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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ㅡ라벤나(Ravenna)ㅡ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 성 아폴리나레 인 클라세 성당 / 갈라 플라치디아 무덤 / 단테의 묘

by 삼수갑산 2022. 9. 5.

이태리ㅡ라벤나(Ravenna)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 성 아폴리나레 인 클라세 성당 

/ 갈라 플라치디아 무덤 / 단테의 묘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교회 및 성 아폴리나레 인 클라세 교회

 

이탈리아의 동쪽에 위치한 바다를 아드리아해라 부른다. 아드리아 해안에 위치한 대표적인 도시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베네치아가 있지만 그보다 앞서 형성된 도시가 있으니 라벤나가 그곳이다.

 

라벤나는 지리적 위치로 인해 로마제국의 마지막 수도가 되었고, 이어서 중세를 여는 운명에 놓였다. 로마제국은 이탈리아인들이 그토록 우습게 여기며 야만인이라 비하했던 이민족에 의해 멸망당했다.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이민족의 왕은 고트족의 테오도리코였는데 이들과 함께 고대(古代)는 막을 내리고 중세(中世)가 열렸다.

 

그들은 비록 이민족이긴 했으나 앞선 로마제국으로부터 위대한 건축법을 이어받았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를 계승했다. 과거 청산이 아니라 과거 계승인 셈이다. 서구의 고대 세계를 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통치했다면 그에 버금가는 통치권을 이어받은 곳이 바로 중세의 교회였다.

 

로마제국의 계급에 의한 피라미드식 통치 방식은 고스란히 교회로 옮아갔다. 실제로 가톨릭 교회는 오늘날까지 로마 교황청 아래 각 나라별로 교구, 본당 등이 세포 조직처럼 뻗어 있어서 작은 지역에까지 교황청의 개입이 가능하게 되어 있는데 이는 바로 로마제국의 통치제도와 유사하다.

 

중세 최초의 왕이라 할 수 있는 고트족의 왕 테오도리크가 세운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교회가 있다. 라벤나에는 성 아폴리나레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가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성 아폴리나레 인 클라세이고 다른 하나는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교회다.

 

두 곳 모두 6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중세의 교회다. 이 두 교회는 구조와 분위기가 마치 쌍둥이 건물을 보는 듯 흡사하며, 6세기에 제작된 모자이크가 온전히 남아있어서 중세가 첫 발을 내딛던 시절의 예술 수준을 짐작케 한다. 두 곳 모두 소박하고 간결한 가운데 1500년 전 건축물이 주는 기품을 느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모자이크 작품의 원조를 볼 수 있다.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에 들어가면 기둥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데 기둥 위의 벽면이 온통 모자이크로 덮인 화려한 색채와 조우하게 된다. 한 쪽 벽에는 성인들의 모습이 일렬로 줄을 서 있고, 마주 보는 쪽에는 순결한 처녀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마치 복제 인간처럼 비슷한 모습의 사람들이 열을 지어 서 있어서 인물 개개인이 주는 아름다움 보다는 전체가 주는 조화와 율동미를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끝에는 아기 예수에게 예물을 바치는 동방박사의 모습도 보이는데 이들이 입은 의상은 당시의 패션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흥미롭다. 이들 모자이크 위쪽에는 그리스도의 생애와 수난을 담은 모자이크 그림들이 있다. 가장 오래된 중세미술의 보석이자 후대의 그리스도교 미술의 뿌리이기에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이들 작품은 문맹자가 대부분이었던 당시 민중에게 그리스도교를 설교하는 훌륭한 시각매체이자 그림으로 읽는 성서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고단한 삶을 위안받고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들도 저세상에서 구원받기를 열망했다. 서구의 중세 사회가 시작된 것이다. (고종희 교수, 이탈리아예술기행, 라벤나, 문화일보 2005/9/26)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최후의 만찬, 6세기, 모자이크, 라벤나의 성 아폴리네르 누오보 성당 소재.

 

음서는 예수가 십자가형을 앞둔 전날 저녁 열두 제자와 함께 식사할 때떡과 포도주를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바로 성찬식(聖餐式)의 시작인이 '최후의 만찬'은 기독교 미술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데,다빈치의 그림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대부분은 긴 직사각형 식탁 한쪽 면에 나란히 앉은예수와 제자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만약 서양 문물을 접한 적이 없는 조선 시대 양반이이 구절을 읽었다면 방바닥에 앉아 각자소반을 하나씩 받아 둔인물들을 그렸을지 모른다.

 

실제로 예수와 열두 제자는 이 모자이크에서처럼 반원형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침대와 소파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카우치에 비스듬히 누워 식사했을 것이다. 로마 시대 식사법이 그랬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라벤나의 성 아폴리네르 누오보 성당의 이 모자이크는 동고트족의 테오도리크 대왕 시대, 즉 6세기초기 기독교 미술 중에서도 초기의 대표적 사례다.

