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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ㅡ프라하(Prague)ㅡ로레타성당 (Loreta Prager)

by 삼수갑산 2022. 2. 7.

프라하(Prague)ㅡ로레타성당 (Loreta Prager)

1626년 카테리나 로브코비츠 남작부인에 의해 체코 프라하에 세워진 성당. 얀 후스의 종교개혁 이후 

구교도와 신교도의 대립이 계속되자 구교도의 승리를 기원하는 뜻에서 만들었다. 

 

▲로레타 성당

 

이태리 로레타의 산타 카사와 같은 로레따 성당이다.프라하에서는 독일의 루터보다도 100년 앞서 얀후스라는 신부에 의해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는 종교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카톨릭교도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개혁을 주장하는세력들을 그냥 둘 리가 없었다.

 

얀후스가 화형(火刑)으로 순교한 후 그 정신을 본받은 신교도들이 스웨덴 지원군의 협력으로 프라하근교의 백산 에서 구교도들과 마지막 일전을 벌였으나 불운하게도 이곳에서 모두 죽고 말았다.

 

로레타성당은 구교도들의 희생을 애도하고 카톨릭의 승리를 기리는 뜻에서 세워진, 피에 의해 지어진사연이 깊은 성당이다.전쟁이 끝난 후 체코 전역에는 이와 똑같은 성당이 60개나 지어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제는 신교도들이다 죽었으므로 지금부터 체코는 구교의 국가다’ 라는 의미를 모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후에 중 북부 유럽에서는 나중에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꾸준히 지지를 받은 신교도들과 구교도들 사이의골 깊은 갈등이 결국 전쟁을 불러일으켜 무려 100년 동안이나 피비린내로 얼룩지게 된다.

 

프라하의 로레따 성당은 1621~31년 사이에 Kateina Begina z Lobkovic에 의해 세워졌다. 40년 후에 이성스러운 곳은 회랑으로 둘러 싸이고, 1740년 이후에 확장되었다.

 

18세기 초 성당 앞부분의 정문과 Narození 사원이 세워졌다. 성스러운 장소로 들어가기 전에 로레따종소리에 관해 알아보자. 1865년 탑의 윗부분에 설치된 종들은 체르닌 궁전 앞의테라스에서 제일 잘 보인다.

 

종들은 1694년 말 유명한 암스테르담의 종 제작자 Claudio Fromm과 체코인 Eberhard z Glaukova에의해 제작되었다. 종 제작자들은 2.5 옥타브의 음역을 가진 1400 kg의 종 27개를 선택했다.종은 프라하성의 시계공 Petr Neu-mann에 의해 설치됐다. 가장 큰 종의 후원자는 황제 레오폴드 1세였다.1695년 8월 15일 최초로 종이 울렸다.

 

로레따의 앞부분은 1721~23년 사이에 만들어졌고, Kilián Ignác Dienzenhofer의 작품이다(계획은그의 아버지 Kryštof Dien- zenhofer가 세웠다).건축가들은 그 전부터 세워진 전체의 복잡한 건물을 적당한 위치에서 어렵게 하나로 합쳤다.

여기에서체르닌 궁전의 격식 있는 당당함과 잘 대조되고, 또한 주위 환경에 우아하게 어울리는 전형적인

프라하의 건축물이 세워졌다.

 

건물 청부인은 Lobkovic의 Filip과 그의 여자 Eleonora Karolína였다. 그들을 연결하는 상징은 조각가Jan Bedřich Köhl의 대리석 위에 완성되었고, 입구의 정문 위에 놓여졌다.이것들의 조각가들은 아마도 다음 작품들, 즉 북쪽 구석의 Sv.Felix a Madona조각상들, 남쪽의Sv. Jan Nepomucký, 그리고 입구쪽의 Sv. František과 Sv. Antonín 조각 상의 작가들일 것이다.

 

돌로 된 난간들은 조형예술의 거장 ondřej Filip Quittainer에 의해 장식되어졌다. 마당 가운데 1626~31년에Giovanni Battista Orison(이 사람은 건물을 측량하기위해 합스부르크의 황후가 보낸 이로, 비엔나에 건물사본을 제작했다.)에 의해 제작된 산타 카사가 있다.산타 카사의 작업은 Mikulova에서 로레따를 감독하기위해 남겨진 Kateřina Begina z Lobkovic가제정적인 후원을 했고 관리했다.

 

원래 산타 카사는 바깥부분만 장식되어졌는데, 1664년 치장 벽토로 양각됐다. 산타 카사 안쪽은 전하는바에 의하면 이태리 로레따의 기둥과 몇 개의 벽돌을 가져와 세웠다 한다.은으로 된 제단에는 1775년대의 흑단나무로 된 성모 마리아상이 서있다. 성모 마리아의 인생을 형상화한그림으로 장식된 산타 카사의 벽은 원래의 손상된 예배당에서 신성 모독자를 벌 주기위해 섬광을떨어뜨리는 부분을 모조했다.

