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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八道(신팔도)*紀行錄/⊙강원도******기행

강원 인제. 홍천ㅡ꼭꼭 숨은 숲그늘. 수묵화 같은 폭포. 더위도 땀을 씻네

by 삼수갑산 2021. 9. 1.

인제 ~ 홍천ㅡ꼭꼭 숨은 숲그늘. 수묵화 같은 폭포. 더위도 땀을 씻네 

▲강원 홍천 백암산의 가령폭포. 바위를 타고 넘은 물줄기가 그려내는 매혹적인 양감(量感)이 인상적이다. 숲길을 따라 딱 500m만 걸으면 만날 수 있는 이 근사한 폭포가 한여름에도 인적없이 비워져 있었다. 이날 폭포에서 마주친 건 산책 삼아 나섰다는 인근 마을 주민 일행 넷뿐이었다.

 

해마다 이맘때면 내로라하는 이름난 명소들은 피서객들로 온통 북새통을 이룹니다. 동해안과 서해안의 해변은 물론이고, 계곡마다 수영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피서객들이 차고 넘칩니다. 꼭꼭 숨겨둔 회심의 깊은 오지마을에도 대체 어찌 알고 찾아드는지 휴가 차량으로 가득 찹니다.

 

어울려 떠들썩하게 즐기는 것도 피서의 즐거움이라지만 영역을 확보하는 금을 긋고, 다른 이들을 끊임없이 밀쳐내야 하는 휴가는 휴식이라기보다는 스트레스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호젓한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여기는 어떻습니까. 강원 북부의 홍천과 인제의 경계를 따라 내촌천과 내린천의 물길을 끼고 있는 명소를 이어 붙인 길. 인제에서는 방태산 깊은 산중의 개인약수로 향하는 개인동 계곡에 들어섰고, 홍천에서는 장쾌한 위용의 가령폭포 아래에 서봤습니다.

 

짙은 숲 그늘과 차고 맑은 물로 염천의 더위쯤은 금세 잊을 수 있는 곳들입니다. 여기다가 홍천의 내촌천을 끼고 있는 서곡마을의 그윽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탭니다. 길은 홍천과 인제를 넘나들었지만, 지도의 중심을 인제의 상남면 소재지에 두면 반지름 12.5㎞의 원 안에 다 들어가는 곳들입니다.

# 가장 높은 곳의 가장 정갈한 물…개인약수

차가운 계곡물이 넘치는 초록의 숲길에 들어서자마자 오슬오슬 소름이 돋았다. 장마로 흠뻑 물을 머금은 여름 계곡은 이끼로 가득했다. 현재 기온 17도. 그 온도가 잘 믿기지 않았던 건 마침 서울의 한낮 최고기온이 32.6도까지 오른 날이었기 때문이다. 청량한 물소리만 가득한 숲은 달궈진 양철지붕과 진득한 아스팔트의 열기로 가득한 도시와 아득히 멀었다.

여기는 강원 인제의 방태산. 이 길의 끝에 개인약수가 있다. 개인약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또 먼 곳에 있는 약수다. 1000m에 육박하는 해발고도도 그렇지만, 약수터까지는 계곡을 따라 1.5㎞를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 길이 쉽기나 한가. 가쁜 숨을 몰아쉬게 하는 경사도 20%의 가파른 산길이다. 크고 작은 돌더미가 우르르 쏟아진 길을 따라 방태산의 주억봉(1443.7m)과 푯대봉(1435.6m) 사이 능선의 해발 993m 계곡사면에 개인약수가 있다.

개인약수는 천연기념물이다.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약수는 여기 개인약수와 설악산의 오색약수, 홍천의 삼봉약수를 합쳐 딱 3곳뿐이다. 그런데 개인약수는 다른 약수보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등산에 버금가는 발품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약수 한잔 마시겠다고 숨이 턱에 차는 가파른 길을 사뭇 걸어 올라야 한다는 얘기다.

