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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ㅡ코로나 시름 털고. 볼 것. 먹을 것. 천지, 포항 한바퀴

by 삼수갑산 2022. 4. 29.

코로나 시름 털고 볼 것 먹을 것 천지, 포항 한바퀴

▲묵은 시름 털고 볼 것 먹을 것 천지, 포항

 

. 올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가 없다보니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다. 그래서 묵은 시름도 털고 볼 것, 먹을 것 천지인 포항으로 떠났다. 포항은 언뜻 보면 철골 구조물과 잔잔한 바다가 미래의 회색빛 도시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알고 있는지? 그 안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이보다 더 사람과 바다 냄새 진하게 나는 곳도 없다는 것을.

 

▲동해 바다의 축소판 죽도시장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한 도시에서 경유를 할 때가 종종 있다. 만약 그곳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가장 번화한 곳에 있는 재래시장으로 향하곤 한다. 왜냐하면 도시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인파에 섞여 좁은 통로를 걷다 보면 그들이 무슨 옷을 입고, 무슨 음식을 먹고, 어떤 이야기 하는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 나라의 문화를 정확히 이해하도록 돕는다.

 

그래서 포항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도 죽도시장이다. 이곳은 동해안 최대의 상설 재래시장으로 경북 동해안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의 집결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58년 전, 갈대밭이었던 포항 내항의 늪지대를 메운 자리에 노점상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형성된 곳으로 현재 입점 해있는 점포수가 2,500여 개에 달한다.

 

해산물부터 야채, 육류까지 구역에 따라 나뉘어 있는데, 특히 해산물 골목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있다. 철에 따라 울진과 영덕에서 잡아들인 대게부터 크고 작은 어패류, 그리고 포항의 과메기까지 굳이 그곳에 가지 않더라도 경북 동해안에서 잡아들인 다양한 해산물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여행하는 도시의 특산물을 사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인데, 너무 빨리 사면 여행하는 내내 들고 다니다가 상할 수도 있으므로 여행 막바지에 죽도시장에 들러 한꺼번에 폭풍 쇼핑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한번 맛보고 가이소~” 해산물 골목을 걷다 보면 종종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가게 주인장이 내뱉는 애교스럽거나 무뚝뚝한 소리로, 손에는 말린 문어와 진미 포가 담긴 바구니가 들려있다. 그렇게 한 점, 두 점씩 집어 먹다 보면 자극받은 침샘이 위까지 깨워 불현듯 배가 고파질 확률이 높다.

 

그럴 땐 횟집 골목으로 가자. 횟집 200여 곳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데, 한 집도 빼놓지 않고 대야 속에서 싱싱한 물고기가 퍼덕거린다. 그 중 마음에 드는 집에 들어가 시원한 물회와 매운탕 세트를 맛보며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겠다.

 

▲동양최대의 경상북도수목원

 

늘 바다로 기억되는 포항에서 숲을 찾아간다는 것은 다소 의외일 수 있다. 그러나 동양최대 규모의 수목원이 포항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바다만 보고 온다면 섭섭하다. 시원하게 뚫린 해안도로에서 벗어나 깊은 산을 향해있는 굽이굽이 비탈길을 한참 달리자 태백산맥의 남단부, 내연산 줄기에 위치하고 있는 경상북도수목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상북도수목원은 평균 해발 650m에 위치한 고지대의 2,926ha 면적을 가진 수목원으로 국내와 경상북도의 향토고유종 등 2,088여 종 이상 보유하고 있는 동양에서 가장 큰 수목원이 우리나라에, 그것도 포항에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경상북도수목원은 어엿한 포항의 자랑거리다. 따사로운 햇살을 한껏 머금은 싱그러운 숲과 꽃과 가을 단풍이 만발한 정원에 발을 들여놓으니 연두와 초록의 녹음이 눈을 맑게 하고, 울긋불긋 불타는 단풍에 취하고, 수천가지의 향이 금세 코와 폐를 가득 채웠다.

 

경상북도 수목원은 야생초원, 창포원, 유실수원, 가로수원, 활엽수원, 침엽수원, 고산식물원, 울릉도 식물원, 온실, 낙우송길, 연못원 등 24개의 분원으로 나뉘어있다.

 

자세히 보려면 하루로도 모자랄 테지만, 첫 방문자를 위한 것부터 단계별로 정해진 세 개의 코스를 따라 두세 시간 천천히 산책한다면 마음까지 푸르러지는 힐링여행을 제대로 누릴 수 있다. 아이들의 자연학습 체험장으로도 손색이 없다. 숲 해설사 없이 나 홀로 수목원을 거닐며 눈으로 보고 느끼는 동안 어느새 머릿속엔 전문지식이 차곡차곡 쌓인다.

