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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국가들/⊙우크라이나*기행5

우크라이나ㅡ키예프(Kiev)ㅡ스탈린 때 350만 굶어죽었다, 우크라이나는 그 악몽 잊지않는다 우크라이나 대기근 ‘홀로도모르’ ▲얼어붙은 감자 캐는 어린이들 - 1930년대 초반 극심한 기근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약 350만명이 굶어 죽는 비극이 벌어졌다. 소련이 집단 농장, 국영 농장에 농민들을 강제 편입시킨 데 이어 대량 공출로 곡물을 수탈하면서 굶주림이 심해졌다. 스탈린은 저항하는 우크라이나 농민들을 소비에트의 적으로 규정하고 가혹하게 처벌했다. 1933년에는 굶어 죽는 이가 하루 평균 1만5000명 규모로 늘어날 정도였다. 사진은 1933년 도네츠크의 한 집단 농장에서 어린이들이 얼어붙은 감자를 캐는 장면이다. /위키피디아 1930년대 초반 소련은 극심한 기근으로 대량 아사(餓死) 사태가 벌어졌다. 현재 학계에서는 우크라이나에서 350만 명, 카자흐스탄에서 150만 명, 그리고 볼가강 유역, .. 2022. 10. 8.
우크라이나ㅡ리비브 역사지구ㅡ러시아 정교회 도미니칸성당 리비브(L’viv) 역사지구ㅡ러시아 정교회 도미니칸성당 ▲우크라이나 리비브 우크라이나의 동쪽 폴란드와 가장 가까운 국경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세 시대 후기 몇 세기동안 행정, 종교, 상업의 중심지였다. 중세 도시구조가 그대로 잘 보존되어있어 1998년 세계문화유산에 도시역사지구로 등록되어있다. 특히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1917 혼란 및 내전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지배하의 Volyn, Lviv 지역은 신생 폴란드로 귀속되었으나2차 대전 종전후 Volyn, Lviv 지역이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로 다시 귀속되었다. 리비브는 1939년까지 한번도 러시아의 지배를 받지 않았고 1980년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가 다시 발생한 도시다. 2차 대전의 피해를 입지도 않아 리비브는 고딕양식부터 현대의 건.. 2021. 12. 13.
우크라이나ㅡ키예프(Kiev)ㅡ성 미카엘 수도원 / 성 안드류 성당 / 도미션대성당 키예프(Kiev)ㅡ 성 미카엘 수도원 / 성 안드류 성당 / 도미션대성당 ▲성 미카엘 수도원 성당 미카엘 대천사의 이름을 딴 성당으로 소피아 성당이 세워진 후 70년 뒤(1108)에 키예프의 왕자 svyatopolk(michael) lzyaslavych 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성당은 14세기를 즈음 해서 수도원성당으로 바뀌었다. 전쟁으로 파괴되고 소실되었지만 후에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하였다. ▲성 미카엘 수도원 성당 ▲파괴되기전의 모습 ▲성 미카엘 수도원 성당 ▲성 미카엘 수도원 성당 ▲성 미카엘 수도원 성당 ▲성 미카엘 수도원 성당 ▲성 미카엘 수도원 성당 ▲성 미카엘 수도원 성당 ▲성 안드류 성당 이 성당은 키예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이색적인 성당의 디자인 다른 키예프의 성당들처럼 이채로운 색.. 2021. 12. 13.
우크라이나ㅡ키예프(Kiev)ㅡ성 소피아 대성당, / 페체르스카야 대수도원 키예프(Kiev)ㅡ성 소피아 대성당 / 페체르스카야 대수도원 ▲성 소피아 대성당 성 소피아 대성당은 1990년에 지정된 세계문화유산이다. 콘스탄티노플(현 터키 이스탄불)의 성소피아 성당과 쌍벽을 이루는 키에프 소피아 성당은 키에프 공국(公國)의 기독교 중심지로서 11세기에 건립되어 기독교 복음 전도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키에프-페체르스카야 라브라의 영적, 정신적 영향은 17∼19세기경 러시아 정교회의 신앙 및 사상 전파에 크게 공헌하였다. 11세기에 건립된 성소피아 대성당은 1685~1707년에 개조되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성당 동쪽에는창건 당시의 돌과 벽돌로 만들었던 벽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이 도시의 성당은 너무나 훌륭해 주변 나라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는다. 북방의 어떤 곳을 둘.. 2021.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