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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국가들/⊙러시아*극동지방

러시아ㅡ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 겨울 바이칼호. 이르쿠츠크 가 보기

by 삼수갑산 2022. 8. 21.

러시아 시베리아ㅡ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 겨울 바이칼호 가 보기

▲바이칼호수를 끼고 도는 시베리아 힁단열차

 

▲시베리아횡단열차 노선도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 위. 금 아래 흰 부분이 얼음 두께를 짐작케 하는 균열 자국.멀리 보이는 자동차가 우아즈.

 

바이칼 위에 서다!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난 지 나흘 만인 2월12일, 말 그대로 우리는 바이칼 호수 위에 섰다.선착장에는 여름에 사람들을 태우고 갔을 배가 얼음에 갇혀 드러누워 있었다. 탁 트인 배 뒤쪽은 물이 아니라 얼음세계였다. 36명이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처음엔 시퍼런 물 위에 떠 있는 얼음들이 믿을 만한지 조심조심 이리저리 재 보다가 금방 더 깊은 쪽으로 주춤주춤 영역을 넓혀갔다. 그래도 불안했다.

 

2500만년 전에 형성돼 지금도 지진이 잦은 바이칼은 여전히 생성 중인, 남북 길이 636㎞, 긴 폭은 약 80㎞, 좁은 곳이 약 25㎞인 세계 최대급 크기에다 가장 깊은 담수호다.

 

최대 수심 약 1700m, 평균수심 576~854m. 게다가 바이칼은 세계 최고의 청정도를 자랑하는 호수이기도 해서 얼음 밑은 현기증이 일 만큼 푸르고 투명했다. 아무리 자동차가 다닌다지만 오금이 저릴밖에.

 

저만치 교통표지판이 보였다. ‘차간 거리 200m’, ‘시속 30㎞ 속도제한’, ‘상하행 한길 사용 금지’. 얼음이 언 뒤에 구멍을 파고 심어놓은 것들이다.

 

표지판을 따라 자동차 바퀴들이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50대의 슬라브족 주코바 아저씨가 리드하는 독특한 형태의 러시아형 4륜구동 승합차 ‘우아즈’(UAZ) 4대가 일행을 분승시켜 달리기 시작했다. 평균 시속 40~60㎞의 과속(!). 아래는 매끈한 얼음 아래 시퍼런 물이 삼킬 듯 노려보고 있었다.

 

1㎞쯤 달려갔을까. 얼음이 꺼지면 어디 도와달라 외쳐볼 수도 없을 만큼 먼 곳에 주코바 아저씨가 차를 세우자 모든 차들이 그 주변에 섰다. 어, 이렇게 한꺼번에 몰려 있어도 되는 거야? 꺼지면 어떡하려고? 그 순간은 사람들이 추위 따위는 잊어버렸다.

 

얼음은 그냥 매끈한 게 아니라 여기저기 금이 쩍쩍 가서 다시 얼고 그 금 간 자리 아래쪽이 더 얼어내려간 자국이 그대로 보였다. 정말 1m는 넘겠다. 자동차 서너대가 한자리에 모이고 30명이 넘는 인간들이 내려 이리저리 발을 굴려보고 사진을 찍는다 부산을 떨어도 얼음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공포는 사라졌다!

 

▲거대한 빙벽이 둘러친 바이칼 호의 바위섬.

 

그날 오후는 20여개나 되는 바이칼호 섬들 중에 길이 72㎞(크기는 제주도의 절반 정도)로 가장 크고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올혼(알혼) 섬의 후지르 마을 니키타 민박촌에 여장을 푸는 것으로 여정을 마쳤다.도중에 젊은 운전수 바실리 등이 이리 와 보라며, 자신있게 보여준 붉은 이끼의 바위섬 뒤쪽은 거대한 고드름들이 엉겨붙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올혼 섬으로 올라간 자동차들은 나무가 없어 황량해 뵈는 섬 비포장길을 30여분 달렸다. 여름엔 저곳들이 아늑한 풀밭과 꽃밭으로 변하겠지. 여장을 풀자마자 후지르 마을 언덕 너머에 있는 세계 샤머니즘의 성지 ‘부르한 바위’로 갔다. 살을 에듯 추웠다.