 

가을이라 아쉽지만 꽃이 핀 모양이 안개꽃을 닮아 안개나무, 잎을 자르면 생강냄새가 난다하여 생강나무, 방사능량에 따라 색이 변하는 자주 닭개비, 잎을 비비면 오이냄새가 난다하여 오이풀. 평소라면 관심도 없이 지나쳤을 이름 모를 풀들에 인사를 건네면서 자연과 따뜻한 교감을 나눌 수 있다.

 

산 중턱에 있는 경상북도 수목원. 파란하늘에 닿을 듯 말 듯한 울긋불긋 단풍으로 물든 나무들이 이루는 색깔대비에 포항의 깊고 푸른 바다를 보는 것만큼이나 가슴속까지 청량해진다. 수목원 관람 계획을 가지고 떠난다면 반드시 홈페이지(www.gbarboretum.org)에서 코로나 19 방역 안내를 숙지할 것.

 

▲대한민국 첫 해가 뜨는 호미곶 해맞이 광장

 

여행지를 결정할 때 사람이 너무 많거나 혹은 너무 뻔한 곳은 우선적으로 제외하곤 한다. 포항에서 호미곶 해맞이 광장에 가기를 망설였던 것도 같은 이유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찾고, 또 끊이지 않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 호미곶은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라는 대단한 명함을 갖고 있다. 새해벽두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평일의 낮에 찾아갔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호미곶을 메우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새해 첫날은 얼마나 대단할지 상상이 된다.

 

물론 독자들 중에 다녀온 이들도 아주 많을 테다. 해맞이 광장은 약 48,000㎡의 부지에 새천년기념관, 상생의 손, 성화대, 연오랑세오녀상, 햇빛채화기 등이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뭐니 해도 호미곶의 상징은 상생(相生)의 손이다. 바다 위에 떡하니 있는 손 하나를 별로라 생각하고 늘 의아해했는데, 사람의 양손을 청동으로 만들어 바다와 육지에 서로 마주보는 형상으로 각각 설치하여 모든 국민이 서로 도우며 살자는 뜻으로 세워진 것이란다. 바다에는 오른손, 육지에는 왼손이 설치되어 있다.

 

하나 더, 호미곶의 이름이 아주 흥미롭다. 조선시대 풍수지리학자인 남사고는 산수비경에서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이라 했는데, 그중에서 백두산은 호랑이 코,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기록했다.

 

또한 김정호 역시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국토 최동단을 측정하기 위해 호미곶을 일곱 번이나 답사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동쪽인 이곳을 호랑이 꼬리부분이라고 기록했단다.

 

늘 일출과 상생의 손으로만 기억되는 호미곶을 우리나라 호랑이의 기상을 담은 그곳이라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찡해지는 것은 왜일까. 근처에는 유채꽃 단지와 항로표지의 시설과 장비를 전시하는 한국최초의 등대박물관도 들려보고 호미반도 해안둘레길도 걸어볼 것.

 

▲포항의 특미를 맛 볼 시간

 

포항에는 볼 것도 많지만 먹을 것도 천지다. 이제 솔솔 싱싱한 맛 내음이 허기진 배를 채우라고 코를 움직이게 한다. 죽도시장이나 해안도로 주변에는 해산물부터 대게, 어패류, 과메기까지 횟집들이 몰려 있는데, 특히 물회와 겨울철의 특미 과메기가 단연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그래서 물회와 과메기를 먹기로 결정! 회를 물에 타서 후루룩 마시듯 먹는다?

 

이름만 보아도 회를 어떻게든 물과 함께 먹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물회는 동해안 지방의 어느 도시에서나 맛볼 수 있는 대중적인 음식이다. 싱싱하고 맛 좋은 수산물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동해안에서 회를 왜 굳이 물에 넣어서 먹었을까? 재료의 질이 훌륭하면 다른 것과 섞지 않고 먹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모르는 것이 아닐 텐데 말이다.

 

▲뱃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음식

 

회를 물마시듯 먹는 음식이 나오게 된 것은 재료가 아니라 시간 탓이다. 싱싱한 고기는 있으나 그것을 우아하게 와사비에 찍고 된장을 얹어 깻잎에 싸 먹을 여유가 없는 뱃사람들이 처음 물회라는 것을 먹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서둘러 그물을 쟁여 뭍을 떠나 온 그들은 출출함을 달래줄 식사를 배 위에서 해야만 했다. 간단한 과일과 초고추장, 물, 그리고 금방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이 그들이 가진 전부. 아마도 그중 누군가가 그냥 회를 떠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은 심심하다고 했는지 모른다.

 

혹은 시시각각 변하는 먼 바다의 기상과 그물에 걸린 고기떼에 신경을 곧추세워야 하는 그들에게 밥 따로, 반찬 따로의 그럴듯한 식사는 애초부터 사치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커다란 접시에 가자미 한 마리와 배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초고추장과 물을 ‘팍’ 넣은 다음 휘휘 저어 숟가락으로 떠먹는 게 맛도 있거니와 효율적인 식사였다.

