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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ㅡ미케네(MYCENAE) / 나프플리온(Nafplion)

by 삼수갑산 2022. 9. 26.

그리스ㅡ미케네(MYCENAE) / 나프플리온(Nafplion) 

▲미케네 언덕

 

 미케네는 아르골리스(Argolis)평야에 솟아있는 두개의 산 즉  프로피티스 일리아스(Profitis Illias)와 사라(Sara)사이의언덕에 건설되었다. 신화에 따르면 미케네는 제우스(Zeus)와 다나에(Danae)의 아들 페르세우스(Perseus)가 세웠다.

 

요새를 세우기 위하여 페르세우스는 아시아에서 온 외눈박이 거인 시클로페즈(Cyclopes)를 고용하였는데후에 성벽은 시클로피안(Cyclopean)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기원전 1600~1400년 경에 번성했던 미케네 문명의 유적은 산으로 둘러싸인 아르골리스(Argolis) 평야의북쪽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조그마한 언덕 위에서 발견되었다. 미케네(Mycenae)와 티린스(Tiryns) 유적은1999년 12월 4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기원전 15~12세기에 동지중해 문명의 중심이었던미케네 문명은 그리스 고대 문화 발전에 큰 역활을 하였다. 두 성채 도시는서양의 예술과 문학에 거의 3천년 간 영향을 끼친 호머(Homeric), 일리아드(Iliad),오딧세이(Odyssey)의 서사시와 연관이 되어 있다.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미케네 유적지 모형

 

미케네를 발굴한 사람은 독일인 하인리히 슐리만이다. 1870~1873년 트로이를 발굴한 슐리만은1876년 미케네 발굴에 성공함으로써  트로이 전쟁 당시 연합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전설이 아닌실존 인물임을 밝혀냈다.

 

그의 미케네 발굴은 문명의 발전사가 크레타 문명- 에게 해 문명-그리스 문명의단계를 거쳤음을 밝혀 전 세계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위 요도의 범례에서   II. 애기스투스(Aigisthus)는 아가멤논의 사촌이며 왕비의 간부이다. III. 클리템네스트(Clytemnestra) 는 아가멤논의 왕비이다. 

 

요새는 3번의 다른 시기에 건설되었다(1350 BC, 1250 BC & 1225 BC). 요새 지역은 3각형 모양이고 면적은 30,000 평방 m 이다.

 

▲미케네 성채 도시 복원 조감도

 

▲미케네  입구 남서쪽 성벽

 

사진 오른편 하단에 성문(사자문)이 보인다.사자의 문 주위로 2 m 가 넘는 큰 돌로 정교하게 쌓아놓은 성벽이 이어진다.

 

곳에 따라 성벽의 두께가 14 m 가 넘어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가멤논이 왕으로 있던미케네의 위용을 짐작케 한다.

 

▲성채 도시의 입구 사자문(Lion Gate)

 

▲사자문(Lion Gate)루

 

길이 3.6 m 의 거대한 석재 들보를 얹어 놓은 형태인데미케네 성을 들어서는 입구에 배치해  미케네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사자문을 지나 바로 오른쪽에 원형 묘지가 있다.  이곳은 기둥없이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곳으로돔형의 천정을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원형 분묘의 복원 조감도

 

이곳을 발굴한 슐리만은 미케네가 단지 신화속의 성城이 아닌 실존했던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결정적인 증거를 발굴해 내는데  바로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 이다. 이 황금 마스크는일종의 "데드 마스크(Dead Mask)"로서 그리스식 수의로 보면 될것이다. 

