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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八道(신팔도)*紀行錄/⊙제주 자치도**기행

제주도ㅡ새별오름ㅡ서부 중산간의 대표적인 억새 명소. 금빛 파도 일렁이는 가을의 스타

by 삼수갑산 2022. 10. 26.

새별오름ㅡ서부 중산간의 대표적인 억새 명소. 금빛 파도 일렁이는 가을의 스타

서부 중산간의 대표적인 억새 명소… 오른쪽 길로 올라야 완만

▲은빛 억새가 눈부신 정상 남서쪽 능선. 오른쪽 가까운 두 봉우리가 이웃한 이달봉이고, 그 너머로 금오름이 가늠된다.

뜨겁던 기세는 허세였던가? 모든 것을 익혀버릴 듯 그토록 무덥더니 여름은 가을 한 방에 KO패 하고는 떠났다. 예고 없이 찾아온 가을. 며칠 전까지 울어대던 매미도 잠잠해지고, 귀뚜라미 글 읽는 소리 청아한 가을밤이 반갑다. 이럴 때면 더 생각나는 오름이 제주 애월읍 중산간의 새별오름이다. 

◈최영 장군이 목호 토벌한 곳

서부 제주의 여러 오름 중에서 가장 많은 이가 찾는 곳이 새별오름이다. 주차장으로 들어서면서 보이는 오름 동쪽 사면 전체가 억새로 뒤덮여 제주의 숱한 오름 중에서도 유별나게 인물이 훤하다. 

여름날이면 이 거대한 신록의 벽은 하늘에 닿을 듯 솟아 생명의 기운을 가득 풍긴다. 억새꽃이 피는 가을이면 이곳은 아예 ‘황홀’ 그 자체다. 은빛 물결을 이룬 억새의 바다가 오름 능선을 따라 넘실대고, 그럴 때면 여행자들은 기꺼이 이 눈부신 바다에 빠져 표류하는 쪽배가 된다.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은하수를 떠가는 쪽배…. 

▲가파른 남쪽 탐방로를 힘겹게 오르는 여행자들. 뒤의 공동묘지 사잇길은 이달봉으로 이어진다.

중산간 들녘에 우두커니 솟은 모양이 초저녁 외로이 뜨는 샛별 같다고 해서 ‘새별’이라는 예쁜 이름이 붙었다. 한자로는 ‘효성악曉星岳’, ‘신성악神聖岳’이라고 적는다. 해발고도 519.3m, 오름 자체의 높이 119m, 오름 둘레가 2,713m로 한 덩치 하지만, 워낙 단순하고 부드러운 산체를 가진데다 입구에서 정상부와 탐방로 대부분이 훤히 가늠되기에 실제보다 만만해 보인다. 

고려 공민왕 때 ‘목호牧胡의 난’이 일어나자 최영(1316~1388) 장군이 이곳에 진을 치고 목호들을 토벌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만큼 유서 깊은 새별오름에서는 1997년부터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 즈음에 ‘들불축제’가 펼쳐진다. ‘목호’는 13세기 원元이 제주도에 설치한 말 목장 관리를 위해 파견한 몽골인胡을 말한다. 

▲부디 이 눈부신 제주의 가을여행을 잊지 말라

문화체육관광부가 우수 축제로 지정한 제주 들불축제는 제주만의 오랜 목축문화에 그 뿌리가 닿는다. 옛날, 제주에서는 밭을 갈고 수확한 작물의 운반을 위해 농가마다 소를 길렀는데, 농한기에는 마을별로 중산간의 초지대에 소를 방목해 관리했다. 

이때 소의 방목을 맡은 테우리(목동의 제주 방언)가 묵은 풀과 해충을 없앨 목적으로 늦겨울부터 경칩 사이에 초지대에 불을 놓았는데, 이 불 놓기를 계승한 축제가 제주 들불축제다. 

▲새별오름 표석.

북쪽 탐방로로 올라야 제대로 

새별오름은 두 얼굴을 가졌다. 주차장에서 보면 경주 왕릉처럼 엎어놓은 커다란 바가지를 닮았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정상을 중심으로 몇 개의 봉우리와 등성이, 굼부리가 이어져 우락부락하다. 실제로 새별오름은 서쪽과 북쪽 사면에 두 개의 말굽형 화구를 지닌 복합형 화산체다. 

새별오름 탐방은 코스 선정이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탐방객은 약속이나 한 듯이 입구에서 왼쪽(남쪽) 길을 따라 오른다. 들어서는 내내 그 길이 잘 보이고, 주차장에서도 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멀리서 볼 때와는 달리 이 길은 무척 가팔라서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힘들다. 주차장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반대쪽, 그러니까 입구에서 오른쪽 탐방로를 따라야 길이 순하고 역광에 빛나는 억새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새별오름 능선에 앉아 망중한에 빠진 여행자들. 이만 한 쉼터가 또 어디 있으랴!

