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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 아시아****국가들/⊙스리랑카***기행

스리랑카ㅡ콜롬보(Colombo)ㅡ콜롬보,공존의 섬 '슬레이브 아일랜드'

by 삼수갑산 2022. 8. 12.

콜롬보(Colombo)ㅡ콜롬보,공존의 섬 '슬레이브 아일랜드'

▲퇴근 시간 슬레이브 아일랜드 기차역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열차는 물론이고

 

▶시간이 멈춰선 거리

 

호기심에 나선 오후 5시의 도심 산책. 슬레이브 아일랜드는 숙소인 시나몬 레이크사이드 콜롬보(Cinnamon Lakeside Colombo)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한국보다 다소 이른 퇴근길의 콜롬보는 북적였으며 차량과 릭샤가 뒤엉켜 혼잡하기까지 했다.

 

슬레이브 아일랜드란 이름에서 짐작되는 암울한 느낌과 차창으로 잠시 스쳤던 레트로한 거리의 분위기는 쉽게 매치가 되지 않았다. 채 가시지 않은 더위에 등을 적셔가며 사모사(Samosa)를 빚어 파는 어두컴컴한 가게를 돌아섰을 때, 색 바랜 지도 한 장이 번뜩이며 나타났다.

 

도시에 긴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햇살 뒤에 숨었던 낡은 건물들은 서서히 몸을 일으켜 세우고 거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골조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기둥과 이끼 때가 가득 낀 녹갈색 벽체, 형언할 수 없는 신비감에 심장이 뛰었다.

 

▲베이라 호수는 어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오케이, 찍어요’, 그는 다시 지인과의 담소로 돌아갔다

 

▲신문과 폐지를 정리하다 돌아서던 그가 다시 포즈를 취해 줬다

 

▶노예섬이라 불린 이유

 

콜롬보에는 스리랑카의 전통적 유산뿐만 아니라 식민지 시대의 유럽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16세기 초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네덜란드와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포르투갈인들은 동아프리카 모잠비크 등에서 1,600여 명의 흑인 노예들을 스리랑카로 데려왔는데, 식민통치의 지배자가 네덜란드로 바뀐 후 노예들은 베이라 호수(Beira Lake)에 둘러싸인 땅에 집단으로 수용되었다. 물로 둘러싸여 노예를 격리하기 쉬웠던 이 땅은 슬레이브 아일랜드라고 불리게 되었다.

 

현재도 슬레이브 아일랜드는 베이라 호수 인근에 존재하고 있지만, 섬이라는 이름은 무색하다. 콜롬보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하는 도심 중의 도심이자, 스리랑카 대다수 인구를 차지하는 싱할라족을 포함 타밀족, 스리랑카 말레이족과 기타 소수민족이 공동체를 이루며 그들의 언어를 고루 사용하는 스리랑카의 대표적인 다문화 지역이다.

 

▲골목 끝에는 베이라 호수가, 그 너머엔 높이 350m 로터스타워가 서 있다

 

▲달걀 하나를 온전히 품은 전통음식, 에그 호퍼

 

▶아주 감각적인 퇴근길

 

역사적인 배경을 알고 나면 슬레이브 아일랜드가 가진 문화적, 역사적 다양성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게 된다. 문짝을 잃고 골조 일부가 사라진 옛 도시의 전통 가옥과 유럽풍의 빈티지한 건물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는 거리, 순간 필름을 거꾸로 돌리듯 시간은 재빨리 거슬러 올랐다.

 

스리랑카인들의 모습은 번화한 도심은 물론 낡고 오래된 골목과도 잘 어울렸다. 해 저무는 거리엔 진한 스파이스 향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에그호퍼(Egg Hopper, 코코넛 우유와 쌀가루를 섞어 얇게 부쳐 내고 그 위에 계란을 올려 먹는 스리랑카 전통음식) 전문점 요리사의 손길이 바빠지더니 건너편 할랄푸드점에는 한 무리의 무슬림 노동자들이 찾아들었다.

 

▲한때의 섬은 개발이 한창인 콜롬보의 핫플레이스가 되고 있다. 기차는 그 사이를 관통해 나간다

 

▶빅토리아시대에서 온 기차

 

슬레이브 아일랜드와 일반 주거지(아파트 단지)가 만나는 경계에는 건축학적, 역사적 가치를 자랑하는 오래된 기차역이 있다. 꼼빠냐비디야(Kompanna Vidiya)라는 스리랑카어 역 이름이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슬레이브 아일랜드 레일웨이 스테이션’으로 더 익숙하다.

 

영국 식민지 시대에 건설되었기에 빅토리아시대에 유행했던 아치, 목공장식, 금속 설치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역은 과거 차 무역의 연결로로 번성했지만, 현재는 주로 통근 기차가 다닌다.

 

퇴근 시간, 기차가 도착하자 인파로 바글거리던 플랫폼의 반이 비워졌다. 사람들은 선로까지 내려와 기차에 오르고 때론 매달리기도 했다. 건널목이 없는 기찻길 위로 사람과 차량이 자유롭게 오가고 비켜섰다

 

▲스리랑카 말레이족 무슬림을 위한 할랄푸드점이 인기다

 

▶섬에 깃든 또 하나의 공존

 

콜롬보는 도시개발이 한창이다. 고층 빌딩과 상업 단지가 슬레이브 아일랜드를 압박해 오면서 역사적인 건물들도 일부 철거되거나 철거될 위기에 놓여 있다. 그 자체로 ‘문화의 공존’을 보여 주는 슬레이브 아일랜드의 가치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영국의 철도역과 페르시아, 네덜란드의 건축물이 나란히 선 거리를 지나면 모스크(이슬람사원)와 힌두사원 그리고 사찰과 교회를 한 블록에서 만난다. 흑인 노예는 아프리카로 돌아가거나 소수가 남아 스리랑카 카피르의 선조가 되었고 가혹했던 섬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슬레이브 아일랜드란 이름으로 이어져 온 이곳에서, 여러 민족의 사람들은 가까이 살며 함께 번성해 왔고 인종적, 종교적 긴장감조차 없는 ‘공존의 섬’을 만들어 냈다.

 

▲개발의 주역들, 스리랑카 건설 노동자들의 휴식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