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의면 오일장(五日場)ㅡ빨갛게 물든 아오리 한입 깨물면…
▲아직은 한낮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함양 안의면 오일장에서 파란 아오리 사과가 계절의 흐름을 알려주었다.
아오리 사과를 고른다면 한쪽이 빨간색이 도는 것으로 골라야 한다.
한낮의 더위는 여전히 맹렬했다. 아스팔트 위는 계란 프라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뜨거웠다. 그럼에도 계절은 말리는 고추 위에서, 시장에 나온 파란 아오리 사과 더미에서 밀려가고 있었다. 태백으로, 정선으로 다니며 여름을 어떻게 보내나 했지만, 계절이 가고 있었다.
1박2일, 경상남도 함양으로 떠났다. 함양은 지리산과 덕유산 자락 사이에 있다. 무주를 넘어 함양으로 향하면 서상이 나온다. 이어 서하, 안의, 수동면으로 이어지며 해발고도가 낮아진다. 사과 사러 서상과 서하를 다니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벌써 10년 전 이야기다.
함양은 지리산을 끼고 있는 사과 산지 중에서 으뜸의 사과가 나왔다. 특히 해발고도가 높은 서상의 사과는 당도가 좋고, 아삭함이 기가 막혔다. 시장을 가기 위해 지곡 나들목에서 나와 안의면으로 갔다. 원래 계획이라면 2일과 7일에 열리는 함양 읍내로 가야 하나 일정이 꼬이고 꼬여 차선으로 안의면 오일장을 선택했다.
군에서 열리는 오일장과 면 단위의 오일장은 규모가 다르다. 상인은 군과 비교해 10분의 1 이하다. 딱 있을 것만 있다. 사실 안의를 선택한 것은 군 홈페이지에 있는 토종 약초 시장도 같이 열린다는 안내도 한몫을 했다. 약초 시장도 열린다면 그나마 괜찮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 면 단위 오일장다웠다.
아는 이들끼리 삼삼오오 이곳저곳 모여 있는 것이 다였다. 번듯한 약초 시장 건물은 있었고, 있었을 뿐이다. 시장이라는 게 물건과 사람이 모여야 한다. 약초 시장이라 건물 지어준다고 사람이, 상품이 모이지 않는다. 일시적인 관심은 예산 낭비만 할 뿐. 꾸준히 해도 될까 말까 한 것이 시장형성. 지치지 않는 지원과 관심만이 답이다.
사과 산지답게 아오리 사과가 시선을 끌고 있었다. 예전에 아오리는 여름 시작과 함께 손수레에 실려 있었다. 대표 여름 사과로 알고 있었고, 그렇게 팔았다. 파란 사과로 말이다. 이건 잘못 알려진 것이다. 사과는 익으면서 색이 변한다. 빨갛게, 때로는 노랗게 말이다.
파랗게도 익지만 아오리는 아니다. 예전 6월에 먹었던 아오리는 풋사과였다. 덜 여문, 여물까 말까 할 때 따서 팔았다. 팔면서 한 이야기는 “아오리는 원래 파래요”였다. 거짓말이었다. 빨갛게 물든 아오리는 맛있다. 신맛이 득세해도 단맛이 빗자루로 신맛을 쓸어버리듯 입안에서 치운다. 파랬던 아오리의 기억은 빨간 아오리를 먹는 순간 잊는다.
아오리를 팔았던 이유는 그나마 파란 것을 먹어도 다른 것보다 단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오리 사과를 고른다면 한쪽이 빨간색이 도는 녀석으로 골라야 한다. 색이 너무 돌아도 좋지 않다. 조생종 사과는 저장성이 약해 금세 무른다. 배도 마찬가지다. 안의 오일장에서 사과 다음으로 많은 게 제피다. 아예 고추 말리듯 장터 한편에서는 산에서 딴 제피를 말리고 있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제피의 알갱이와 껍질을 분리하고 있었다. 작은 제피 알갱이를 모아 빻으면 훌륭한 향신료가 된다. 추어탕, 어탕에 넣거나 고기 양념할 때 넣으면 풍미가 좋아진다. 필자는 집에서 훠궈소스 만들 때 간혹 사용한다. 제피는 산초와 달리 아린 맛에 신맛이 더해져 맛이 고급스럽다.
제피를 보니 지난봄 장터에서 산 제피 잎이 생각났다. 여수였나 하동이었나. 한 바구니 사서 장아찌를 담갔었다. 장아찌 국물을 다시 끓여 넣고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사이 계절은 봄에서 여름 끄트머리에 있었다.
▲약간의 채소와 선지로 속을 채운 피순대는 입에 넣는 순간 부드럽게 풀린다.
휴일이라 열리지 않은 함양 시장으로 시장기를 다스리러 갔다. 터줏대감처럼 든든하게 시장을 지키는 순댓국 식당이 있다. 한자리에서 70년을 묵묵히 순댓국을 팔고 있는 곳으로 피순대가 유명하다.
피순대라는 게 순대 속을 아주 약간의 채소와 선지로만 채운 것이다. 선지만 넣고 만들었기에 시커먼 순대 속 모습에 질겁을 먼저 한다. 용기를 내 입에 넣는 순간 부드럽게 풀린다.