 

▲위에서 내려다 본 원형 분묘의 유구

 

성내의 원형 분묘는 왕가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원형 분묘 주변 모습

 

▲왕궁(Palace) 복원 개념도

 

미케네 왕궁 건물은 언덕 맨 꼭대기에 세워졌었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유구에는 주?돌로 보이는 흔적만 남아 있을 뿐 폐허 그 자체다. 규모도 그리 크지 않은 기원전 13세기의 유적이지만헬라도스 시기(Helladic period : 3000~2000 BC)에 사용되었던 증거가 있다. 왕궁 건물은 커다란 궁정(court)과 메가론(Megaron=콘서트 홀)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궁 터 모형(Model of Palace)

 

메가론 중앙에는 커다란 화로가 설치되어 있다. 왕좌는 남쪽 벽에 있었는데언덕 경사면 쪽으로 쓰러져 파괴되었으나 후에 재건되었다.

 

▲왕궁 메가론(홀) 복원도

 

메가론은 정치, 행정, 군사 그리고 경제의 중심이었다. 이 건물은 BC13세기 말에화재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BC12세기에 건물 일부가 재건되었으나지난 세기의  영광은 돌아올 수 없었다

 

▲동북쪽 확장지(Northeast Extension)의 성벽

 

동북쪽 확장지는 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확보하여야 하는 지역이다.

 

지하 저수조의 건설은 미케네 건축술에서도 가장 괄목할 만한 것이다.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는돌로 내쌓기가 되어 있고 입구는 요새 내부에서 성벽 밑으로 비스듬히 굴착되어  성벽 밖에서 끝난다.

 

깊이는 18 m 로 외부의 샘으로 부터 물을 공급 받기 위한 것이다. 내부에는 조명시설이 없어 손전등이 필수이다.중간에 차단되어 끝까지 내려가 볼 수는 없다.

 

▲지상 저수조

 

▲성채의 후문

 

▲사자 지하 납골당(Lion Tholos Tomb)입구 와 내부

 

지하 납골당 또는 벌집 묘지로 불리는 '사자 지하 납골당'은 사자문 근처에 위치하기 때문에붙여진 이름이다. BC 14세기 초에 건설되었다. 15 m 높이의 천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여기서 발굴된 유물은 없다.

 

▲사자 지하 납골당 전경

 

지하 납골당 혹은 벌집 묘지로 불리는 "아트레우스의 보고(Treasury of Atreus)" 또는 "아가멤논의 묘(Tomb of Agamemnon)"는  미케네의 건축에 있어 기념비적인 걸작이다.

 

BC 14세기에 건축되었다. 입구 통로, 입구, 아치형 천장을 가진 원추형 납골당이고 작은  방이 붙어 있다..

 

▲보고(寶庫)의 내부 모습과 설계도

 

안내판의 설계도는 너무 낡아서 대강의 내용 밖에는 알아 볼 수가 없다.모든 묘지가 그렇듯이 완전히 도굴되고 남겨진 유물이 없어 아무런 학술적 자료를 얻을 수 없다.

 

▲ 각국의 언어로 "환 영" 인사를 적어 놓았다. 중국어는 정자, 약자, 간자체가 다 있고일본어는 '이랏샤이마세'

똑같은 말이 두번 들어가 있다.

 

◆미케네 박물관

 

성채 입구에 있는 미케네 출토 유물 박물관은 규모가 크지는 않으나 다양한 고대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이곳에서 발굴된 아가멤논의 황금 마스크는 정작 이곳에 있지 않고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가 있다.미케네의 신화와 관련된 도자기 그림이 다수 전시되어 있는게 특색이다.

 

▲헤라클레스(Hercules)의 제1 과업 과 올림포스 입성

 

왼편 : 헤라클레스가 속죄의 과업으로 부여받은 12개의 과업 중 첫번째인 네메아(Nemea)의 사자를 죽이고 있다.

              오른편 : 헤라클레스가 속죄의 과업을 마치고 올림포스로 올라가고 있다.      

 

트로이로 출정할 연합군 사령관 아가멤논의 함대가 강풍으로 출항하지 못하자 예언자에게 문의해 보니아가멤논 과 메넬라우스가 아르테미스(Artemis) 여신의 사슴을 죽인 탓이니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니아를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예언대로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치고 있다.

