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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ㅡ웨일스의 수도 카디프ㅡ카디프와의 뜻밖에

by 삼수갑산 2022. 1. 22.

웨일스의 수도 카디프(Cardiff)ㅡ카디프와의 뜻밖에 만남

▲뷰트파크에서 보이는 카디프 성 첨탑

 

CWL? 낯선 공항 코드를 보고 여기는 어디지 싶었다. 검색해 보니 카디프라고 나오는데 여전히 어딘가 싶었다. 웨일즈의 수도라는데 별 흥미도 없었다.

 

영국 발음과 BBC 드라마 셜록 그리고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킹스맨에 열광하던 시기를 지나 지금은 안정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카디프는 그냥 유럽에 위치한 해안 도시일 뿐이었다.

 

▶영국에 대해 말할 때면 항상 헷갈린다. 웨일즈는 나라인 건가?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웨일즈는 대영제국의 일부이지만 스스로의 권리를 갖고 있는 나라다. (We are part of Great Britian, Wales is a country in its own right - 웨일즈 정부 공식 입장) 대영제국이라고 하니까 무슨 18세기 식민시대 같은데 딱히 뭐라고 칭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대영제국(Great Britain)에 영국(England), 웨일즈(Wales), 스코틀랜드(Scotland) 그리고 북아일랜드(Northern Island)가 포함되어 있다. 복잡한 얘기지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영국과 웨일즈는 다르다. 문화도, 언어도 그리고 무엇보다 도시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지은 지 오래된 자그마한 카디프 공항을 보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자카르타, 도쿄, 서울 등 인구 천만 메가시티로 들어가기 위해 공항에 내려설 때면 나도 모르게 긴장하게 된다.

 

크고 깨끗한 편리 시설에 감탄하는 한편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 것이다. 카디프 공항은 마치 지방 시외버스터미널 같은 곳이다. 웨일즈어(방언)가 있다고 그랬던가?

 

이해할 수 없는 알파벳이 영어 문구 아래 함께 적혀 있는 걸 보고 이곳은 자신들의 문화를 소중히 지켜온 곳이구나 싶었다. ‘워이 – 워이 –‘ 하는 특유의 의성어가 곳곳에서 들려오는데 마치 유튜브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카디프와의 조우

 

까라락 까르륵… 편두통에 시달리다 겨우 잠이 들었는데 요상한 소리에 잠이 깨버렸다. 새벽 4시다. 아니, 이 호텔은 방음이 이리도 형편없단 말인가. 옆방 아기가 우는소리 같은데 너무 잘 들리잖아. 머리는 여전히 지끈거리고 눈꺼풀은 무거운데갑자기 배에서 꼬르륵 소리까지 나기 시작했다.

 

이런 정직한 위장 같으니라고. ‘그래, 딱 30분만 더 누워있다가 일어나자’ 언제 잠이 들었는지 다시 눈을 뜨니 7시였다. 끼루룩인지, 까라락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알람 삼아 일어났다. 그나마 맑아진 정신으로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이건 갈매기 소리임에 틀림없었다.

 

전날 카디프 광장을 지나가면서 회색 비둘기 무리 속에 어색하게 껴 있는 새하얀 갈매기 한 마리를 보고의아했었는데 해안가를 끼고 있는 카디프의 위치를 생각해보면 시내 한복판에 갈매기 떼가 날아다녀도 이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는 웨일즈의 수도 카디프다.

 

카디프 시내에 위치한 아름다운 시계탑

 

공항에서 벗어나 나름 중심지에 도착했는데도 푸근한 첫인상은 변함이 없었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가 거짓말처럼 그치더니 회색 먹구름도 사라지고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파란 웨일즈 하늘이 펼쳐졌다. 파란 하늘 저 위는 바람 풍속이 엄청난지 구름이 빠른 속도로 흘러갔다. 어찌나 빠른지 구름이 아니라 건물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카디프 쇼핑 스트리트

 

▲카디프 쇼핑 스트리트

 

카디프 시내는 꽤나 명료하다. 카페, 레스토랑, 여러 숍들이 모여있는 짧은 쇼핑 스트리트를 지나면 바로 카디프 성이 나온다. 카디프 성에서 조금만 더 가면 뷰트 파크가 있고 반경 500M 이내에 인상적인 건물들이 모여있어 동선이 참 간결하다. 호텔에 도착해서 트롤리와 슈트케이스를 던져두고 뭘 입어야 하나 난감해하다가 아직 가랑비가 내리는 듯해 나이키 다운 점퍼를 챙겨 들었다.