주차장에서 오른쪽으로 300m쯤 간 곳에서 오르막이 시작된다. 살짝 가팔라지는가 싶다가 길은 왼쪽으로 꺾여 정상으로 향한다. 이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평탄하고 짧은 능선이 갈리는데, 이 능선은 꼭 걸어볼 일이다. 거기서 새별오름을 바라보면 동쪽의 억새사면과 서쪽의 숲에 덮인 굼부리를 모두 볼 수 있다. 

조금씩 오를수록 북쪽 중산간으로 괴오름과 다래오름, 바리메오름, 족은바리메오름, 노꼬메오름 등이 산체를 드러내며 시선을 붙잡는다. 그 뒤를 태산처럼 버티고 선 한라산. 이들이 펼쳐놓은 아름다운 풍광이 감탄을 자아낸다. 오름에 올라야만 맞닥뜨릴 수 있는 진짜 제주다. 남쪽이나 북쪽 어느 탐방로를 택하더라도 20분 남짓이면 정상에 닿는다.

▲남쪽 상공에서 본 새별오름. 남사면으로 넓은 공동묘지가 들어섰다. 억새 밭의 대형 글씨는 코로나 기세를 꺾기 위한

바람을 담아 2021년 들불축제 때 새긴 것이다. 매년 들불 축제 때마다 억새밭에 글씨를 새겨 불태운다.

서쪽 숨은 봉우리 꼭 가보시라!

정상에서 남쪽으로 이시돌목장을 키워낸 정물오름과 이웃한 당오름, 도너리오름이 삼형제처럼 정겹고, 금오름과 원물오름, 북돌아진오름은 서귀포바다를 배경으로 하늘금을 긋는다. 작고 앙증맞은 정상 표석 앞으로 이 풍광에 마음을 다 빼앗기고 아예 털썩 주저앉은 이가 한둘이 아니다. 진짜 제주를 만끽하는 이들의 어깨가 하나같이 편안해 보인다. 

정상에 오른 탐방객 대부분은 그저 단순하게 올라온 반대쪽 능선을 따라 내려선다. 그러나 이 또한 후회할 걸음이다. 정상 빗돌에서 남쪽으로 조금 간 곳에서 서쪽으로 갈림길이 보인다. 친환경 매트가 깔리지 않은 길이 숨은 듯 자리한 건너편 봉우리로 이어진다. 이 길을 걸어야 새별오름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정상 탐방로와 달리 이곳은 찾는 이가 거의 없어서 한적하고 조용하다. 새별오름의 분화구는 이 능선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위치한다. 산담과 숲 사이, 굼부리의 굴곡을 따라 반짝이는 억새의 춤사위가 참 멋진 곳이다. 

쓸쓸하면서도 빠져들게 되는 가을의 깊은 서정을 만끽하기에 이곳만 한 곳도 드물다. 외딴 바위봉우리에서 남쪽 능선을 따라 이달봉 쪽으로 내려서면 주차장으로 길이 이어진다. 

▲완만한 북쪽 탐방로. 역광을 받아 눈부신 억새가 아름답고 걷기도 좋다

◈교통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251·252·253번 버스를 이용해 화전마을정류장에 내린다. 정류장에서 새별오름까지는

1.6km로 20분쯤 걸어야 한다. 

▲성이시돌 목장의 테쉬폰

◈주변 볼거리

성이시돌 목장과 테쉬폰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겪으며 폐허가 되다시피 한 제주의 도민들을 위해 아일랜드 출신의 맥그린치 신부가 설립한 목장이다. 목장 안의 화구호를 품은 세미소오름이 있으며, 목장 초지 한켠에 우두커니 선 낡은 테쉬폰 주택 한 동이 이국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2000년 전의 건축양식 테쉬폰은 이라크 바그다드 근교 테쉬폰Cteshphon이라는 지역에서 유래한다. 테쉬폰은 제주 여행자들이 빠뜨리지 않고 찾는 포토스폿이다.

◈맛집

새별오름은 주변에 마을이나 이렇다 할 식당이 없다. 한림이나 협재항, 금악리 쪽으로 이동하는 게 좋다. 금악리에 가정식 백반(7,000원)을 잘 하는 푸른솔샘(064-796-5004)이 있다. 

▲여름날의 새별오름 탐방로. 가을과는 색다른 풍광을 보여 준다.

글.사진출처 / san chosun.com / 월간 산 10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