 

▲ 오레스테스(Orestes)의 복수

 

딸을 제물로 희생시킨 남편 아가멤논에 대한 증오로 클리템네스트라(Clytemnestra)는 그녀의 간부이자 남편의 사촌인 애기스투스(Aegisthos)와 작당하여 개선한 아가멤논을 살해한다.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누나 엘렉트라(Elektra)의 사주를 받아 간부 애기스투스를 살해(왼편 그림)하고 어머니 마저 살해(오른편 그림)한다.

 

▲아킬레스(Achilles) 와 헥토르(Hector)

 

트로이의 왕자(파리스의 형) 헥토르가 아킬레스를 이길 수 없음을 알면서도 파리스를 대신해아킬레스와 결투를 한다. 상황으로 보아 왼편이 아킬레스로 보인다. 헥토르는 죽임을 당한다.

 

▲아킬레스(AXILEYS)의 죽음

 

불사신 아킬레스도 "아킬레스의 약점" 에  파리스의 화살을 맞고 결국 죽는다

아이아스(AIAS : 그림의 오른편 상단 글자)가 아킬레스의 시신을 거두어 간다.

 

청동 유물 과 금괴/금화

 

◆나프플리온(Nafplion)

 

나프플리온은 미케네에서 불과 30 km 남쪽에 위치한 아르골리코스(Argolicos)만灣의 항구도시이다.

신화에 따르면 나프플리온은 포세이돈의 아들 나프폴리오스가 세운 항구다.

아테네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이곳 나프플리온이 수도였다.

 

▲나프플리온 시가지에서 올려다 보이는 팔라미디(Palamidi) 요새

 

팔라미디 요새는 1715년 베네치아 사람이 건설했는데 성이 완성되기도 전에 터키 군에 점령 당한어이없는 역사를 가진 성이다. 반면에 19세기 초 그리스 독립전쟁 당시에는 15개월 동안이나 터키 군이 포위를 했어도 함락되지 않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크로나프플리아를 감싸고 있는 성벽

 

▲팔라미디 요새와 절벽에 설치된 계단

 

▲나프플리온 남쪽 아크로나프플리아에서 내려다 보이는 구시가지

 

▲나프플리온 항에 떠 있는 브로치(Bourtzi) 요새

 

작은 섬(암초)위에 건설한 항구 방어용 요새이다. 베네치아 군이 터키군을 막기위해 세운 요새인데19세기에는 사형 집행인들이 은퇴하여 살았다고 한다.

 

▲아크로나프플리아 구시가지의 골목길

 

▲팔라미디 요새를 오르는 계단에서 본 아크로나프플리아(왼편) 요새와 구시가지

 

정방형의 타워 형태의 작은 건축물이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서 오토만과 용감히 싸우고 전사한 프랑스 필레네 로버트(Phihellene Robert)의 이름을 받은 요새이다. 계단을 통제하는데 필요하고나프플리온 시내와 제일 가깝다.

 

▲요새 입구

 

나프플리온 동쪽, 해발 216 m 의 고지 위에 팔라미디 요새가 있다. 베네치아가 두번째 지배하던1711~1715년에 건설되었는데 성이 완성되기도 전에 터키 군에게 점령 당하였다가 1822년 11월 29일,그리스군의 지휘관 스태코스 스태코포울로스(Staikos Staikopoulos)와 350명의 정예 병사가 요새에 침투하여 피를 보지않고 터키군을 항복시켜 요새를 탈환하였다.

 

그리스 독립후에는 종신형이나 사형수의 감옥으로사용되었으며(1840~1920). 오늘날에는 많은 관광객이 찾는 유적지가

되었다.

 

요새를 건설한 사람은 나프플리온의 베네치아인 총독 아고스티노 사그레도(Agostino Sagredo) 였으며,8개의 독립적인

요새가 상호 보완적으로 건설되었다.

 

▲팔라미드 요새에서 보이는 전망

 

▲요새에서 내려다 보이는 항구

 

▲암문 밖에서 바라 본 아크로나프프리아(구시가지 성채)

 

▲아킬레스 요새에서 바라 보이는 팔라미디 요새의 끝, 포기온 요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