 

산타 카사의 아래는 로레타의 설립자이자 후원자인 Lobkovic가문 사람들의 무덤이다(그 가문 사람 들 중몇 명은 이 성스러운 장소에 묻혔는데, Narození Paně교회의 대리석으로 된 곳에 1858년 죽은 FrantišekJosef zLobkovic의 관으로 확인된다).건물 양쪽에 2개의 바로크식 분수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성모 마리아의 승천과 예수님의 부활을나타낸 것들인데, 1739~40년에 제작됐다.

 

이것들은 초기 로코코 예술가 Jean Michal Bruderle가 조각하기 시작했고, 그가 죽은 후 Richard j. Pradner가완성했다. 로레따의 산타 카사 주변의 회랑 들은 1664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1740년 Kilián Ignác Dienzenhofer에 의해 완공됐다. 4각형의 회랑들은 로레따의 기도를 주제로 47개의 천정벽화로 장식되어있다. :

 

1750년 Felix Antonín Schöffler가 제작했다. 회랑들의 벽은 성인들과 성녀들, 그리고 많은 고통 받는 사람들의구원자의 그림으로 장식된 제단들이 있다.많은 성녀들은 로레따를 선물 받는 귀부인들의 형상으로 돼있다. 회랑은 6개의 예배당이 자리잡고 있다.북서쪽은 승천하는 성모 마리아의 프레스코화가 있는 예배당이고, 북쪽 가운데는 Sv. František Serafínský

예배당이 이어져 있다.

 

그곳의 제단에는 Petr Brandlo의 성흔이 나타난 Sv. František의 그림이 있는데, 최고의 바로크 사실주의작품이고, 대부분의 장식된 회랑 들과 달리 화려함에서 오는 풍부한 표현이 구별된다.북동쪽의 회랑은 Sv. Josef 예배당이 있는데, 교회 안의 예수가 장식돼있다. 동쪽 가운데 회랑은Narození Paně교회의 앞부분이다. 이 교회자리에는 원래 sv. Anna의 예배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증축은 1772년 Kryštof Dienzenhofer가 했는데, 그는 이해에 죽었다. 이듬해 그의 아들 Kilián IgnácDien-zenhofer가 이어서 계속했는데, 교회의 두 종탑부터 시작했다.최종 증개축과 교회의 확장Dienzenhofer 의 이복 형제 Jan Jiří Aichbauer가 했다. 최고의 바로크 건축물의안쪽 내부는 적지않은 양질의 그림들로 채워졌다.

 

사제석의 둥근 천정은 1736년 Václav Vavřinec의 승천하는 그리스도의 프레스코화가 장식되어있고,아래 부분은 1742년 Jan Adam Schöpf의 기도하는 세 명의 왕들과 목자들의 프레스코화가 있다.가운데 제단에는 Jan Jiří Heinsch의 Narození Paně의 그림이 자리잡고 있다. 목재로 된 훌륭한 오르간의그림은 18세기 초반의 것이다.

 

남동쪽 회랑은 성모 마리아와 Sv. Dismas가 그려진 Sv. Kříže 예배당이 있고, 남쪽 가운데는 Sv. AntonínPaduánský 예배당이 위치해있다.근처의 남서쪽 회랑에는 고통 받는 성모 마리아 예배당에 방문객들이 이어지고 있다.

 

로코코양식의가운데 제단은 14세기 말~15세기 초의 고통 받는 성모 마리아의 귀중한 조각상이 아름답게 서있다.그 옆 제 단에는 Svatá Starosta라 불리는 십자가에 박힌 성인의 조각상이 있다. 회랑 위 1층에는16세기~18세기의 예배식용 소품들이 포함된 유명한 성물 전시실이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1510년경의 화려한 그림이 있는 고딕양식의 성배이다. 가장 유명한 전시물은 1969~99년에 만들어진 6222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돼있는 Kolowratová 백작부인의의복에 있는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성채 안치기이다.비엔나의 건축가 Jan Bernard Fischer z Erlachu의 제안에 따라 그 의복은 Matýaš Stegner와Jan khůnischbauer가 완성했다.

 

12kg의 무게가 나가는 그 옷에는 머리 위에 빛이비추는 성모 마리아가 서있다.Lorenzo Bernini의 영향을 받은 이 다이나믹한 구성은 보헤미아에 들어온 극단적인 바로크양식의최초의 작품 중 하나다.로레따 성당의 출구 앞은 제1공화국 때에 중세 음악 작품들의 연주회가 열렸던 것을 기억나게 한다.

 

▲로레타 성당

 

▲로레타 성당

 

▲로레타 성당

 

▲성당 외벽 부조

 

▲성당 외벽 부조

 

▲성당 내부회랑

 

▲로레타 성당 내부 천장화

 

▲로레타 성당 내부 천장화

 

▲로레타 성당 내부 천장화

 

▲로레타 성당 내부

 

▲로레타 성당 내부

 

▲로레타 성당

 

▲로레타 성당 십자고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