모름지기 약(藥)이란 흔전만전한 것보다는 구하기 어려운 게 더 효험이 뛰어난 법. 약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개인약수에는 유독 약수의 효험에 얽힌 이야기가 많다.

 

업혀왔던 환자가 개인약수를 마시고 몇 달 뒤에 걸어나갔다는 얘기도 있고, 부정한 사람이 드나들면 물맛이 맹탕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목격담을 빌려 전해지는 이런 얘기들은 약수의 뛰어난 성분을 넘어서 신령한 기운을 뿜어내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 때문이었으리라.

 

▲함경도 포수 지덕삼이 1891년에 발견했다는 강원 인제 방태산 자락의 개인약수로 이어지는 청량하고 서늘한 계곡. 개인약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먼 곳에 있는 약수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개인약수 효험의 절반쯤은 이런 원시림의 자연을 왕복 1시간 30분쯤 누리는 것에서 얻어지는 듯하다.

 

# 몸·마음 기분 좋은 긴장…약수 가는 길

폭염으로 뜨거운 한여름에 개인 약수를 찾아가는 건 약수 때문만은 아니다. 약이 되는 건 물이라기보다, 거기까지 가는 길에서 만나는 서늘하고 청량한 자연이다. 충만한 초록의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 그 길이야말로 더위에 이완된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거친 바위길을 올라온 뜨거운 숨에다 붓는 아린 맛의 탄산 약수도 빼놓을 수 없지만 말이다. 모르긴 해도 업혀 들어왔다가 약수를 마시고 걸어나갔다는 환자를 치유한 것도, 기실 맑은 공기와 숲의 역할이 절반은 넘지 싶었다.

개인약수로 오르는 계곡 길. 숲 그늘로 들어서자마자 냉기가 감돌았다. 기온을 끌어내린 건 청량한 숲 그늘과 계곡을 흠뻑 적시는 맑고 시린 물이다. 약수로 오르는 길은 계곡 트레킹을 방불케 한다. 내내 계곡을 딛고 물을 건넌다. 어둑한 숲 그늘의 계곡을 따라 미끄러운 이끼 바위를 디딜 때마다, 몸과 마음의 근육이 기분 좋은 긴장으로 팽팽히 당겨졌다.

계곡 길에 오르면 내내 힘찬 물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계곡이 가파르니 물살도 거세다. 크기는 작지만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폭포가 곳곳에서 흰 포말을 일으키며 쏟아져 내린다. 계곡 주변에는 온통 이끼와 양치식물들로 가득해 신령스러운 분위기마저 풍긴다. 물살로 씻긴 바위 더미를 딛기도 하고, 계곡 옆으로 바짝 붙은 숲길을 걷기도 하면서 길은 이어졌다.

숲길을 들어선 지 40분 만에 개인약수에 닿았다. 약수 주변 바위들이 약수의 철분 성분 때문에 붉게 물들어 있었다. 비릿한 철분이 섞인 알싸한 맛. 입안에서 ‘싸아’ 하고 터지는 탄산이 몸과 마음에 진득하게 달라붙은 독을 씻어 내는 기분이었다. 개인약수의 맛과 효험은 약수까지 가는 길에서 몸이 바친 노고와 깊은 들숨, 그리고 때 묻지 않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강원 홍천의 가령폭포를 찾아가다 아홉사리 고개 정상 부근에서 만난 자작나무 군락.

 

# 오지서 즐기는 물놀이…인제 미산계곡

개인약수가 솟는 방태산은 천연림으로 이뤄진 거대한 산이다. 산이 거느린 계곡 곳곳에 깊은 오지가 있다. 이른바 ‘삼둔 사가리’다.
방태산 남쪽의 살둔, 월둔, 달둔을 합쳐 ‘삼둔’이라 하고, 북쪽의 아침가리, 곁가리, 적가리, 연가리를 ‘사가리’라 부른다. 조선 시대 예언서 ‘정감록’에 ‘난리를 피해 능히 숨을만한 곳’으로 삼둔사가리를 꼽았다는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떠돌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정감록을 이본(異本)까지 다 뒤져도 ‘삼둔사가리’란 말은 한 줄도 없다. 정감록은 난리를 피하는 ‘십승지지’로 소백과 태백 사이, 그러니까 이른바 ‘양백지간(兩百之間)’을 꼽았을 따름이다.

