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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八道(신팔도)*紀行錄/⊙경기 인천****기행

인천 옹진ㅡ대청도(大靑島)ㅡ원나라 마지막 황제가 1년 넘게 눈물로 머문 섬

by 삼수갑산 2022. 10. 14.

대청도ㅡ원나라 마지막 황제가 1년 넘게 눈물로 머문 섬

▲농여해변의 감미로운 노을. 실제 눈으로 보면 더 강렬하다. 사진은 시시각각 변하는 100가지 아름다움 중

단 한 순간만 포착해 찍은 것이다. 인접한 섬 백령도가 실루엣으로 드러난다.

원나라 마지막 황제의 눈물이 깃든 섬이다. 원나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이었다. 동서양을 공포에 떨게 했던 칭기즈 칸이 세운 광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제는 이 작은 섬에서 1년 넘도록 살았다.

 

전설이 아닌 <고려사>, <동국여지승람>과 중국 문헌에 남아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순제順帝의 유년 시절이 깃든 섬, 대청도로 간다. 

아버지 명종은 즉위 8개월 만에 독살 당했다. 어린아이였던 장남 순제는 대청도로 쫓겨났고 작은아버지인 문종이 황제에 올랐다. 문종은 평생 친형을 살해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문종 역시 실권자였던 중서우승상 엘테무르의 꼭두각시였다. 문종이 의문의 병으로 죽고, 엘테무르가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문종은 유언으로 자신의 아들이 아닌, 형의 아들 순제를 황제로 추대하라고 했다. 

▲출처 / naver 지식백과

 

▲농여해변의 낭만을 즐기는 황희진·김보민(왼쪽)씨. 대청도에는 모래해변이 7곳이나 있다

혼란스런 시국에 아들이 황제가 되어도 목숨을 오래 보전하긴 어렵다고 본 것. 엘테무르는 장남인 순제보다 어린 둘째가 조종하기 더 쉽다고 판단해 영종寧宗을 황제로 앉혔다. 6세에 불과했던 황제는 즉위 2개월 만에 죽고, 마지막 원나라 황제가 된 이가 순제다. 그의 나이 14세였다. 

심각한 뇌졸중 등산으로 이겨내다!

배에서 내리자 산이 다가와 있었다. 푸른 능선이 물결치는 것이, 바다에 솟은 산 자체였다. 망망대해를 여러 날 울렁거리며 선진포에 닿았을, 태어나서 가장 먼 항해를 했을 12세 태자의 눈에 이국 땅 대청도는 얼마나 낯설었을까. 

인사를 건네듯 빗방울이 쏟아졌다. 휴가 나왔다가 복귀하는 군인들이 사라지자 선착장은 금세 쓸쓸해졌다. 비를 맞으며 산줄기의 리듬을 눈으로 좇는데, 비상 깜빡이를 켠 승용차가 선다. 대청도 관광의 산 증인이자 대청도 최초의 여행사인 엘림여행사 장윤주 사장이다. 

인천에서 뱃길로 200km 정도 떨어진 먼 섬이라, 편의상 여행사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북한이 훨씬 가까운 외딴 섬에 온 게 실감난다. 엘림펜션에 짐을 풀고, 산행 채비를 한다. 경남 김해에서 온 황희진(@HwangZin2)씨와 부산에서 온 김보민(@glapicc)씨가 함께다. 등산을 즐기는 건강 미인으로 SNS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황희진씨는 인간승리의 주역으로 SNS에서 유명하다. 4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큰 위기를 맞았으나, 극복하고 재활에 성공했다. 2개월 만에 의식을 찾았을 정도로 생사를 오가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의식을 찾은 뒤 침대에서 일어나는 데 3개월이 걸렸고, 자연스럽게 걷는 데 2년이 걸렸다. 꾸준한 병원 치료와 숱하게 눈물 섞인 재활의 터널을 지나서였다. 담당 의사는 “평생 휠체어에서 못 일어날 줄 알았다”며 지금 모습을 놀라워한다. 