 

그 지역 부랴트인들 외모가 우리와 닮았고, 우리의 옛 성황당 비슷한 분위기와 유사한 천손신화, ‘불함문화’론을 떠올리게 하는 부르한이란 명칭 때문인지 그곳이 바로 우리 민족의 시원지라는 얘기들을 많이 들었다.

 

근거가 있는 얘길까? 단정할 순 없지만, 그때의 ‘우리’는 지금의 한반도인들만이 아니라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서 동아시아까지 광범한 지역을 삶터로 삼아온 몽골족 전체가 돼야 하는 게 아닐까.

 

부랴트인들과 닮았다는 일부 우리 습속이 그 땅에 살던 선조들이 한반도로 이주하면서 갖고 온 것인지, 13~14세기에 그곳과 인근 몽골 초원을 발원지로 해서 유라시아를 제패한 칭기즈칸의 원 제국이 남긴 습속인지, 아니면 인종과는 무관한 샤머니즘 보편문화인지. 어쨌든 어딘지 신비와 영성의 기운을 느끼게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일행이 숙박한 바이칼 올혼 섬 후지르 마을의 니키타 민박촌.

 

통나무로 지은 니키타 민박촌은 예상보다 편안했고 음식도 괜찮았다. 거기서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온 한국인 남녀 학생 4명을 만났다.다음날은 여름엔 육로로 달려야 하는 올혼 섬 북쪽 끝 호보이(하보이) 곶까지 수십킬로의 여정을 줄곧 얼음 위로 달려갔다. 후지르는 올혼 섬 왼쪽 중간지점에 있어서, 그쪽 호수는 섬 오른쪽 대안이 보이지 않는 쪽보다는 상대적으로 좁지만 그래도 바다처럼 넓었다.

 

밤사이 살포시 내린 눈으로 전날처럼 매끈한 얼음판을 볼 순 없었으나 대신 그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장대한 규모의 얼음세계를 온종일 돌아다녔다.삼형제봉의 기암과 붉은 이끼, 호보이 곶 절벽의 얼어붙은 기암들이 멀리 흰 눈을 인 산들에 에워싸인 바이칼의 신비로운 분위기와 함께 우주선을 타고 간 에스에프(SF) 속의 어느 먼 행성의 풍경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여름에는 불가능한 부르한 바위 뒤쪽 풍경도 호수 위를 걸어다니며 살필 수 있었다.

 

호보이 곶 일대는 집채만한 얼음조각들이 말 그대로 벌떡 일어서서 호수를 뒤덮고 있었다. 그 지점부터는 자동차가 더 나아갈 수 없었다.호수가 얼어붙는 과정에서 깨어진 얼음 조각들이 바람이나 큰 얼음덩이에 밀려 다른 얼음덩이와 부딪치면서 깨어지고 일어서면서 그대로 얼어붙어버린 모양이었다. 붉은 이끼의 기암절벽들 아래 장관을 이룬 거대한 빙벽들도 그 시기에 만들어진 자연의 걸작품이었다.

 

저녁에 러시아식 사우나 ‘바냐’ 체험도 했다. 멋모르고 달아오른 돌들 위에 무모하게도 많은 물을 끼얹어 확 퍼지는 뜨거운 열기에 혼비백산하기도 했지만 굴하지 않고 자작나무 가지 두들기며 잘 놀았다. 올혼 섬을 떠날 때 온난화 때문에 얼음이 잘 얼지 않는다며 언제까지 바이칼 위를 자동차로 달릴 수 있을지 현지 주민들이 걱정한다는 얘길 들었다. 바이칼조차 무사하지 못할까?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리는 이르쿠츠크의 도심.

 

“시베리아 추위 별것 아니네!” 바이칼호 올혼 섬 북쪽 끝 호보이 곶 얼음 위에서 점심을 먹던 이정식 푸르메재단 대표가 호언했다. 은박지에 싼 삶은 감자와 바이칼에서만 나는 청어를 닮은 생선 ‘오물’, 흑빵과 치즈, 그리고 갈색 차 한 잔이 그날 점심이었다.