그렇더라도 삼둔사가리는 예나 지금이나 깊고 어둑한 오지다. 방태산의 허리쯤에 난 산길을 넘어 찾아가야 하는 개인약수도 깊기는 마찬가지였다. 정감록의 십승지지는 아니지만 누구든 거기 숨어든다면 아무도 찾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방태산의 남쪽 산자락 아래는 미산계곡이 굽이쳐 흐른다. 미산계곡은 홍천과 인제 땅을 넘나들면서 흐르는 내린천의 상류다. 말이 계곡이지, 미산계곡의 규모는 웬만한 강폭에 버금갈 정도로 넓고, 여울도 급하다.

 

미산계곡의 물은 바닥이 환히 비칠 정도로 맑기도 하거니와 물소리도 청량하기 이를 데 없다. 빼어난 경관과 맑은 계곡 물 때문에 휴가철이면 피서객들이 몰려들지만, 워낙 계곡이 길고 넓어 한나절쯤 더위를 피해 호젓하게 놀 수 있는 곳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미산계곡은 1인용 튜브보트를 등에 멘 채 물에 들어가서 즐기는 신종 레포츠 ‘리버버깅’의 명소이기도 하다. 급류를 따라 내려오는 모습이 흡사 한 마리 벌레 같다고 해서 튜브보트 장비에 ‘강(리버·River)의 벌레(버그·Bug)’란 이름이 붙여졌다.

 

‘리버버그’는 장비의 이름이고, 이를 타고 즐기는 레포츠를 ‘리버버깅’이라 부른다. 위험해 보이지만 30분 정도의 간단한 교육만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빼어난 계곡의 경관 속에서 흰 포말의 급류에 몸을 맡기는 리버버깅의 짜릿함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 폭포 하나를 독차지…홍천 가령폭포

 

▲ 강원 홍천의 척야산 문화수목원에 세워진 정자 청로각에서 내려다 본 내촌천변의 도로.

굽은 물길을 따라 이어진 길이 유연하다.

 

인제에 미산계곡이 있다면, 홍천에는 내촌천이 있다. 내촌천은 홍천 동쪽의 고산준령에서 실핏줄처럼 합류하는 물길이 한데 모여 흐르는, 홍천강 최상류의 물길이다. 내촌천을 이루는 물길 중의 하나가, 홍천과 인제의 경계에 솟은 백암산(1097.1m)의 오지를 따라 흘러내리는 계곡이다.

 

그 계곡의 물길에 수묵화로 그려 넣은 듯한 운치 있는 폭포가 걸려 있다. 기암절벽에서 유연한 물줄기를 드리우고 있는 가령폭포다. ‘홍천 9경(景)’ 중에 다섯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외지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가령폭포는 홍천의 내촌면에서 인제의 상남면으로 이어지는 451번 지방도로에서 불과 1.5㎞만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한여름 행락객들이 몰리지만 않는다면 차로 폭포 앞의 절집 연화사까지 들어갈 수 있는데, 거기서 초록의 터널 같은 부드러운 숲길을 따라 500m만 걸으면 폭포 아래 닿는다. 폭포로 이어지는 숲길은 한쪽은 맑은 계곡 물이, 다른 쪽은 도열한 낙엽송이 늘어서 있는데, 20분 남짓의 거리가 짧아 아쉬울 정도다.

