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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八道(신팔도)*紀行錄/⊙전남 광주****기행

광주 남구ㅡ양림동(楊林洞)ㅡ청국장 집엔 서양화, 젤라토 집엔 자개 공예··· 이 동네선 골목 식당·카페·빵집도 ‘예술’이네~

by 삼수갑산 2022. 8. 3.

양림동ㅡ청국장 집엔 서양화, 젤라토 집엔 자개 공예··· 

이 동네선 골목 식당·카페·빵집도 ‘예술’이네~

동네가 하나의 커다란 미술관이자 박물관이다. 역사 이야기에서 시작한 골목 여행은 모퉁이를 돌 때마다 미술, 건축, 공예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든다. 골목 어귀, 동네 주민인 문화 예술인들이 꾸민 아지트 구경은 덤. 미디어아티스트 작가가 사비를 들여 꾸민 스튜디오는 전국적 명소가 됐다. ‘광주(광역시)의 몽마르트르(Montmartre)’라 불리는 양림동 얘기다.

 

유적, 옛집 등 볼거리가 많아 목적지 없이 걷다 길을 잃어도 좋을 것만 같은 동네. 때마침 마을 축제인 ‘제1회 양림 골목 비엔날레’(5월 9일까지)가 열리고 있다. 걷다 보면 거리 예술품, 벽화와 마주하고 운이 좋으면 오픈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라디오 공개 방송까지 구경할 수 있다. 광주 양림동 구석구석 골목 탐험기.

 

▲정크 아트' 등으로 광주 양림동의 명소가 된 '펭귄마을'은 공예창작거리, 라디오 스튜디오 등이 들어서며 즐길

거리가 더욱 다양해졌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전시관 된 ‘골목 식당’

 

양림동 주민에게 ‘황칠 오리탕, 청국장 맛집’으로 유명한 양림전통맛집­ 한쪽 벽면엔 동네 밥집이라면 으레 있을 법한 투박한 숫자 달력, 현란한 주류 광고 포스터가 없다. 대신 광주를 대표하는 서양화가 한희원 작가의 유화 작품 ‘트빌리시거리’와 ‘호롱불’이 걸렸다. 식당을 찾은 손님들은 낯선 작품에 고개를 갸우뚱했다가도 이내 “작품 색감이 좋다”거나 호롱불에 얽힌 추억을 소환하며 담소를 나눈다. 주인 이복계(70)씨는 손님들에게 “양림동 출신 서양화가 한희원 작가의 작품”이라며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한희원 미술관’에 가면 더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양림 골목 비엔날레' 참여 점포 중 하나인 '초승달 커리' 집에선 밀랍으로 빚은 독특한 공예 작품

'윤회매(輪廻梅)'를 만나볼 수 있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양림 골목 비엔날레' 참여 점포 중 하나인 젤라토를 파는 한옥 카페 '엣따'는 나전칠기 장인 최석현의

자개 작품 전시 공간을 겸한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예향(藝鄕)의 도시’라는 광주에서도 양림동은 예부터 ‘동네 국밥집에도 예술품이 걸려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상 예술이 깊숙이 자리 잡은 동네다. 하지만 이곳 역시 코로나 직격탄을 맞아 1년 넘게 침체돼 있었다.

 

지난달 3일 양림 골목 비엔날레가 시작되면서부터 차츰 활기를 되찾고 있다. 양림 골목 비엔날레는 양림동 상권에 예술로 활력을 불어넣자는 취지로 양림미술관거리협의체가 기획한 마을 축제다.

 

눈길을 끄는 건 기획전시 ‘영업 中’이다. 전문 전시관이 아닌 전시 이름처럼 영업 중인 골목 식당, 카페, 빵집 등 점포 16곳을 ‘이색 전시관’으로 활용한다. 예술인들은 축제 참여 점포에 자신의 작품을 무상으로 대여해주고 점포들은 예술인들에게 점포의 일부 공간을 무상 제공한다.

