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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 아시아****국가들/⊙인도네시아*기행

인도네시아ㅡ여기 반짝이는 섬, 롬복(Lombok)이 있다

by 삼수갑산 2022. 5. 25.

인도네시아ㅡ여기 반짝이는 섬, 롬복이 있다

롬복은 ‘발리 옆’에 있는 섬이다. 발리에서 비행기로 20분, 배로 1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도, 10년 째 '새롭게 뜨고 있는 휴양지’라는 수식어로 불려오고 있다.인도네시아를 찾는 34만 명의 한국인 중 절반, 어쩌면 거의 대부분이 발리를 찾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롬복을 발리의 부속 섬 정도로 생각하는 선입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발리와 롬복은 비슷한 점이라곤 섬의 면적 정도만 꼽을 수 있을 만큼 아주 다른 색을 띠고 있다.오히려 면적 대비 인구수로 본다면 롬복의 인구 밀도가 발리보다 더욱 높을 정도.롬복을 경험한 이라면 흔히들 이렇게 말한다. 발리가 롬복을 품고 있기보단, 롬복이 발리를 품고 있는 것이라고.

 

“You can see Bali in Lombok, but not Lombok in Bali”. “발리 가보셨죠? 발리에는 롬복 없지만, 롬복엔 발리 있어요”. 롬복은 발리의 풍경과 문화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반면 발리에서는 롬복이 자랑하는 새하얀 모래사장과 산호가 가득한 바다를 찾아보기 어렵다.

 

롬복에는 발리의 힌두교를 비롯해 이슬람 문화, 토착 신앙 등 다채로운 종교와 문화가 공존하는 반면 발리는 힌두교 문화가 지배적이다. 발리의 분위기가 세련되고 경쾌하고 자극적이라면, 롬복은 조용하고 순박하고 단순하다.

 

그래서 ‘발리가 청량음료라면 롬복은 맑은 생수와 같은 곳이다’라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여태까지 발리의 부속 섬 정도라는 선입견에 시달린 롬복의 속살은 의외로 화려하다.

 

롬복 섬 관광과 휴양의 중심지인 ‘셍기기 Senggigi 해안’을 따라 지어진 고급 리조트들, 휴양지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의 다양하고 수많은 카페와 레스토랑, 나이트클럽, 상점들, 또 동북쪽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면 마주하는 눈부신 백사장과 그보다 더 멀고 넓게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 셍기기부터 섬 북쪽의 방살 Bangsal까지 아름다운 풍광의 해변들이 늘어서 있어 해안 도로를 따라 해풍 잔뜩 맞는 드라이브를 즐기기에도 이상적이다.

 

셍기기는 롬복에서 가장 먼저 개발된 관광 타운으로 관광객뿐만 아니라 롬복의 젊은이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지역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북적이는 곳이 바로 ‘말리부 Malibu 해변’. 해변의 중턱 언덕에 전망대가 있어 가깝게는 길리 Gili 의 세 섬과 멀리 발리 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 특히 롬복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이 펼쳐지기에 해질 녘이면 많은 사람들이 석양을 감상하러 이 곳 말리부로 몰려든다.

 

롬복의 매력 둘, 린자니산과 월레스 선


롬복의 어원은 ‘끝이 없는 길'이라는 뜻을 가진 산스크리트어 ‘롬보’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런데 롬복의 면적이 제주도의 2.7배임을 생각하면 끝없는 길이라니 조금 갸우뚱하다.

 

뭔가 철학적인 의미라도 담겨 있는 것일까. 문득 드는 추측이라면 인도네시아에서 세 번째로 큰 활화산인 해발 3,726미터의 ‘린자니 Rinjani 산’과, 발리와 롬복 사이를 근본적으로 가르는, 동물 지리학적인 생태계 분류인 월레스 선 Wallace Line 이 떠오른다.


