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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아시아****국가들/⊙중국****화북지방

허베이성(河北省)ㅡ청나라 황제들의 무덤을 떠나며

by 삼수갑산 2022. 9. 14.

허베이성(河北省)ㅡ청나라 황제들의 무덤을 떠나며

서태후의 무덤 옆에는 동태후의 무덤이 있습니다...근데...서태후의 무덤이 서쪽에 있어야 정상....동태후의 무덤이 동쪽에 있어야 정상인데.....이둘의 무덤이 바뀌어져 있다고 합니다....서태후의 무덤이 동쪽에....동태후의 무덤이 서쪽에 있다고 하는데.....

 

전하는 말에 따르면.... 서태후가 동태후를 꼬여 무덤을 가지고 내기를 하고 서태후가 이겨서 동쪽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왼쪽 보이는 건물들이 동태후의 무덤입니다...무덤의 건물 형태나 배치는 서태후의 무덤과 똑같습니다.....

 

 

서태후 능 위폐가 있는 건물안의 모습입니다...이제 1644년 만주에서 만리장성을 넘어 북경으로 입성한 청나라 황제...

순치제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청나라 3대 황제이자...1644년 이자성을 멀리 몰아내고 북경에 입성하여 중국의 주인된 청나라 황제....1643년.... 청나라의 2대황제인 태종이 갑자기 죽고....6살된 이세조 순치제가 등극합니다....

 

순치제는 북경에 입성하고 다시한번 즉위식을 올리고 즉위식 언어는 만주어.한어.... 즉 한문 다음은 몽골어로 되어 있습니다 이 세가지 언어는 만주와 한족 중국과 몽골을 다 다스리는 대황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근데...청나라 만주왕조는 한족인 중국인과 몽골인의 대우가 달랐습니다....몽골인에게는 왕작을 주고 친형제처럼 대했는데.... 한족에게는 그렇치 않았습니다...

 

일찍이 청나라 만주족이 만주에서 일어날때부터 몽골족의 문자를 빌려 만주의 말을 표기하게하고 만주족과 몽골족은 짝짝꿍이 잘 맞아 떨어졌습니다...

 

2대황제 태종이나 6살에 황제의 자리에 오른 순치제를 대신한 섭정왕인 숙부 예친왕도 몽골의 왕가에서 아내를 맞았으며순치제도 역시 몽골에서 아내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순치제....7살에 자금성의 주인이 되고.... 어려서 부터 중국의 문화를 매우 사랑한 황제가 되엇으며 중국적인 교양을 쌓으며 자라게 됩니다....

 

순치제의 거실에는 중국의 고전과 소설등이 가득했으며 중국의 젊은 학자들을 황제거실까지 불러들여서 담소하기를 좋아했습니다....순치제는 불교를 좋아하여 불교경전 읽기를 좋아하고.... 덕망놓은 스님을 초대해 불교교리를 묻곤하였다고 합니다....

 

이러게 중국문화에 동화되어 가는 순치제에게 충격적인 일이 일어납니다...선황 태종의 황후인.... 즉 순치제 자신의 어머니(몽골인)가 자신을 대신해 섭정하고 있는 숙부 예친왕과 결혼을 한 것입니다....즉.... 형수와 시동생이 결혼을 한것입니다...

이 문화는 몽골이나 만주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중국사상에 물든 순치제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청나라 조정의 중국인 관리들도 놀랐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축하의 인사를 올립니다...

 

철이든 순치제....이러한 몽골과 만주의 문화에 반발을 느끼고.... 숙부인 예친왕이 죽자.... 자신의 몽골출신 황후를 트집을 잡아 폐하고.... 새 황후를 몽골왕가에서 또 데려오자 예의를 모르는 여자라며 냉대하며 반 몽골적인 협오감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중국문화와 불교문화에 심취한 순치제....황제들의 성생활에 관한 까다로운 제도를 만듭니다...황제가 황후와 잠자리를 가질때에는 별문제가 없으나 후궁과 관계를 할때는 황제가 저녁수라가 끝난무렵 환관이 은쟁반에 수십여장의 녹두패를 담아서 황제에게 올립니다....

 

패 하나하나에 황제가 총애하는 후궁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황제는 그중에서 마음에 쏠리는 이름이 적인 패를 뒤집어 놓습니다...

 

이 경우에 황제와 후궁이 관계를 갖는 시간은 엄격이 정해져 있는데 시간이 되면 환관은 후궁을 되돌려 보내고 황제에게 수태의 여부를 물어보아 허락하면 장부에 오늘의 날짜를 기록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이를 낳지 못하게 후궁의 아랫배를 마사지하여 정액을 쏟아냈다고 합니다....

 

황제가 후궁에 나갈때는 황후에게 미리 전갈이 가고.... 황후가 허락을 해야만 해당 후궁이 황제를 맞아 들였다고 합니다.... 이것도 순치제가 만든 법이라고 합니다....

 

순치제...6살에 황위에 오르고.... 24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뜹니다....순치제의 죽음에 야사가 전해져 오는데....순치제의 후궁중에 동귀비라는 어여쁜 만주귀족가문의 출신이 있었는데.... 한족이라는 소문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여간...

순치제는 그녀를 너무 사랑합니다.... 그녀가 없으면 숟가락도 들지 않았다고 하니....그렇게 아끼던 동귀비가 어느날 덧없이 죽습니다...

 

황제는 죽은 동귀비를 황후에 봉한다고 고집을 피우다가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옥좌를 내팽개치고 출가합니다....산서성의 오대산에 틀어박혀 버립니다...