 

흑빵은 얼어서 그런지 이빨이 아플 정도로 딱딱했고, 얼음 위에 잠시 내려놓은 찻잔 속의 차는 금방 식어버렸다. 덜덜 떨면서 먹기가 뭣했던지 자동차 지저분해진다며 차 문 열어주기를 꺼리는 운전수를 겁박(?)해 모두들 자동차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때 함께 간 사진 동호회원들과 끝까지 바깥에서 버티는 기개를 과시하며 이 대표가 내뱉은 호언장담이 바로 “별것 아니네”였다.

 

시간이 갈수록 시베리아 추위는 점점 별것 아닌 게 아니었다. 이르쿠츠크에서 바이칼 사이를 몇시간씩 이동할 때 탄 현대자동차 관광버스에선 바깥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창문이 허옇게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창문을 덮은 얼음막을 긁기도 하고 녹여 보기도 했으나 소용없었다. 버스 안의 36명이 내쉬는 숨은 달리면서 바깥 표면온도가 더 떨어진 창 안쪽 면에 빨려가듯 들러붙어 그대로 얼어버렸다. 시베리아에선 눈도 육각형 결정체들이 뭉치지 않고 가루처럼 내렸다.

 

바이칼 동쪽 부랴트 자치공화국의 공중화장실들은 반들거리는 누런 얼음산 속에 조그만 분화구가 뚫린 형상들을 하고 있었다. 배설물이 몸 바깥을 나가는 순간 얼어붙기 시작하기 때문인데, 그 덕에 악취도 얼어붙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철제 문손잡이들은 맨손으로 쥐면 쩍쩍 들러붙었다. 기차에서 잠시 내려 카메라 셔터를 누를 때 손가락이 느끼는 건 추위가 아니라 통증이었다. 체르니솁스키 동상을 찍을 때도 기온이 영하 30도 아래로 내려간 듯 견디기 어려워 서둘러 기차 안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객차 차장과 식당차 직원들은 드나들 때 문단속하라고 윽박질렀다.

 

어딜 가나 별로 다를 게 없는 단조로운 러시아, 아니 시베리아 패션은 러시아 사람들 패션감각이 무뎌서가 아니라 자연조건 탓이라는 게 자명했다. “겨울 시베리아에서 모자 없으면 죽음”이라고 이르쿠츠크 거주 박대일 비케이투어 대표는 말했다.

 

좀 비싸 보이는 모피 제품들(자연산인지 인조모피인지는 모르겠다)이긴 했지만 이르쿠츠크 여인들이 하나같이 걸치고 있던 멋들어진 외투와 모자와 긴 부츠 차림도 사진으로 보던 러시아 패션 전형을 벗어나지 않았다.

 

1812년 모스크바로 진격한 나폴레옹 60만 대군과 1941년 히틀러의 나치스 대군을 물리친 것도, 정말 가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그 싸한 시베리아 동장군(추위) 아니었던가.

 

데카브리스트 반란이 패배한 나폴레옹 군대를 따라 유럽에 갔던 러시아 청년 귀족들이 받은 문화충격과 그로 인한 차르체제 비판에서 촉발된 것이었으니, 러시아 역사 자체가 러시아 겨울 추위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겠다.

 

기차와 자동차를 잽싸게 오르내리며 잠시 동안 외기를 쐬는 정도로 사나흘쯤 갈 때까지는 “시베리아 추위 별것 아니네!”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뭉글뭉글 고개를 쳐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데서 살아가지? 시베리아 인구밀도가 왜 그렇게 낮겠는가. 우리 조상들이 바이칼에서 ‘따뜻한 남쪽’을 향해 이동해 간 까닭을 알 것 같았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그 지독한 추위야말로 시베리아 최대의 관광자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베리아 아니고 어디서 그런 추위를 경험해 본단 말인가!

 

출처 / hani.co.kr / 이르쿠츠크=글·사진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