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가고 싶다 / 섬마다 비경, 섬마다 사연··· 통영 섬 여행
▲통영에는 570여개의 크고 작은 섬이 있다.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지 않아도 보석처럼 바다 위에 흩뿌려진 섬들을 조망할 수 있는 장소도 여러 곳이다. 산양읍 미남리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통영수산과학관도 그 중 한 곳이다.
섬의 본질은 고립과 단절이다. 단점뿐일까. 대신 고유의 전통과 문화가 섬에 남아있다. 그래서 섬은 언제나 매력적인 여행지다. 정부는 올해부터 8월8일을 ‘섬의날’로 정하고 국가기념일로 삼았다. 소외된 섬 주민의 생활환경을 개선하고 국내 관광의 거점으로 섬을 육성하자는 취지다.
지난 8일 제1회 ‘섬의날’을 맞아 정재숙 문화재청장(58)과 함께 통영을 찾았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을 품은 통영에는 무려 570여개의 섬이 있다. 그중에서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18호)으로 지정된 소매물도 등대섬을 목적지로 잡았다.
■ 쿠크다스 섬에서 둘리 섬까지
매물도 하면 대매물도와 소매물도, 등대섬 셋을 모두 이른다. 거리를 따지면 매물도는 거제도에서 훨씬 가깝지만 행정구역으론 통영시 한산면에 속해 있다. 여행객들이 주로 찾는 소매물도는 통영항에서 여객선으로 1시간10분쯤 걸린다. 평소 하루 3회 운항하지만 주말·성수기엔 5회로 운항 횟수가 는다.
▲약도출처 / naver 백과
▲소매물도와 등대섬은 하루 1~2번 썰물 때 5~6시간씩 몽돌길로 연결된다. 몽돌길은 두 섬이 해안으로 가늘게 이어진
여린 목이란 뜻으로 ‘열목개’라 불린다.
관공선을 탄 일행은 여객선보다 30분쯤 빨리 소매물도에 도착했다. 물때를 맞춰 도착한 덕분에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연결하는 70여m 길이의 ‘열목개’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열목은 두 섬이 해안으로 가늘게 이어진 여린 목이란 뜻이다. 열목개는 보통 썰물 때 하루 한 차례 5~6시간씩 바닷길을 연다. 파도에 닳은 몽돌이 가지런히 쌓인 길을 따라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걸어서 오갈 수 있다.
등대섬은 말 그대로 등대가 있어 붙은 이름이다. 소매물도 망태봉 정상에서 등대섬을 내려다보는 풍경 사진은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 번쯤 봤을 법하다. 쪽빛 바다와 푸른 초지, 새하얀 등대가 어우러진 이국적 풍경은 광고 촬영지로 유명해진 지 오래고 소매물도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각인돼왔다.
▲열린 바닷길로 섬을 오가는 여행객들
거꾸로 등대 쪽에서 바라본 소매물도의 절경은 비교적 덜 알려졌다. 등대섬 선착장에서 잘 정돈된 나무데크 길을 10여분만 오르면 섬 정상부 등대 바로 곁에서 소매물도 해안가의 해식애와 해식동굴 등 기암괴석이 만든 비경을 넉넉히 즐길 수 있다. 목덜미의 땀을 씻어주는 바닷바람은 덤이다.
소매물도에 ‘아기 공룡 둘리’가 있으니 찾아보라는 안명덕 해설사의 말에 일행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아졌다. 열목개와 연결된 해안 능선과 봉우리는 과연 엎드린 공룡의 모습 그대로였다. 작은 두 섬엔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1917년 처음 불 밝힌 등대섬 등대는 100년 넘은 지금도 13초마다 최대 48㎞ 거리의 바다를 향해 빛을 쏘고 있다.
▲등대섬에서 바라본 소매물도의 ‘아기공룡 둘리’
소매물도 망태봉 정상엔 1970~1980년대 밀수선을 감시하던 초소를 재단장한 관세역사관이 최근 문을 열었다. 정재숙 청장은 “그동안 문화재청이 경관적 가치를 고려해 명승을 지정하는 일에만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국민들이 이런 곳을 더 많이 찾고 즐길 수 있도록 장소가 품은 역사와 그 의미를 알리는 작업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 섬에서 섬을 만나다
통영에는 배를 타지 않고도 주변 섬의 아름다운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가 여러 곳 있다. 대표적인 곳이 미륵산(461m)이다. 미륵산은 통영 시내와 다리 두 개로 연결된 커다란 섬 미륵도 가운데 있다. 통영케이블카(대인 왕복 1만4000원)를 타면 2㎞에 이르는 선로를 따라 10분 만에 미륵산 8부 능선에 위치한 상부정류장에 닿는다.
정류장에서 정상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20여분. 산정에서는 한려해상국립공원에 그림처럼 펼쳐진 섬과 바다, 통영항의 모습을 360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청명한 날에는 대마도까지 눈에 담을 수 있다.
