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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八道(신팔도)*紀行錄/⊙충청 북도****기행29

충북 괴산ㅡ산막이길ㅡ호수 숲 사이 꽃품은 길...상처 입은 나를 껴안다 괴산산막이길ㅡ호수 숲 사이 꽃품은 길...상처 입은 나를 껴안다 ▲충북 괴산 산막이옛길의 등잔봉 능선에 오르면 만개한 진달래와 함께 한반도를 닮은 지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가뭄 때문에 물이 줄어들어 온전한 한반도 모양을 갖추지는 못했다. 신창섭 기자 bluesky@ 길은 풍경을 완성한다. 아무리 삭막한 풍경이라도 길 하나가 들어서는 순간 온기가 깃들기 마련이다. 길은 그리움의 뿌리다. 꼬리를 물며 나지막한 산을 넘어가는 오솔길은, 머릿속에 그리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아련한지. 길은 사람과대지가 만나서 나누는 교감의 흔적이다. 길은 또 스스로 망각하는 존재다.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는 순간, 빠르게 흔적을 지워 다시 산이 되고들이 되고 풀과 꽃을 키운다. 그렇게 지워진 길들이 수없이 많다.잃어버렸던 .. 2022. 2. 13.
충북 충주ㅡ중원(中原)을 걷다ㅡ뜨거운 1000년의 역사 중원(中原)을 걷다ㅡ뜨거운 1000년의 역사 ▲초겨울 이른 아침에 충북 충주의 남산을 휘어 감고 있는 충주산성 동문 쪽에 올라 바라본 경관. 충주산성 길은 차곡차곡 쌓은 성곽 위를 딛고 이어진다. 시계가 탁 트이는 가파른 지형에다 성곽을 지어 올렸으니 그 위에 오르면 빼어난 경치가 펼쳐지는 건 당연하다 충북 충주 땅을 ‘중원(中原)’이라고 처음 불렀던 건 신라였습니다.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충주지역을 빼앗은 뒤 거기에 지방행정구역인 ‘중원경(中原京)’을 설치했지요. 신라가 충주에다 중원, 즉 ‘국토의 중앙이자 근원’이라는 이름을 달아준 건 충주 일대가 지리적으로 한반도의 중심이자, 한강의 수운(水運)이 나라 힘의 원천이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자기 땅의 중심’으로 선포하기 이.. 2022. 2. 3.
충북 제천ㅡ박하사탕찰영지ㅡ박하사탕보다 달콤한, 추억보다 먼 과거로 “나 돌아갈래 제천 봉양읍ㅡ박하사탕찰영지 박하사탕보다 달콤한, 추억보다 먼 과거로 “나 돌아갈래 ▲제천 백운면에 위치한 영화 ‘박하사탕’ 촬영지. 박하사탕처럼 달콤할 수만은 없는, 산산한 추억이 교각 위 철길과 바로 아래 제천천으로 무심히게 흐른다. 제천=최흥수 기자 추억이 다 아름답기만 할까. 남루하고 초라해 들키고 싶지 않은 기억, 너무 쓰리고 아파 결코 돌이키고 싶지 않은 시절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면 달콤하고 포근해진다. 시간의 마법이자 세월의 힘이다. 제천 봉양읍은 읍이라는 행정구역에 걸맞지 않게 중심지가 없다. 관광지도 산길 따라, 철길 따라 흩뿌려져 있다. 복고풍에 새로운 유행을 입히면 ‘레트로’가 되지만, 봉양의 관광지는 그 흐름과도 거리가 있다. 때로 아름답고 때로 눈물겨운 제천 봉양의 오래된.. 2022. 1. 23.
충북 진천ㅡ초평호.농다리ㅡ자연 품은 돌다리 사람들의 흔적들 1000년을 이었네 초평호.농다리ㅡ자연 품은 돌다리 사람들의 흔적들 1000년을 이었네 ▲충북 진천군 세금천 위에 놓인 농다리를 탐방객들이 지나고 있다. 농다리는 많은 비가 오면 물이 넘쳐 흐르도록 만들어져 오랜 세월을 무너지지 않고 버텨 왔다. 신창섭 기자 bluesky@munhwa.com 땅 위에 물이 생기고 생명이 태어났다. 물은 흘러 내려와 강을 이뤘고 주변에 사람이 모여 살기 시작했다. 왕래와 소통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이쪽과 저쪽을 잇는 다리를 놓았다. 통나무를 갈라 가로지르거나 큰 돌을 놓기도 했다. 어느 다리는 자주 큰물이 쓸어갔지만 어느 다리는 긴 세월을 견디며 발자국을 몸에 새겼다. 이 땅에는 1000년을 견뎌 온 다리도 있다. 진천 세금천(洗錦川)의 농다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언뜻 보면 그저 돌무더기처.. 2022.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