먼저 린자니산은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휴화산으로, 수백 만 년 전의 폭발과 침식으로 형성되었다. 린자니 화산은 린자니산 국립공원 안에 있다. 1997년에 세워진 린자니 국립공원은 서로 다른 생물 지리학적 특성을 가진 두 지역이 공존하고 있어 동남아시아와 호주의 열대 동식물이 동시에 목격된다.

 

린자니 화산은 1847년 9월에 첫 폭발을 한 후, 2004년 10월 1일과 2016년 8월에 또 한 번 요동쳤다. 그로 인해 린자니산의 분화구가 독특한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린자니 분화구 속 타원형의 거대한 칼데라호 안에 또 다른 화산이 생긴 것이다. 칼데라호 중심에 있는 화산 속의 화산, 해발 2,363미터의 ‘바루Gunung Baru’다.

 

바루를 품고 있는 린자니의 칼데라호는 ‘세가라 아낙 Segara Anak Lake’이라 불린다. 세가라 아낙은 인도네시아어로 '바다의 눈’이라는 뜻이다. 수심 최대 200미터, 지름이 6~8.5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상호수가 바다처럼 푸른 빛깔의 물을 머금고 있으니 그 누구라도 이처럼 이름 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롬복과 발리는 고작 35킬로미터 떨어져 있지만, 롬복의 생태계는 오히려 저 멀리 호주의 것과 닮은꼴이다. 이유는 발리와 롬복 사이에 월레스 선이 지나기 때문이다. 월레스 선이란 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사이를 가르는 가상의 선이다. 롬복 위를 지나는 이 선의 서쪽에는 아시아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종의 동식물이, 선 동쪽에는 호주에서 관찰되는 종의 동식물이 서식 중이라는 것이다.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동식물을 채집하고 연구하던 19세기 영국의 박물학자 알프레도 러셀 월레스 박사가 롬복 해협의 서쪽과 동쪽에 서로 다른 육상 생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게 최초로 동물의 서식지를 크게 두 지역으로 나누고 본인의 이름을 딴 ‘월레스 라인‘을 그어 진화론의 단초를 발견한다.

 

롬복 속 월레스 선의 마지막 지점은 ‘렘베 해협Lembeh Strait’이다. 이 일대는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지금도 활발한 지각활동이 끊임없이 일어나 미묘하게나마 수시로 산과 땅의 모습이 바뀐다.

 

따라서 식물과 동물, 수중 생태계, 그리고 사람들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할 수 밖에 없다. ‘끝없는 길’이라는 롬복의 어원은 아마도 월레스 선과 린자니산 둘 중 하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지 오늘도 추측해본다.

 

1 발리와 흡사한 계단식 논 풍경이 바다 바로 곁에서 펼쳐진다.
2 3 롬복은 발리와 같은 거친 바다와 해수욕에 좋은 잔잔한 바다 모두 를 지녔다. 그 속이 찬란한 것은 당연하다.
4 롬복의 말리부 해변에서는 매일 밤 황홀한 석양이 진다.
5 린자니산 정상의 자태.
6 롬복 비치의 넓은 모래사장.
7 롬복이 오랜 터전 인 사삭족의 베 짜는 솜씨는 가히 으뜸이다.

 

▲롬복의 진짜 주인공, 길리 삼총사

사실 롬복의 진짜 주인공은 롬복 북서부에 자리한 작은 세 개의 섬 ‘길리Gili’ 삼총사이다. 이 세 개의 섬은 걸어서 불과 2~3시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작다.

 

하지만 ‘죽기 전 반드시 가봐야 할 10대 휴양 섬’ 중 하나로 꼽힌 ‘길리 트라왕안Gili Trawangan’과 바다 거북이를 비롯한 온갖 해양 동식물을 만나볼 수 있는 스노클링의 명소 ‘길리 아이르Gili Air’, 그리고 ‘길리 메노Gili Meno’를 모두 가보기 전까진 결코 롬복에 대해 평할 수 없다. 길리에 한 번 방문한 사람들은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하여 ‘매직 아일랜드’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지난 3월 24일 방송을 시작한 나영석 피디의 새 예능 <윤식당>의 촬영지도 롬복의 길리 섬이다. 그가 오랜 공백을 깨고 길리를 선택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길리는 몰디브와 보라카이를 섞어놓은 듯한 분위기다.