▲통영국제음악당 한켠에 마련된 윤이상 추모지
미륵도 북동쪽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통영국제음악당도 주변 섬의 포근한 풍경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음악당의 너른 마당에서 보면 화도, 죽도, 한산도 등 병풍처럼 둘러선 앞 섬들이 능선처럼 이어져 꼭 수묵화를 보는 것 같다.
음악당 주차장 뒤편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뜰에는 통영 출신의 세계적 음악가 윤이상의 추모지가 조성돼 있다. ‘처염상정’(處染常淨·탁한 곳에 있어도 물들지 않고 맑은 본성을 간직한다는 뜻) 네 글자와 이름 석 자, 생몰연도만 적힌 소박한 비석은 선생의 고결한 삶을 닮았다
▲달아전망대에서 바라본 한려수도
미륵도 남쪽에도 섬 전망대가 있다. 통영 달아공원에 딸린 달아전망대에 서면 대매물도부터 비진도, 소지도, 연대도, 연화도, 만지도 등 통영 앞바다의 섬들이 눈앞에서 일렬로 줄달음친다. 달아전망대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0여분 언덕까지 걸어 올라가야 하고 주변의 나무들이 시야를 종종 방해한다.
▲미륵도 남쪽 언덕 위에 자리 잡은 통영수산과학관
인근 미남리 언덕 위의 통영수산과학관에선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자마자 학림도, 송도, 저도 등 코앞의 섬들을 감상할 수 있다. 전망을 즐긴 뒤에는 아이들의 자연학습장이자 가족휴양공간 역할도 하는 과학관도 둘러볼 만하다.
■ 섬마다 사연이 주렁주렁
일주도로를 따라 미륵도를 한 바퀴 돈 뒤엔 통영 섬여행을 마무리하는 코스로 섬을 주제로 한 사진전을 관람했다. 통영시청 제2청사 해미당 갤러리에서 ‘섬 시인’으로 불리는 강제윤 작가의 ‘당신에게, 섬’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섬의날을 기념해 강 작가가 소장으로 있는 섬연구소와 통영시가 함께 주최한 행사였다.
▲통영 대매물도. / 강제윤 작가 제공
강 작가는 20여년간 400개가 넘는 섬을 탐방한 국내 최고 섬 전문가다. 전시회엔 그동안 섬에서 찍은 사진 중 엄선한 50여점이 걸렸다. 가장 눈여겨봐야 할 작품이 뭐냐는 질문에 강 작가는 전남 장흥 노력도에서 찍은 잔칫상 사진을 꼽았다.
얼핏 보면 평범한 상차림 아닌가 싶지만 김부각부터 큼직하게 썬 해삼에 갯장어회, 양념한 장어구이, 푸짐하게 담은 매생이국까지 눈길 끄는 음식이 많았다.
“특급호텔 뷔페에서도 맛볼 수 없는 독특하고 신선한 음식이 작은 섬 경로당 잔칫상을 꽉 채운 거예요. 육지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정말 품격있고 빼어난 우리 음식문화의 원형이 섬에는 아직 남아 있다니까요.”
▲장흥 노력도 잔칫상. / 강제윤 작가 제공
여수 수항도를 멀리서 찍은 사진은 파란 지붕의 시골집 두 채 외에는 눈에 띄는 게 도통 없었다. 의미를 묻자 사연이 줄줄 나왔다. 유일한 주민인 위·아랫집 할머니들이 몸이 아파 치료 받으러 육지로 나간 사이 남겨진 개 세 마리가 앙상하게 뼈만 남도록 굶고 있었단다.
강 작가가 개들을 구조하고 지인인 배우 류승룡과 영화감독 임순례가 치료비와 사료값을 보태 살려냈다는 얘길 들으니 지극히 평범했던 사진이 달리 보였다. 오랜 세월 찍어 모은 사진에는 저마다 곡진한 사연이 있었다. 진도 팽목항에서 바위 끝에 위태롭게 매달려 굴을 캐는 할머니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비진도, 두미도, 욕지도, 미륵도, 대매물도 등 통영의 섬들도 여럿 그속에 섞여 있었다.
전시회장 한쪽 벽에 붙은 강 작가의 시 ‘콩 심는 날’이 그린 풍경에서 그가 주유한 섬들의 풍경이 아스라이 그려졌다. “봄날 비진도/ 노인은 밭에 나와 팥을 심는다.// 메주콩은 안 심으시는가./ 콩은 언제 심으세요?// 노인은 돌담에 기대선 감나무를 올려다본다./ 아직 멀었어요.// 콩은/ 감나무 이파리 세 잎 날 때 심어요.”
▲통영 비진도 해변. / 강제윤 작가 제공
▲통영 두미도 석양. / 강제윤 작가 제공
출처 / Kyunghyang.com / 통영=김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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