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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아시아****국가들/⊙키르기스스탄*기행

키르기스스탄ㅡ오시(Osh)ㅡ키르기스스탄 제 2 도시, 오시를 가다

by 삼수갑산 2022. 10. 13.

오시(Osh)ㅡ키르기스스탄 서남부. 제 2의 도시, 오시를 가다.

오시(Osh)는 키르기스스탄 서남부 오시 주에 있는 도시이다. 오시 주의 주도이며, 수도 비슈케크 다음가는 키르기스스탄 제 2의 도시이다. 인구 약 255,800 (2012).오시는 우즈베키스탄 국경 부근에 위치하며, 약 255 800 주민은 키르기스인, 우즈베크인, 러시아인, 타지크인 등 여러 민족을 포함하고 있다.

 

페르나가 분지의 비옥한 지대에 있는 오시는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가장 혼잡한 야외 시장이 있는 활기찬 곳이다. 소련 시절 동안 구축되었던 산업 기반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뒤에 크게 붕괴되었다가 최근 차츰 소생하기 시작한 상태이다.

 

오시는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 된 정착지 중 한 곳이다. 오시의 발생은 태고 시대 이래로 성스러운 산으로서 존경받는 남쪽 술레이만의 산허리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농부들의 정착과 관련되어 있다.

 

오시는 실크로드를 따라서 비단 생산의 중심으로서 일찍이 8세기에 알려졌었다. 중세시대에 인도와 중국에서 유럽까지를 잇는 무역로의 교차점으로 번영하였다. 실크로드 길의 하나가 도시를 통과하여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였다.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그 후 여러 한국이 흥망을 거듭하다 러시아 제국이 중앙 아시아로 진출하면서 그 세력하에 놓였고, 이 지역은 1876년 러시아 제국에 합병되었다. 소비에트 연방 형성 후 키르기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도시가 되었다.

 

소련 말기, 이 지역은 여러 민족이 뒤섞여 사는 지역 특성상 민족 대립이 잦았고, 결국 1990년 우즈베크인과 키르기스인 사이에 대규모 유혈 충돌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당시 사망자 수는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았으나, 보도에 따라 수백명에서 천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련 붕괴를 앞두고 일어난 이 내전으로 우즈베크와 키르기스는 큰 타격을 입었으며, 독립 후로는 양 국가 간에 큰 충돌은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2010년 6월 10일, 다시 우즈베크인과 키르기스인 사이에 대립이 발생[2], 여러 날에 걸친 분규로 수백 명이 사망하고 많은 난민이 생겼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산과 들판.가는 길에 유르트(게르)가 나오니 재미있다. 설산도...차 안에서 찍는 사진들이라 모두 흔들리고 형편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진이 많다.

 

12시간이나 가게되니, 가다가 점심식사도하고, 기사님은 40분 정도 들판에 얇은 담요를 깔고 주무신다.모두의 안전이 우선이니 우리는 조용조용 호숫가를 걷기도하고 나름 즐거웠다.

 

이식쿨 호수가 세계에서 두번째로 크다고 했다. 정말 가도가도 끝이 없다.오른쪽으로 호수를 끼고 하루종일 달렸다.

기사님 주무시느라 모처럼 차를 세워 주었지만, 사진 몇 장 찍으니, 더 이상 찍을 것이 없다.

 

그저, 조용히 차 안에서 쉬고 있었다.밤 10시 오시에 도착하여 숙소에 들어갔으니... 정말 먼~~거리였다(총 14시간 소요)

 

글.사진출처 / naver .com / 잎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