재활 차원에서 걷기길부터 시작해 산행에 입문한 그는 지금은 최소 주2회는 전국의 명산을 누비는 등산 마니아가 되었다. 그녀는 “불에 살이 타는 것 같은 원인 불명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등산을 시작했다”고 한다. 가파른 오르막에선 시상통을 잊을 수 있었고, 시원한 경치에 고통이 눈 녹듯 사라졌다고 한다. 

 

▲지질공원의 명성답게 예술 작품 같은 바위가 널려 있는 농여해변. 바람과 파도가 억만 겁의 시간 속에서 만들어낸

오묘한 결정체다.

우중산행은 원치 않았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내일 나가는 배 시간을 맞추려면 대청도 최고봉 삼각산(343m)을 오늘 올라야 한다. 여행사에서 렌트한 차량을 몰아 매바위전망대로 간다. 순제의 호의일까. 차에서 내리자 비가 그친다. 

원나라 황제가 머물렀다고 하여 이름이 유래하는 삼각산은 능선이 복잡하게 뻗어 있어, 단번에 산세가 잡히지 않는다. ‘삼각산’은 우리말 ‘셔블’, ‘세부리’를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생긴 이름으로 으뜸도시의 산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고개 전망대에 닿자 멋있는 매 조각 너머로 터지는 산과 바다. 굽이굽이 뻗은 지능선과 손바닥만큼 드러난 모래울해변이 700년 전처럼 무심히 차분하다.

▲매바위전망대에서 삼간산 정상으로 이어진 능선길. 자연미가 살아 있는 청정 숲이지만,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해발 200m 정도 고도를 올렸다가 내려야하는 산행이므로, 너무 쉽게 생각하면 어려울 수 있다

수풀이 높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기우였다. 깔끔하게 정돈된 등산로가 성실히 산행을 이끈다. 매바위전망대의 고도가 144m, 해발 200m만 높이면 된다. 얼마 안 가 경치 좋은 미니 전망데크를 지나 능선이 물결친다. 

숲 향기 가득하나 과하지 않고, 수풀 무성하나 사람 한 명 걸을 공간은 열어 놓았다. 숨 가쁠 쯤이면 무신경한 듯 배려하는 섬 사내처럼 툭툭 터지는 경치,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짧은 산행이라 생각해서인지 1.8km가 멀다. 2km는 온 것 같은데 정상은 아직이다. 

철탑이 있는 주능선에 닿자 몰아세우던 성질 급한 오르막도 이별이다. 산에서 마주치는 곳곳의 안내판에도 순제의 사연이 있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 터에서 고국을 그리워했으며, 억울한 모략으로 대청도에 유배되었다는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순제는 부친 명종이 친부가 아니라는 설과, 모친이 계모라 아들을 모함해 대청도로 보냈다는 설이 있다. 나라를 망하게 한 방탕한 황제라 평가 받는 순제의 유년은 애정 결핍, 죽음의 공포, 불안이 따라다녔다.  


▲대청도의 기념사진 명소인 옥죽동 모래사막. 대청도는 예부터 “옥죽동 모래 서 말을 먹어야 시집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강한 바람에 날리는 모래로 인한 피해가 많았다.

정상은 삼세판이다. ‘정상인가?’ 착각했던 잔잔한 봉우리를 지나자, 너른 전망데크가 기다린다. 정상다운 너른 경치가 드러난다. 즉흥적인 리듬으로 불쑥 솟은 것 같은 지능선 줄기 너머 희미한 세상. 바다와 하늘이 섞여 구분이 모호하다.

 

조각조각 드러난 파랑이 맑은 허공의 세력을 넓힌다. “저기 빛 좀 봐요!” 무대 조명처럼 구름 사이로 햇살이 직선으로 뻗어 내린다. 눈부신 단 한 곳의 물결, 저 바다에 가면 엑스트라로 살아온 자도 주인공으로 빛날 것 같다.