고소한 맛이 깔끔한 국물과 잘 어울린다. 피순대를 잘못 만들면 피비린내 나기 십상이다. 여기는 그럴 염려가 없었다. 필자의 순댓국 선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머리고기다. 머리고기 많이 주는 곳을 좋아한다. 순댓국 먹을 때마다 영광버스터미널 근처 순댓국을 생각하곤 하는데 여기서만큼은 생각나지 않았다.
잘 삶은 머리고기며, 내장 또한 맛만큼 풍족하게 들어 있었다. 예전에는 오가다가 수동에서 어탕을 먹거나, 안의에서 갈비탕을 먹곤 했었다. 출장길에 함양을 지난다면 이제는 순댓국이다. 누군가가 “순댓국은 어디가 맛있어요?” 한다면 여기 내지는 영광이다. 병곡식당 (055)964-2236
▲지역 농산물로 빵을 만드는 비건베이커리도 함양의 명물이 됐다.
산등성이 따라 꼬불꼬불 가는 모노레일은 한번 타고 싶었다. 고소공포증이 있기에 굳이 자학할 마음이 없어 집라인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대봉산 휴양밸리에 모노레일 타러 갔다가 좌절감을 맛봤다. 평일이라 사람 없겠지, 괜찮겠지 했는데 매진이었다.
기왕 온 김에 모노레일 타는 입구까지 올라갔다. 비록 타지는 못해도 해발 700m가 넘는 출발장에서 보는 풍경이 시원했다. 지리산의 넓은 품이 한눈에 들어왔다. 모노레일이든, 집라인이든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가야 한다. 모노레일은 예약 못했지만, 빵은 예약을 했다. 휴양밸리에서 나와 조금만 가면 산속에 자리 잡은 빵집이 있다. 함양에서 나는 농산물로 빵을 만드는 곳으로 여기는 쌀빵 전문이다.
3년 전 엄마가 먼저 귀농하고 8개월 전에 딸까지 내려와 같이 빵을 만들고 있다. 전날 예약하면 몇 시에 찾아오라는 답변대로 찾아가면 된다. 우유, 버터 등을 사용하지 않은 비건 빵이다. 여러 가지 빵 중에서 함양 양파로 만든 빵이 인기다. 식빵도 좋지만, 필자의 입맛에는 단팥빵이 더 좋았다.
부드러운 빵 속에 통팥이 가득 들어 있었다. 전분 가득한 팥소가 아니다. 이런 골짜기에 빵집이 있는 것도 신기했지만, 잠시 빵 사고 먹는 사이에 끊이지 않고 손님이 찾아들고 있었다. 빵집을 나와 도로에서 좌회전하면 휴양밸리, 우회전하면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가 많은 일두고택이 나온다. 잠시 차를 두고 한갓진 골목을 걸으면 바로 힐링된다. 비건베이커리 도하 010-2154-0032
▲지리산과 덕유산 자락을 낀 동네에는 공통 메뉴가 흑돼지와 어탕국수다.
옛날에 키우던 돼지는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작은 몸집을 키우기 위해 외국에서 돼지를 들여와 개량한 것이 지금의 흑돼지다. 흑돼지라고 하면 토종돼지일 듯싶지만 19세기 후반에 들여와 개량한 것들의 후손이다. 함양에 왔으니 흑돼지에 소주 한잔 빠트릴 수 없기에 시내를 걸어다니다 눈에 띈 곳에 들어갔다.
일단은 가격이 저렴했다. 삼겹살, 목살, 특수부위 등이 모두 1만2000원이었다. 다만 가격은 저렴한 대신 시작은 3인분을 주문해야 했다. 특수부위를 주문했다. 특수부위라는 게 특별히 맛있는 부위는 아니다. 특별히 적게 나오는 부위다. 갈매기살, 등심 덧살, 항정살, 삼겹살 구성으로 삼겹살이 그중 맛이 제일 없는 부위다.
흑돼지든, 백돼지든 비계 부분이 적을수록 좋다. 적당한 지방이 있으면 좋은데 삼겹살은 너무 많다. 삼겹에 껍질 붙인 것을 오겹살이라고 한다. 오겹살은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손해다. 껍질은 다른 부위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저렴한 껍질이 삼겹살 부위에 붙어 있으면 껍질 가격이 아니라 삼겹살 가격이 된다.
게다가 서로 익는 속도도 다르거니와 익히는 정도도 달라 맛이 없다. 돼지 먹을 때 오겹살이 아닌 삼겹살을 주문해야 한다. 굳이 껍질이 당긴다면 따로 주문하는 것이 맞다. 바우석쇠 (055)964-2208
출처 / 경향신문=김진영 시품MD
'▣新八道(신팔도)*紀行錄 > ⊙경남 부산****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남 밀양ㅡ영남 알프스ㅡ1020m 첩첩산중 "실타래' 폭포수의 반가운 가을 마중 (0) | 2021.08.31 |
---|---|
경남 함양ㅡ한 발 물러서니...山과 물이 한 발 더 내게로 다가오네 (0) | 2021.08.30 |
부산 사하ㅡ다대포(多大浦)ㅡ비내리는 날, 다대포 해변과 몰운대 (0) | 2021.08.24 |
경남 남해ㅡ한국의 절집 순례ㅡ금산 보리암(菩提庵) (0) | 2021.07.20 |
부산 영도ㅡ불밝힌 산동네. 마천루. 교각....부산 밤바다는 언제나 황홀하다 (0) | 2021.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