 

공간과 장소를 서로 제공하는 ‘협업 전시’인 셈. ‘양림전통맛집’을 비롯해 비엔날레 기간 동안 젤라토를 파는 한옥 카페 엣따에선 나전칠기 장인 최석현의 공예 작품, 동양적 감수성을 더해 초승달 모양으로 커리 요리를 담아내는 커리집 초승달 커리에선 공예·회화 작가 ‘다음(DAUM)’이 밀랍으로 빚어낸 ‘윤회매(輪廻梅)’ 작품, 이탈리안 레스토랑 메타포에선 미디어아트 작품 등과 조우할 수 있다.

 

빈 점포에선 ‘임대 展’(매주 금~일요일 오후 1~6시)이라는 이름으로 사진 전시 등이 열린다. 전문 전시관이 아닌 숨은 그림 찾기 하듯 뜻밖의 장소를 찾아다니며 예술 작품을 만나는 재미가 색다르다.

 

▲이이남스튜디오'의 대표 작품인 '다시 태어나는 빛-피에타'와 나선형 계단. 계단을 오르면 예수상과 만난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작가의 스튜디오인 '이이남스튜디오'에선 '생명의 위로' 주제 전시가 기다린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양림동 미술 3인방 만나는 전시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 서양화가 한희원, 조형·회화 작가 최순임이 참여하는 주제 전시 ‘생명의 위로’전은 필수 코스다.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공간 자체가 일부러 찾아가 볼 만하다. ‘이이남 전’을 진행하는 이이남 스튜디오는 지난해 11월 개관과 동시에 ‘핫플’에 이름을 올린 곳이다.

 

부지 3300㎡(약 1000평), 건평 2300㎡(약 700평)로 개인 스튜디오로는 상당한 규모다. 지하 1층, 지상 2층과 루프 톱으로 이뤄진 스튜디오는 2017년까지 제약회사 사옥 쓰였던 건물을 개축한 것이다. 각 층엔 이이남 작가의 작업실과 미디어아트 뮤지엄, 미디어아트 카페테리아가 자리 잡았다.

 

1층 로비에 들어서면 중앙에 ‘다시 태어나는 빛-피에타(Pieta)’ 작품이 방문객을 맞는다. 작품 뒤 나선형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유리 천장에 매달린 예수상에 시선이 머문다. 이이남 작가의 대표작이자 이이남스튜디오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이다.

 

서로 이어지는 듯한 두 작품은 유리창으로 투과된 햇빛으로 인해 성스럽고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스튜디오 내 7개의 공간에선 양림 골목 비엔날레의 주제인 ‘생명의 위로’를 담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광주 양림동 출신 서양화가 한희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한희원미술관'.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양림 골목 비엔날레' 기간 중 '최순임 전' 전시 공간이자 방문자 센터, 아트 마켓으로 운영하는

복합 문화 공간 '10년 후 그라운드'.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이장우 가옥’이 있는 골목 안쪽 한희원미술관에선 ‘한희원 전’이 기다린다. 아담한 마당을 낀 ‘ㄱ’ 자 한옥을 전시관으로 개조한 공간은 작가의 대작 외에 양림동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창 너머 보던 풍경을 그린 작품부터 영화 ‘친정엄마’에 등장했던 작가의 작품 정보 등으로 꾸몄다.

 

‘최순임 전’을 여는 10년 후 그라운드도 재미있다. 유치원이었던 곳을 복합 문화 공간으로 만들었다. 축제 기간 정보를 제공하는 방문자 센터 겸 아트 마켓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양림 골목 비엔날레는 단순히 전시에만 그치지 않고 이이남, 한희원, 최석현, 최순임 등 양림 골목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양림동 작가들의 작업실, 미술관 등을 개방해 ‘오픈 스튜디오’로 운영하는 한편 매주 수요일과 주말엔 도슨트와 함께 미술관이 된 마을을 구석구석 돌아보는 ‘도슨트 투어’(음료 포함 참가비 1만5000원, 최대 5인, 사전 예약)도 진행한다.

 

10년 후 그라운드를 포함해 각 전시관, 양림 골목 비엔날레 참여 점포에 비치된 ‘양림 골목 비엔날레 지도’(1000원)를 구입하면 더욱 알찬 관람을 즐길 수 있다.

