책은 한국에 근대 문명을 선물했다. 그런데 대구 청라언덕의 경우엔 이 세 가지에 더해 ‘사과’가 추가됐다. 한국인 스스로 경제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박태준 작곡·이은상 작사 가곡 ‘동무생각’의 가사로 잘 알려진 청라언덕은 원래 선교사 사택을 푸른 담쟁이[靑蘿]가 덮은 것에서 비롯된 별칭이라고 한다. 선교사들이 찾기 전 이 언덕은 무연고 시신을 매장하던 공동묘지 터였다고 한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이곳에 선교 기지를 세우면서 청라언덕은 대구 근대문화의 요람이 됐다. 이 언덕을 기지로 삼아 대구제일교회를 설립하고 동산병원과 계성학교(남학교), 신명학교(여학교)를 세웠고 아담스 선교사의 사택에서 성경학교(영남신학대 전신)를 시작했다. 그리고 모든 사역을 마친 선교사들은 이 언덕의 묘역에 잠들었다.
▲대구 청라언덕에 설치된 비석엔 청라언덕이란 용어의 유래를 설명한 글과 가곡 '동무생각'의 가사가 적혀 있다.
청라언덕에 오르면 저절로 '동무생각' 멜로디가 흥얼거려진다. /김한수 기자
사과나무 앞에는 ‘대구 근대문화 골목 출발점’이란 푯말이 있다. ‘3·1운동 만세길’ ‘이상화·서상돈 고택’ ‘구 교남 YMCA회관’ ‘약령시’로 이어지는 1.6㎞ 투어의 출발점이 개신교 유적이라는 점은 우리의 근대와 개신교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구 중구는 2006년부터 역사문화자산을 활용한 ‘근대골목투어’를 만들었다. 5개 코스에 총 길이 14km에 이르는데, 그 중 ‘근대문화 골목’ 코스가 바로 청라언덕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다른 코스는 경상감영 달성길, 패션 한방길, 삼덕 봉산 문화길, 남산 100년 향수길 등의 이름이다.
한교총 순례단이 찾은 7일엔 청라언덕이 방문객들로 활기가 넘쳤다. 포항에서 수학여행 온 중학생 일행과 선교사 사택의 이국적 모습을 배경으로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팀 등이었다.
청라언덕이 역사적 장소로만 박제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젊은이들이 즐겨 찾고 주민들의 휴식장소로 여전히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청라언덕에서 약령시쪽으로 내려오는 계단. 3.1운동 계단으로 불린다. /김한수 기자
청라언덕에서 내려오는 길은 가팔랐다. 90개의 계단이 놓인 이 경사길은 ‘대구 3·1운동 계단’이다. 1919년 3월 8일 대구 사람들은 대구제일교회 이만집 목사와 계성학교 신명학교 학생들과 함께 이 계단길을 통해 언덕을 넘어 서문시장으로 몰려가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대구 3·8만세 운동에서 개신교는 주역이었다. 이만집 목사는 미리 이갑성으로부터 서울의 거사 계획을 듣고 신정교회 정재순 목사 등 목사와 교인, 계성학교와 신명여학교 학생들과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마침내 3월 8일 서문시장에선 1000여명의 주민과 상인, 학생들이 만세를 외쳤고, 이날 시위로 157명이 체포됐다. 이만집 목사는 서울의 독립선언 서명자와 똑같이 3년형을 선고받았다.
▲대구제일교회의 옛 예배당. 현재는 대구의 기독교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김한수 기자
청라언덕의 서쪽에 서문시장이 있다면 동쪽엔 약령시가 있다. 19세기말 선교사들이 대구에 선교기지를 설치하기로 하고 처음 자리를 잡으려 했던 곳도 약령시 부근이었다. 그 자리엔 옛 대구제일교회 건물이 남아있다.
여기서 ‘제일’은 ‘최고’가 아니라 ‘처음’이란 뜻. 현재 이 옛 예배당은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다. 아담스 등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대구를 찾아온 역사부터 1930년대의 교회 일지, 옛 오르간 등이 전시돼 있다.
▲대구제일교회기독교역사관에 전시된 사진. 1933년 예배당을 새로 짓고 전조선 주일학교 대회를 개최한 모습이다.
당시 신앙의 열기를 느낄 수 있다. /김한수 기자
영남신학대 권용근 총장은 “청라언덕은 과거 무연고 시신을 매장하고 분뇨를 내다버리던 곳이라 ‘똥산’으로도 불렸다”며 “선교사들은 버려진 땅을 복음의 동산, 민족정신을 기르는 동산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한교총 대표회장 류영모 목사는 “과거 모든 애국자가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그리스도인 가운데 애국자 아닌 분은 드물었다”며 “신앙과 애국을 하나로 만들었던 선조의 애국심을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출처 / chosun.com /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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