저 노을은 마지막 황제의 행렬일까?

일행은 능선을 따라 진행하고, 홀로 되돌아가 차량을 회수해 광난두정자로 갔다. 정자에 서니 수평선 끝에서 마지막 황제의 행렬인양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노을이 보였다. 오후 6시를 지나고 있었으나 노을을 이렇게 흘려보내긴 아까웠다.

 

하산한 일행을 태워 해넘이 명소인 농여해변으로 차를 몰았다. 해변까지 길은 나 있으나, 찾기 어렵게 숨겨둔 게 아닐까 싶었다. 그게 더 어울렸다. 은밀한 임도 끝에서 만나는 해변엔 착한 파도와 순둥이 바람, 부드러운 모래가 모여 있었다. 모래밭이 되었다가 바다가 되어 잠기길 반복하는 풀등이, 신기루처럼 가라앉고 있었다. 

▲대청도를 대표하는 명물인 서풍받이. 서풍을 받아 생긴 압도적인 해안절벽이다. 영화 ‘나바론 요새’의 험준한

벼랑을 닮았다 하여 나바론 절벽이라고도 불린다.

해변 끝에선 바위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국가지질공원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 섬세한 물결일 줄은 몰랐다. 1만 년 세월이 빚은 10m 조각은 노랑, 빨강, 검정, 갈색, 회색을 띤 채, 1만 년마다 나이테를 바꾼 듯 오묘한 모양으로 치솟아 있었다. ‘나이테바위’란 이름의 부연 설명은 필요 없었다. 미켈란젤로가 곁에 있다면 신의 솜씨에 감탄해 몇 시간이고 우두커니 바위만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았다. 

▲엘림여행사 장윤주 사장이 “노을 보려면 농여해변에 가라”고 짧게 일러 주었는데, 운 좋게도 서해 최고의 해넘이

명소라 꼽아도 손색없는 노을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황제의 행렬은 농여해변을 지나고 있었다. 서울에서 몇 백km 떨어져서일까. 북반구 어딘가 낯선 공항처럼 시야가 맑다. 노을은 원래 이런 것이었나. 설명할 수 없는 빛깔로 하늘이 꿈틀댄다.

 

춤인 듯 선율인 듯 눈을 뗄 수 없다. 명작이란 이런 것. 슬픈 눈빛의 사내아이가 황금빛 두루마기를 걸치고선 멀어지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서도 노을이 잊히지 않았다. 몇 번씩 결항되어 일정이 무산되고, 새벽 일찍 일어나 3시간 넘게 배를 타고 온 고행도 행운처럼 느껴졌다. 

▲서풍받이 해안선이 한눈에 드러나는 조각바위전망대에서 아래쪽으로 내려서면 만나는 너른 갈대원

 

다음날 아침은 온통 파랑이다. 늘 떠나는 날, 날씨가 좋다는 게 우리의 징크스다. 다시 광난두정자를 찾았다.대청도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인 서풍받이 트레킹에 나선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서풍을 받아 침식되어 생긴, 천혜의 절벽 해안선을 보러가는 길이다. 어제와 달리 산길이 부산하다. 등산화, 운동화, 심지어 구두 신은 단체 관광객이 줄지어 걷는다. 

의외로 오르내림이 심해 구두 신은 신사 분은 고생깨나 할 것 같다. 산행에 가까운 코스이지만, 경치가 쉽게 툭툭 터지는 통에 걸음이 가볍다. ‘해병 할머니 무덤’ 안내판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황해도가 고향이었던 할머니는 14세에 대청도로 시집와 낮에는 엿장사와 고물상을 하고 밤에는 삯바느질을 하고 살았다.