 

▲'호랑가시나무 언덕'에 있는 '우일선 선교사의 사택'. 호랑가시나무, 호두나무 등에 둘러싸여

이국적인 정취가 느껴진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선교자들의 터전에서 문화·예술 마을로

 

양림 골목 비엔날레가 아니더라도 양림동은 뚜벅뚜벅 걷기 여행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양림동 일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을 찾는다면 해발 108m 양림산 언덕에 올라본다. 호남신학대에서 수피아여고로 이어지는 양림동 언덕배기에는 수령 200년 이상의 호랑가시나무들이 자리잡고 있어 ‘호랑가시나무 언덕’이라고도 불린다.

 

호랑가시나무와 호두나무를 사이에 두고 한옥 양식을 조금씩 섞어 지은 듯한 독특한 형태의 서양식 건축물이 단지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양림산은 20세기 초 미국의 선교사들이 전라 지역 선교 활동의 중심지로 삼은 곳으로 이곳 건축물들은 대부분 그즈음 선교사들에 의해 지어진 것들로 추정된다.

 

그중 미국 선교사 우일선(윌슨)이 1920년 네덜란드 양식으로 지은 우일선 선교사 사택은 광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건축물로 꼽힌다. 10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비교적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이국적인 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봄·가을이면 발걸음 하는 이들이 많다.

 

▲호랑가시나무언덕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고 있는 원요한 목사 사택 주변으로 봄 기운이 완연하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선교사 사택의 차고를 고쳐 복합 문화 공간으로 꾸민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광주 비엔날레 기간 주제전이 열린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건축물 중 언덕 중간에 있는 원요한 목사 사택은 ‘호랑가시나무언덕 게스트하우스'로 사용하고 있다. 지은 지 70여 년 된 적벽돌 건물에서 하룻밤 숙박 체험을 할 수 있다(1인 4만원, 2층 10만원).

 

수년간 비어 있던 선교사 사택 차고를 증축해 복합 문화 공간으로 꾸민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도 가볼 만하다. 이곳은 광주 비엔날레 기간 주제전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 전시 장소로 활용된다. 이를 비롯해 일부 건물은 예술가들이 머물면서 창작 활동을 펼치는 레지던스 등으로도 쓰이고 있다.

 

▲일제강점기 미국의 공습에 대비해 일본이 만든 방공호. 동굴 입구 중 하나는 카페 '까브'가 공유하고 있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근대건축물과 함께 최근 일제강점기 지하 동굴도 양림동 역사 투어 코스로 떠올랐다. 양림마을 이야기관 부근의 뒹굴동굴은 일제강점기 광주 도심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미국 공습으로부터 피신시키기 위해 일본이 1940년대부터 사직공원 밑에 조성한 것이다.

 

일본인 거주 지역과 가깝고 양림산의 지반이 단단해 네 곳에 입구를 두고 가운데 광장을 만들 계획이었으나 화강암 지반이 워낙 단단해 공사가 늦어지면서 완공하지 못한 채 전쟁이 종료됐다.

 

현재 네 개의 입구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반 개방한다. 동굴 입구 중 하나는 카페 까브(cave) 안쪽으로 나 있다. 동굴을 품고 있어 ‘동굴 카페'로 유명해졌다.

 

▲10년 후 그라운드'에서 '이장우 가옥'으로 가는 골목길은 옛 정취가 남아 있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옛집들이 모여 있는 아기자기한 골목길을 걷고 싶을 땐 이장우 가옥을 찾는다. 현재 코로나로 개방을 중단하고 있지만, 골목을 따라 ‘정운학 갤러리’ ‘한희원 미술관’ ‘최승효 가옥’ 등이 이어진다. 골목을 걷다 멀리 광주 음악 창작소(구 광주 KBS 방송국) 건물 안테나 앞에서 열창하는 듯 서 있는 ‘퀸’의 ‘프레디 머큐리’ 설치 작품도 깨알 같은 볼거리다.