 

그 어떤 에메랄드빛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아름다운 빛깔을 뿜어내는 바다와, 옷차림 가벼운 유럽 여행객들이 해변에 누워 매일 태닝을 즐기는 섬. 실제로 길리를 찾는 여행자의 80퍼센트가 유러피언이다. 작고 예쁜 카페, 바, 클럽, 레스토랑이 섬주변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바다가 사방으로 펼쳐지니 젊음이 현혹되는 모든 요소를 갖춘 셈이다.

 

길리 삼총사인 길리 트라왕안, 길리 메노, 길리 아이르는 서로 다른 특징을 지닌다. 길리 트라왕안은 섬에 거주 중인 약 800명의 주민과 여행자들의 잦은 발길로 세섬 중 숙박시설이나 레스토랑이 가장 많이 마련되어 있다. 요가 센터 및 각종 편의시설도 다른 섬에 비해 많아 너무 한적한 곳보다는 적당히 유흥을 곁들이고 싶은 여행자라면 이곳을 추천한다.

 

길리 메노는 셋 중에서 가장 작은 섬이다. ‘메노’는 현지 사삭어로 ‘호수’라는 뜻. 섬 서쪽에 작은 호수가 있는데, 그곳에서 새끼 거북이를 보호하여 바다로 내보낸다고 한다. 가끔 메노 해변에서 수영을 하다 작은 거북이를 만나는 행운을 경험해볼 수도 있다. 다른 섬에 비해 조용하고 한적하다.

 

길리 아이르는 육지에서 가장 가까운 섬으로 인도네시아 말로 '물'을 뜻하는 이름을 갖고 있다. 세 섬 중에서 현지 주민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메노보다는 여행자가 많고, 트라왕안 보다는 한적한 중간 분위기의 섬이다. 방갈로와 편의 시설은 남쪽 해안에 몰려 있고, 해수욕은 대체로 동쪽 해변에서 즐긴다.

 

◆길리 트라왕안에 없는 세 가지


1. 개
2. 경찰
3. 모터로 작동하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길리에는 위 세 가지가 없다. 저기에 더불어 한때는 해양 환경 보호를 위해 어부도 없었다고. 길리 트라왕안은 개가 없는 대신 고양이가 너무 많아 ‘고양이의 섬’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이미 이 작은 섬에 사람이 거주하기 전부터 고양이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길리는 섬 속 약 800명의 주민들이 운영하는 마을자치위원회가 만드는 규칙을 준수한다. 그 규칙들은 대부분 섬의 치안과 물가조정, 환경보호에 관한 것이다. 이 섬에 경찰이 없는 것 역시 그들이 만든 규율 덕분이다.

 

모두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작은 것에 기뻐할 줄 아는 이들만이 생활하기에 서로가 지킨 규칙만 따른다면 소매치기도, 사기꾼도, 도둑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개와 경찰이 섬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때는 ‘마약 소지 혐의’가 있는 관광객 조사를 할 때라고 한다.

 

이 섬에 모터로 작동하는 교통수단을 두지 말자는 결정 역시 역시 마을자치위원회에서 내린 일이다. 이미 걸어만 다니기에도 충분히 작은 섬이다. 그래도 조금 더 빠른 이동이 필요하다면 자전거를 타거나 조랑말이 끄는 마차인 ‘찌모도’를 이용하면 된다.

 

출처 / 뚜르드 몽드 / 글 여행큐레이터 박재아 에디팅 이소윤 기자 사진·자료제공 인도네시아 관광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