 

눈부신 황금빛 공간을 배경으로 후광을 두른 예수 그리스도가 식탁을 향해 손을 들어 축복을 내리고,로마식 토가를 입은 제자들은 반원형으로 옹기종기 모여 반쯤 누운 채로 일제히 스승을 바라보고 있다

 

워낙 비좁아 뭐라도 먹을 수 있을 성싶지 않은데 특이하게도 식탁에는 빵과 함께 생선이 놓여 있다.바로 마주 보는 벽에는 '오병이어(五餠二魚)' 즉 예수가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수천 명을 먹였다는 기적적 장면이 있다.

 

이처럼 기독교 미술 초기에는 오병이어의 기적과 최후의 만찬이 연결된 사건으로 함께 나타나곤 했다.어쨌든 어디에 어떻게 앉아 무얼 먹는가보다는 예수의 권능과 희생을 되새기는 게제일 중요하지 않겠는가.( 우정아 포스텍 교수 서양미술사)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내부 벽화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내부 벽화 모자이크 벽화

 

양쪽면을 차지하고 있는 모자이크 벽화로 중앙제단을 정면 왼편은 성녀, 오른편은 성자들의 모자이크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모자이크 벽화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모자이크 벽화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모자이크 벽화

 

◈성 아폴리나레 인 클라세 성당

 

▲성 아폴리나레 인 클라세 교회 

 

▲성 아폴리나레 인 클라세 교회 

 

▲성 아폴리나레 인 클라세 교회 

 

▲라벤나 갈라 플라치디아 무덤 

 

라벤나는 가히 운명의 도시라 부를 만 하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 도시가 로마 제국의 마지막 수도라는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라벤나는 한때 지구의 절반을 지배했던 로마 제국의 수도였으니, 비록 추락의 일로에 놓이기는 했으나 제국이 남긴 문명의 흔적은 찬란했다.

 

서양사에서는 보통 서로마 제국의 멸망(서기 476년)과 함께 고대가 막을 내리고 중세가 시작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라벤나는 로마제국이 남긴 고대문명의 마지막 흔적과 중세의 시작을 알리는 유적을 볼 수 있는 곳이기에 역사의 경계 도시라 할 수 있다. 라벤나라는 작은 마을이 시골티를 벗고 로마제국 수도로서의 위용을 뽐낼 수 있게 된 것은 갈라 플라치디아라는 여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여인은 오노리우스 황제의 누이였는데 423년 오노리우스가 사망하자 대를 이은 그녀의 어린 아들 발렌티니아누스를 대신하여 섭정을 했으며 통치 기간에 문학과 예술을 전폭적으로 지지함으로써 이탈리아의 보물 목록을 풍요롭게 하는데 일조했다. 그녀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갈라 플라치디아 무덤이 있다.

 

이 무덤은 내부가 온통 모자이크로 장식되었으며 라벤나가 자랑하는 모자이크 건축물 제1호이다. 모자이크란 엄지 손톱만한 크기의 다양한 색상의 유리나 돌을 벽에 일일이 붙여서 장식하는 회화 기법을 가리키며, 기원전 3세기 정도 로마제국시대에 사용되기 시작했으나 그것을 최고의 예술 경지로 끌어올린 곳은 바로 이곳 라벤나에서였다.

 

현재 라벤나에는 아름답고, 보존상태가 완벽하며, 가장 역사적 가치가 높은 모자이크 작품들이 남아 있다. 그 중의 백미가 갈라 플라치디아 무덤이다. 나는 이 무덤을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이라 부르고 싶다. 그것은 가로 세로의 길이가 같은 십자가 모양으로서 외부는 붉은 벽돌로 아담하게 지어졌으나 내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온다.

 

고흐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별들 가득한 청색으로 빚어진 모자이크는 천상의 세계를 보여주려는 듯 무덤의 천장을 덮고 있는데, 제작 된 지 1500년이 넘도록 손상 없이 완벽하게 보존이 되어 있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로마제국은 그리스도 탄생 이후 300년 넘게 그리스도교인들을 박해했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것은 380년 이었으며 이 때부터 서구의 정치, 사회, 문화를 비롯한 모든 영역은 그리스도교 없이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어진 갈라 플라치디아의 무덤은 로마제국의 통치자의 무덤이 그리스도교를 상징하는 십자가 모양으로 설계되었으며, 그 내부가 그리스도교를 표현한 그림들로 장식되었다는 점에서 로마제국의 그리스도교 수용상황을 보여주는 귀한 자료다.

 

갈라 플라치디아의 무덤은 멸망의 기로에서도 예술적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로마인들의 모습을 증언해준다  (고종희 교수, 이탈리아예술기행, 라벤나, 문화일보 2005/9/12 )

 

▲갈라 플라치디아 무덤 내부

 

▲갈라 플라치디아 무덤

 

▲갈라 플라치디아 무덤 벽면, 천장 모자이크

 

▲네오니아노 세례당 

 

▲네오니아노 세례당 내부 모자이크, 4세기 말- 5세기 초

 

▲단테의 묘, 단테는 원래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나 고향에서 추방당한 후 1321년 라벤나에서 죽었다. 

 

▲단테의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