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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아시아*****국가들/⊙레바논*****기행

레바논ㅡ거의 7천 년이나 된 역사를 지닌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고대 도시인 비블로스

by 삼수갑산 2022. 5. 10.

거의 7천 년이나 된 역사를 지닌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고대 도시인 

비블로스(Byblos)

▲비블로스(Byblos) 항구

 

레바논 베이루트 북쪽 약 40 km의 지중해에 면한 고대도시 유적으로 Sidon, Tyre와 함께 페니키아시대 3대 도시국가의 하나였다. 인류 최고도시의 하나로 BC 4500년경부터 도시형성 되었으며 페니키아시대 및 로마유적지가 있다. 페니키아시대 백향목(Cedar)및 종이교역으로 번영했다.

 

기원전 1000년경 비블로스는 이집트의 파피러스를 헬라 세계로 매매하는 중간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비블로스란 도시 이름 자체가 파피러스를 의미하는 헬라어를 반영하고 있는 이름이기도 하다. 이것이 라틴어의 '비블리아'가 되었고, 유럽 언어를 통하여 '바이블' 이라는 단어가 되었다.

 

무역과 상술에 밝았던, 페니키아인들은 메소포타미아의 설형문자를 30개 남짓의 표음문자인 알파벳으로 변형시켜, 유럽에 전달 오늘날 사용하게된 것이다. 바다근처에 있는 비블로스유적은 그 입구를 십자군시대에 축조한 거대한 성이 대신하고 있으며, 신석기, 청동기시대의 주거지터와 전성기인 초기 청동기시대에 축조된 L형 신전, 중기 청동기시대의 오벨리스크 신전, 그리고 로마지배시대의 유산인 반원형 극장과 성벽, 석관등이 나타난다.

 

저들은 바알신을 숭배하였으며 이집트를 비롯, 에게해의 크레타,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 등과도 깊은 교류를 가졌음이 이 유물들로 밝혀졌다. 비블로스는 한 고고학자의 평생에 걸친 연구 결과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항구도시라는 것이 밝혀졌다.

 

불란서의 고고학자 모리스 듀낭은 1928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거의 50년 동안 비블로스 발굴과 연구에 전념해 7,000년 전 신석기시대까지 소급되는 비블로스의 역사를 밝혀주었다.

 

▲비블로스(Byblos) 항구

 

▲비블로스(Byblos) 항구

 

▲비블로스(Byblos) 항구

 

▲비블로스(Byblos) 구 시가지

 

▲비블로스(Byblos) 구 시가지

 

▲비블로스(Byblos) 구 시가지

 

▲비블로스(Byblos) 구 시가지 카페

 

▲비블로스(Byblos) 구 시가지 시장

 

▲비블로스(Byblos) 구 시가지 시장

 

▲비블로스(Byblos) 구 시가지

 

▲비블로스(Byblos) 구 시가지

 

▲비블로스(Byblos) 항

 

▲비블로스(Byblos) 항

 

▲비블로스(Byblos) 해변

 

▲비블로스(Byblos) 해변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벽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벽 잔해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벽 잔해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벽 잔해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벽 잔해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벽 잔해

 

▲1956년 찍은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벽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벽 잔해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벽 잔해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벽 잔해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벽 잔해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벽 잔해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벽 잔해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벽 잔해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 내부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 내부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 내부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 내부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 내부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 내부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 내부에서 출토된 각종유물

 

▲십자군 전쟁 당시 비블로스(Byblos) 성 내부에서 출토된 각종유물

 

▲슐탄 마지드 모스크

 

▲비블러스 유적지 입구

 

이집트인들은 파피루스를 만드는 뛰어난 재능을 가졌으나 그것을 다른 나라에 파는 국제무역상의 자질은 없었다. 이집트산(産) 파피루스를 지중해 연안 지역에 널리 판매하는 무역은 페니키아인들 몫이었다. 페니키아(레바논 해안지역)인들은 일찍이 지중해를 무대로 해상무역을 발전시켰다.

 

페니키아 지역의 도시 중 특히 주베일(Jebail, 구약성경의 게발)은 파피루스 무역을 거의 독점, 주로 희랍으로 수출했다. 희랍인들은 파피루스를 그대로 발음하지 못해 뷰블로스(Bublos)라고 불렀다. 차츰 희랍인들은 뷰블로스와 무역도시 주베일을 동일시하게 되었고 서기전 1,200년경부터 그곳을 아예 비블로스(Byblos)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것은 희랍사람들에게는 흔한 일이었다. 예를 들면, 구리 생산지로 유명했던 지중해의 섬 키프로스(성경의 구브로)를 희랍인들은 구리를 뜻하는 키프리오스라고 불렀고, 그것이 섬 이름이 되었다. 서기전 11세기로 추정되는 이집트의 기록 웬 아몬의 여행기에는 비블로스가 부각되어 등장한다. 이집트의 신전 관리였던 웬 아몬은 레바논 지역의 좋은 목재를 구입하기 위해 비블로스로 향했다.

 

그러나 여행은 순탄치 않았다. 돈을 도둑맞는 등 많은 고생을 했다. 웬 아몬은 보고 겪은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다. 고대 중동 지역 연구에 소중한 자료인 웬 아몬 여행기에도 이집트가 비블로스에 지불한 목재 값 중에는 500개의 파피루스 두루마리가 포함되어 있다.

 

▲아히람 석관

 

비블로스에서 발굴된 엄청난 유물들 중 문화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아히람 왕의 석관이다. 이 석관의 연대는, 고고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으나, 모리스 듀낭은 서기전 13-12세기로 추정한다. 이 석관이 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뚜껑 부분에 글자를 새겨 놓았기 때문이다.

 

이 글자는 지금까지 알려진 페니키아 문자 기록 중에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최초(最初)의 페니키아 문자라고 주장하기는 어려우나 지금까지 발굴된 것 중 연대가 가장 앞선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오늘날 고대 언어학자들은 팔레스타인과 시내반도에서 최초로 사용된 초보적인 알파벳 문자가 페니키아 지역으로 전파되었고, 그곳에서 22개 문자로 구성된 페니키아 문자로 발전됐다고 추정한다.

 

페니키아 문자는 희랍으로 건너가 희랍어 글자의 모체가 되었고 로마식 알파벳을 거쳐 오늘날 대부분 유럽언어의 알파벳의 기원이 되었다. 아히람 왕 석관 발굴로 비블로스는 최고(最古)의 페니키아 문자가 발견된 곳으로 문화사에 빛나는 자리를 차지한다. 뿐만 아니라 비블로스와 유럽간의 빈번했던 파피루스 교역으로 미루어 볼 때, 페니키아 문자를 희랍에 전달해 준 곳도 비블로스라는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비블러스 공동묘지 유적지

 

▲비블러스 공동묘지 유적지

 

▲오벨리스크 신전과 함께 L자 신전 위에 있었던 그리스 풍의 반원형 극장은

원래의 모양에서 많이 축소되어 지금의 위치로 이설되었다

 

▲L자 신전

 

어떤 신을 섬긴 신전인지 알려지지 않고있다. 이 신전은 오벨리스크 신전과 원형극장 밑에 매몰되어 있는 것을

오벨리스크 신전과 원형극장을 현재의 자리로 이전한 후 발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