 

아무리 조정대신들이 돌아오기를 간청해도 들은 척을 안하자 대신들과 황실은 어쩔 수 없이 황제가 병으로 죽었다고 발표해 버립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야사지.... 정사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아무튼... 순치제는 죽기전.... 유언을 발표합니다...한인을 너무 우대하고 만주인을 무시한 점....문관을 중시하고 무관을 홀대한점을 반성한다는 내용입니다....

 

선황들에 비해서 너무 중국화를 뉘우치지만....순치제의 뒤를 이은.... 강희제때는 몽골에서 완전히 중국으로 기울게 됩니다....한마디로...아버지 순치제보다.... 더 중국화를 시킵니다....

 

여기 청동링에 무덤 자리를 정하고.... 첫번째로 묻힌 순치제.....이 만주족들은 백두산 산록에서 유목생활을 하던중....

풍수길지에 조상의 무덤을 잘쓴후 국운이 흥하였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심양의 동릉과 북릉....초대황제 누루하치와 2대황제 황타이지의 릉입니다....이 두릉은 중국 만리장성 북쪽 치고의 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7살짜리 순치제는 청의 국운을 계속 이어줄 풍수길지를 계속 찾아 나섭니다...북경 주변에서 가장 좋은 풍수길지는 명나라 13릉이었습니다....그러나 명13릉 자리는 운이 다했다는 것을 알고.... 새로운 길지를 찾아 돌아다닙니다...결국 천하 제일 명당을 찾아 냅니다....

 

그곳이 바로 이 하북성 존화시..... 청동릉입니다...이곳은 용이 떠오르고 봉황이 춤추는 모습이라고 합니다....연산산맥의 남쪽으로....북으로는 昌端山(창서산)이 있고.... 남으로는 金星山이 병풍처럼 둘러있습니다...

 

풍수길지의 교과서 그대로 입니다... 이곳을 자신의 황릉으로 정하고.... 청나라의 초기 기운을 다지게 하는 자리입니다....

풍수설을 믿는 사람들 사이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고 합니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북경 창평구의 명 13릉이 이미 만원이라 기가 다 되었다는 것을 알고....이곳 청동릉이 위치한 자리가 최대의 길지라는것을 알고 자신의 황릉을 이곳에 건조하리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국운이 일찍 끝나 이자성 반란으로 33세의 나이로 자결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청동릉에는 모두 5명의 청나라 황제와 15명의 황후가 안치되어 있습니다...이 청동릉에는 순치제의 어머니인 효장문(孝庄文) 태후의 무덤이 있습니다....

 

효장문 태후.....청나라의 2대 황제 황타이지의 황후이다....원칙대로라면.... 이 효장문 태후는 죽어서 심양 북릉에 묻혀있는 황타이지 남편 옆으로 가야한다....효장문 태후.... 그녀는 누구인가?그의 정치적 센스와 용기로 자신의 아들을 황제로 만들고 초창기 청의 기운을 다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귀족출신인 효장문 태후에게는 복림(福臨)이라는 아들이 있었습니다....자신의 남편 황타이지가 준비없이 갑자기 죽습니다...2대황제 황타이지가 죽자....황타이지의 큰아들 호격과 동생 다얼콘 사이에 황위 쟁탈전이 벌어집니다....두 세력이 우열을 가릴 수 없어 국가가 분단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이때 효장문 태후가 정치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아들 복림을 황위를 계승토록하는 절충안을 냅니다...양대세력은 이 절충안에 설득되고.... 결국 6살의 복림... 순치제가 등극하게 됩니다...

 

숙부와 형님의 양보로 어부지리를 얻은 복림이 황제가 되었지만 숙부의 야심을 의심하게 되고... 효장문 태후는 야심가인 다얼콘과 결혼하여 아들 복림을 지키는 섭정왕이 되게 합니다....

 

섭정왕 다얼콘은 명나라 장수 오삼계와 합작으로 북경으로 진격 청나라를 세우게 됩니다...북경으로 들어온 다얼콘....복림을 없애고 자신 스스로가 황제가 되고저 합니다...

 

눈치챈 효장문 태후는 복림이 이미 다얼콘의 아들이 되었음을 상기시키고....아들의 황위를 아버지가 빼았았다는 오명보다는 황제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 순리라면서 복림의 황위를 끝까지 지켜줄것을 호소합니다.....

 

그후 섭정왕 다얼콘이 사냥터에서 사고로 죽게됩니다.... 당시 14살의 순치황제는 어머니 효장문 태후의 도움으로 빠르 친정체제로 전환..... 황실의 기반을 구축합니다....

 

이처럼 현명한 효장문 태후는 자신이 죽어 묻힐곳을 생각해 봅니다....이미 시동생 다얼콘과 결혼하여.....심양땅에 묻혀있는 남편 황타이지 옆에 묻힐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그토록 아꼈던 아들 순치제 옆에 묻히고자 이곳 청동릉을 택합니다...자신보다 일찍 아들 순치제가 죽자....

8살 손자 강희제를 황위에 오르게 하고 생모가 없는 손자 강희제의 교육도 맡습니다...

 

강희황제가 청나라의 가장 위대한 황제가 된 것은 할머니 효장문 태후의 숨은 지도가 있었다고 합니다....효장문 태후가 청동릉에 들어간 것은 아들 순치제보다 27년이나 지나서였다고 합니다....

 

▲순치제의 무덤을 향하여

 

▲무덤은 이미 도굴 되었으며.... 개방을 하지 않았습니다.....

 

▲순치제의 위폐가 있는 곳...앞에 3마리의 동물들이 있습니다....의미가 ?

 

▲청동릉....한적하니 멋진곳입니다 언젠가는...서동릉도 찾아가볼 생각입니다....

 

▲청동릉 구경을 마치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버스 정류장입니다 이곳에서 베이징가는 버스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출처 / blog.naver.com / eti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