 

▲양림동 주민커뮤니티 센터'에서 내려다본 '펭귄마을'.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펭귄마을' 초입에 들어선 '양림 펭귄 스튜디오'에선 오며가며 라디오 공개 방송을 구경할 수 있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사직공원과 광주천을 끼고 있는펭귄마을은 양림동 골목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마을에 사는 어르신이 무릎이 불편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마치 펭귄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마을이다. 하지만 유명해진 이유는 따로 있다.

 

지금은 촌장이 된 김동균씨가 수년 전 불이 난 빈집의 흉한 모습을 가리기 위해 하나둘 폐품을 활용해 집을 장식하기 시작한 게 어느덧 ‘정크 아트 골목’을 이뤘다. 몇 년 전부터 레트로 여행지로 소문나며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이제는 광주의 명소로 자리 잡아 정크 아트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펭귄 빵’(10개 5000원)도 만들어 판다. 지난해 4월 펭귄마을 입구엔 광주 MBC 라디오 생방송 스튜디오인 ‘양림 펭귄 스튜디오’가 오픈한 데 이어 6월에 펭귄마을 일대가 공예특화거리로 지정되면서 펭귄마을 주변은 공방들로 채워지고 있다.

 

골목을 수놓은 벽화와 정크 아트 작품,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스튜디오에서 생방송을 진행하는 라디오 DJ와 스태프들의 분주한 모습을 구경하다 보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갈지도 모른다.

 

◆‘오웬기념각’부터 ‘사직동 통기타 거리’까지, 다같이 돌자 양림 한 바퀴

 

▲광주 양림동 도보 탐방 프로그램 코스 중 하나인 '오웬기념각'. 배유지(E. Bell) 목사와 함께 전남 최초의 선교사이자

의사로 활동하던 오웬과 그의 할아버지 윌리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양림동 곳곳을 장식한 예술 작품을 관람하며 구석구석 돌아보는 ‘양림 골목 비엔날레’ 도슨트 투어(양림미술관거리협의체·070-4239-5043) 외 남구에서 진행하는 ‘광주 양림 역사 문화 탐방’(무료)도 있다.

 

‘양림역사문화마을’ 홈페이지(https://visityangnim.kr)에서 최소 1주일 전 참가 신청 후 남구청 교육지원과(062-607-2432)에 전화해야 신청이 완료된다. 신청한 날짜에 맞춰 전문 해설사가 동행해 양림동의 역사 문화 이야기를 들려준다.

 

2코스가 있다. A코스는 선교기념비에서 시작해 김현승 시비, 선교사묘역, 우일선 선교사 사택, 호랑가시나무 언덕, 커티스 메모리얼 홀(배유지 기념 예배당), 광주 3·1 만세운동 기념 동상, 수피아 홀 등을 거쳐 기독병원에서 마친다. B코스는 3·1운동 발상지에서 시작해 양림동 출신 독립운동가이자 작곡가였던 정율성 생가, 오웬기념각, 이장우 가옥, 최승효 가옥, 광주천, 양파정, 충현원 등을 돌아본다.

 

각 코스의 탐방 소요 시간은 대개 1시간 30분~2시간이다. 탐방 및 투어 프로그램은 코로나 대응 상황에 따라 진행 여부가 유동적일 수 있으니 사전 문의 필수다. 남구청 탐방 프로그램 담당 직원은 “3월 들어 차츰 신청이 느는 분위기”라며 “거리 두기 상황에 따라 참가 인원을 조정할 수 있다”고 했다.

 

혼자 마음 편히 걷고 싶다면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중 하나인 ‘다 같이 돌자 양림 한 바퀴’를 따라가 볼 것. 양림마을 이야기관 관광안내소를 시작으로 펭귄 마을, 정율성 생가와 시인 김현승의 거처, 오웬기념각, 호랑가시나무 언덕, 사직 타워, 일제강점기 방공호 ‘뒹굴동굴’, 사직 통기타거리까지 등 총 19곳을 둘러볼 수 있다. 코스마다 안내판이 있어 찾기 쉽다.

 

출처 / 조선일보 / 박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