 

젓가락도 필요 없고, 배가 흔들려도 괜찮고, 설거지도 접시 하나면 된다. 물회는 그렇게 뱃사람들의 손에 탄생했다. 여름철에는 그저 시원한 맛에, 겨울철에는 ‘쏘주’의 힘을 빌려 후루룩 마시고 나면, 그물을 잡은 뱃사람들의 손에 힘이 불끈 솟을 것이다.

 

그런 물회가 이제는 바닷가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한번쯤 꼭 찾는 별미가 되었다. 동해 바다를 보며 시원하게 한 그릇 들이키는 물회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포항 쪽에서 동해안을 따라 쭉 올라가면서 만나는 지역마다 물회에 사용하는 재료도 다양하다. 가자미나 청어, 혹은 광어를 이용하는 포항 같은 지역도 있고, 오징어를 주로 쓰는 속초 같은 지방도 있다. 태생이 ‘수수한’ 음식인 만큼, 거창한 고급 생선을 물회에 쓰진 않는다(그건 그냥 회로 먹으면 된다).

 

가장 쉽게 잡을 수 있고 가장 값도 싼 ‘잡어’가 이 음식에는 가장 잘 어울린다. 토박이들은 토박이들대로 물회를 별미뿐만 아니라 해장용으로 애용한다. “초고추장하고 마늘 팍팍 넣고 얼음 동동 띄워 마시면 속이 확 풀린다, 이말 아입니꺼!” 주인이 한마디 한다.

 

▲속 시원한 물회와 고소한 과메기

 

어쨌든 주인이 알려주는 대로 회가 푹 잠길 정도로 그릇에 물을 붓고 초고추장과 마늘, 참기름도 적당히 넣은 다음 얼음도 서너 개 띄웠다.

 

새콤달콤한 향기가 절로 입에 침이 고이게 만든다. 숟가락을 들고 바알간 국물과 함께 광어를 퍼 올렸다. 젓가락이 아니라 숟가락으로 회를 먹는 것도 처음이라 기분이 묘하다. 초고추장의 새콤달콤한 매운맛과 고소하고 쫀득한 광어의 촉감, 그리고 아삭거리는 배가 어울린 물회의 맛은 생각보다 훨씬 훌륭하다.

 

회와 초고추장과 배와 참기름의 특징적인 맛이 한꺼번에 느껴져, 보기엔 조촐하나 입 속에서는 나름 진수성찬이다. 시원한 얼음 국물이 광어와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감촉은 입맛을 한층 더 북돋운다. 첫맛이 워낙에 새콤달콤하고 끝맛이 워낙에 시원해서, 해장용으로 즐겨 먹는다는 주인의 말을 믿지 않을 수 없다.

 

물회를 먹을 때 한가지 팁(?)이 있다면, 바로 뱃사람들처럼 먹으라는 것. 젓가락으로 깨작거리지 말고, 숟가락으로 미적거리지 말고, 그릇 채 손에 들고 숟가락으로 건더기와 국물을 입 안에 ‘밀어 넣으라는 뜻’이다.

 

물회는 재료에 따라 도다리로 만든 도다리 물회, 뼈째 얇게 썰어 채소와 버무린 새꼬시 물회, 씹히는 맛이 일품인 해삼과 전복을 함께 버무린 특미 물회, 꽁치 물회 등이 있다.

 

물회의 양념으로는 배, 상치, 잔파 등을 넣고 깨소금, 참기름을 넣어 비벼먹는 것이지만 고추장을 볶아서 만드는 물회와 고추장에 비벼먹는 물회가 있다. 물대신 살짝 얼린 육수를 쓰기도 한다. 이것도 맛 한번 보라며 주인이 작은 접시에 내 온 것은 포항의 명물인 과메기.

 

주변에서 하도 과메기 과메기 해서 접시가 나오자마자 냉큼 한 입 베어 물었다. 조금의 비린내도 없이, 탱탱한 고깃살의 느낌이 고소하고 담백한 고기맛과 함께 씹힌다. 하루 전에 구룡포에 있는 과메기 덕장에서 보았던 풍경들이 순간 식탁 위에 펼쳐지는 듯하다.

 

그곳에서 청어, 꽁치들은 상쾌한 바닷바람을 받으며 바닥에 호박색 기름방울을 똑똑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렇게 사흘 밤낮동안 공중에 매달려 있으면서 기름기는 빠지고 생선 특유의 쫀득함은 그대로 남았다.

 

출처 / 뚜르드몽드 메가진 / 글 전준호 기자 사진 뚜르드몽드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