 

지금도 섬 인구의 절반 이상은 군인들인데, 할머니는 보이는 해병들에게 손수 밥을 지어 먹이고 군복을 수선해 주었다. 또 모든 부대원에게 손수 속옷을 만들어 입혔다. 군인들은 할머니 집을 고쳐주고 ‘해병 할머니집’이라는 간판을 달아주었다. 할머니는 “내가 죽거든 손자 같은 해병들 손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서풍받이 부근에 묻히게 되었다. 


▲서풍받이 트레킹은 2.8km로 짧지만 오르내림이 있어, 만만히 보면 힘들 수도 있다

 

낙타 등 같은 해안선을 넘고 또 넘자, 탁 트인 곳에 걸맞은 전망데크가 반갑다. 바닷바람이 땀을 말리는 데 10초, 서풍받이 절벽이 마음을 사로잡는 데 3초 걸린다.

 

이제야 드러나는 흰 절벽, 압도적인 아름다움에 취해 여기서 걸음을 멈추고 싶다. 쇼팽의 즉흥환상곡처럼 부드럽고 빠른 선율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며 해안선이 펼쳐진다.  

대부분의 여행객은 여기서 온 길을 되돌아간다. 나머지 순환 코스는 찾는 이가 많지 않아 길이 묵었고, 마주치는 이도 없어 고요가 촉감 좋은 가운처럼 들러붙어 동행했다.

 

소설 ‘시인의 별’ 주인공 대청도 역참 관리 안현이 “시세時世가 나를 용납하지 않아”라고 중얼거리며 숲 속에서 나올 것만 같은, 느긋한 시간이었다. 배 시간이 다가오자, 대부분 여행객이 포구로 이동해 섬 전체가 빈 듯 차분해졌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순제는 대청도의 집에 불상을 만들어 놓고, 매일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빌었다고 한다. 대청도를 떠나던 날도, 중국 광서로 지역만 옮기는 유배길이었다. 이후 내륙에서 살다 죽었음을 감안하면, 대청도는 그의 마지막 바다였다. 

▲서풍받이 절벽의 압도적인 위용이 한눈에 드러난다.

▲대청도 가이드

섬 최고봉인 삼각산 정상이 BAC 인증지점이다. 정상 데크 옆 2.5m 높이의 대형 표지석이 인증 사진 촬영 장소다. 산행은 해발 144m 고개인 매바위전망대에서 시작해 정상을 거쳐 광난두정자로 내려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매바위전망대에서 정상까지 1.8km이며 1시간 정도 걸린다. 광난두정자까지 3.5km이며 2시간 정도 걸린다. 정상에 닿은 후 온 길을 조금 되돌아가면 광난두정자 방면 갈림길이 있다. 도로가 지나는 광난두정자에서 서풍받이 트레킹을 할 수 있다.

 

서풍받이 트레킹은 원점회귀 코스이며, 해안선 끄트머리의 마당바위까지 다녀올 경우 2.8km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핵심 경관만 본다면 광난두정자에서 900m 거리의 조각바위전망대에서 하늘전망대와 마당바위는 생략하고, 곧장 아랫길인 갈대원 방면을 거쳐 돌아가는 것이 효율적이다.

삼각산 산행과 서풍받이를 한 번에 갈 경우 6.3km이며 4시간 정도 걸린다. 삼각산은 고도 200m를 올렸다가 고도 270m를 내려야 한다. 만만히 보면 어려울 수도 있다.  

하루 8회 운행하는 버스가 있으나 시간을 맞추기 쉽지 않다. 현지 여행사를 이용하면 배편·숙박·식사·섬 내 차편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문의 엘림여행사(032-836-8367 ellimtour.co.kr)

▲대청도 BAC인증지점인 삼각산 정상 표지석. 색다른 인증 자세를 취해 달라는 기자의 짓궂은 요청에 최선을 다해

응하는 황희진·김보민(오른쪽)씨.

글.사진출처 /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