가령폭포는 짧은 산행 거리와 아담한 계곡의 규모와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웅장하다. 물에 몸을 담그지 않고,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폭포는 훌륭했다. 초록이 하늘을 가린 숲길을 걷다가 물소리에 놀라 문득 고개를 쳐들자 거기 폭포가 걸려 있었다. 폭포는 물을 쏟아내면서 바람까지 밀어내는데, 폭포 앞에 서자 폭포가 흩뿌리는 차가운 습기와 서늘한 바람으로 금세 땀이 식었다.

가령폭포는 인근 주민들만 알음알음 찾아오는 곳이라 평일이라면 한여름에도 인적이 드물다. 휴가철이 시작됐지만 가령폭포에 머무는 동안 만난 건 중년의 등산객 한 팀뿐이었다. 휴가철 피크 시즌만 피한다면 이렇듯 근사한 폭포를 독차지할 수도 있지 싶을 정도였다.

# 내촌천 아름다운 여울…사곡마을 덕탄

내촌천의 또 한 곳의 명소가 가령폭포와 지척에 있는 홍천 서곡마을의 ‘덕탄(德灘)’이다. 여울(灘)의 이름에다 ‘덕(德)’을 얹은 곳답게, 기기묘묘한 순백의 바위 사이를 흐르는 맑은 물이 울창한 소나무와 어우러져 선경을 빚어내는 곳이다.

 

덕탄은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유원지로 이름을 날리던 곳이었으나, 1.5㎞ 하류 쪽에 상수도 취수장이 들어서고 상수도보호권장구역이 되면서 물놀이가 금지되고 유원지가 폐쇄돼 잊힌 곳이다.

 

여름이면 몰려들던 피서객들을 상대로 민박을 치거나 음식을 만들어 팔던 주민들은 유원지가 문을 닫자 ‘이장이 도장을 한 번 잘 못 찍어서…’라며 분통을 터뜨렸지만, 행락객들의 출입을 막은 덕에 덕탄의 경관은 오롯이 살아남았다.

지금도 서곡마을을 흘러내리는 덕탄 일대에서는 물놀이를 할 수 없지만, 백로 떼가 한가로이 나는 내촌천의 반짝이는 물길을 따라 생태탐방로가 놓였다. 탐방로를 따라 덕탄의 여울을 따라 걷거나 초록의 마을 풍경이 고요하게 수면에 찍히는 물가의 경관을 즐길 수 있다.

서곡마을에는 생태탐방로에다 길을 더 이어붙인 ‘이야기 골프길’도 있다. ‘시골 마을에서 웬 골프냐’는 의문을 대학교수 출신으로 서곡마을에 귀농했다는 주민 김승환(75) 씨가 풀어줬다.

마을 주민들과 귀농한 이들이 의기투합해 마을의 명소를 정했는데, 그게 꼭 골프 코스의 홀 수와 같은 18곳이었단다. 명소를 잇는 도보 길을 조성한 뒤에 이를 알리기 위해 궁리한 끝에 나온 아이디어가 ‘골프길’이었다. 골프처럼 18개 도보 코스를 돌면서, 각 코스별 예상 걸음 수를 먼저 제시한 뒤에 실제 걸음 숫자와 차이가 적은 이를 가려내는 게임도 고안해냈다.

서곡마을은 폭염에도 아침저녁으로 긴팔을 입어야 할 정도로 서늘하다. 마을 주민들이 마을명소의 전설과 역사를 써서 펴낸 책 ‘서곡마을 명소해설집’을 한 권 받아들고, 덕탄의 생태탐방로를 가볍게 걸으며 경관을 즐긴다면 휴가여행이 더 풍성해지겠다.

 

개인약수 가는 길=춘천∼동홍천 고속도로를 타고 동홍천 나들목으로 나와 성산교차로에서 우회전. 44번 국도를 타고 가다 철정사거리에서 상남 방면으로 우회전해 상남까지 간다. 상남 우체국 앞에서 446번 지방도로로 갈아타고 미산계곡을 따라가다 미사약수교를 건너면 개인약수로 가는 외길이 나온다. 개인약수 들머리가 시작되는 산장 쪽에 주차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