 

▶유럽 비행 때마다 드는 의문점이 있다.

 

첫 번째, 미스트가 흩뿌리듯이 비가 내려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 두 번째, 나는 나이키 다운 점퍼를 입고 나섰는데 저 아저씨는 왜 반팔에 반바지 차림인 걸까? 우산은 둘째치고 이 추위에 반팔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저들은 감기에 걸리지 않는 초강력면역력을 지닌 걸까 싶다. 미스트도 계속 맞으면 머리가 떡지는데 왜 우산을 안 쓰는 걸까?

 

유럽을 여행할 때면 자주 보는 광경이지만 볼 때마다 생소하다. 우산 쓰기는 귀찮고 머리 떡지기는 싫어서 모자를 푹 눌러쓰고 거리를 걸었다.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깃발을 따라다니는 단체 관광객도 없어서 짧은 거리임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느긋하게 걸었다. 사실 꼭 가보고 싶었던 카페가 있었는데 정확한 위치를 몰라 한 걸음 이동할 때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처럼 좌우를 살피며 걸었다.

 

나는 커피 없이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커피 중독자이다. 로마에서 사 온 커피 원두가 떨어져 인스턴트 커피로 며칠째 버티는 중이었는데 비행 전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디프 커피 원두’를 검색해보니 꽤나 마음에 드는 카페가 몇 군데 나왔다.

 

영국 커피가 유명했던가? 이들은 차를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말이다. 별점, 위치, 카페 인테리어 등을 대충 보고 3군데 정도 괜찮다는 카페를 추려봤다. 그중 ‘200 degrees coffee’라는 카페의 라테 아트에 꽂혀 이곳을 카디프에서의 첫번째 방문지로 점찍었다

 

▲브라우니와 라테의 완벽한 조합

 

카페는 쇼핑 스트리트 초입에 위치해 있다. 호텔에서 출발한 지 채 5분도 안 돼 고소한 원두 냄새 가득한 곳에서 찐득한 브라우니와 라테를 마주하게 됐다.

 

나를 사 가라며 유혹하는 브라우니와 각종 빵을 보고 있자니 갈등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초코 브라우니 아니 크루아상 아니다 그냥 브라우니...' 혼잣말인지 주문을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횡설수설하는 나에게 선택사항이 너무 많지?’ 며 바리스타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총 2가지 종류의 원두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이곳의 시그니처 블랜드라는 Brazilian love affair 원두를 추천받았다. 이름부터가 참 재미있는 원두였다. 콜롬비안 아라비카와 베트남 로버스타를 섞었다는 이 원두는 부드럽고 묵직한 보디감을 자랑한다. 진한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적절한 선택이었다.

 

밑에 쓰인 설명 보다 원두 이름이 마음에 들어 냉큼 집어 든 건 비밀이다. 고민할 것 없이 이름 보고 원두 고르긴 또 처음이네.여러 번 원두를 사봤지만 어떤 기계로 갈아줄까라는 질문은 처음이었다.

 

프렌치프레스로 내려 마신다는 말에 카페 입구에 있던 기계로 좀 러프하게 원두를 갈아줬다. 그동안 너무 미세하게 갈린 원두를 프렌치프레스로 압착시켜 마셨던 탓에 언제나 머그잔에는 커피 찌꺼기가 남아있었다.

 

그래서 프렌치프레스 망 사이로 언제나 원두가 빠져나오는 걸로 알고 있었다. 러프하게 원두를 갈면 미세한 망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좀 더 깔끔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잠시 200 degree coffee에 앉아 찐득하다

 

못해 쫄깃한 브라우니를 아껴먹으면서 카디프의 거리를 구경했다. 창밖으로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젊은 관광객 무리가 지나갔다.

 

나는 이곳을 일 때문에 어쩌다(어쩔 수 없이) 알게 되었는데 이미 아름다운 곳이란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여행 중인 20대 관광객을 보고 있자니 쓸데없는 질투심과 경쟁심이 불쑥 치솟았다. 경쟁하는 게 아닌 데 말이다.

 

▲시내 한복판에 위치한 회전 목마

 

좀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모든 게 일찍 닫는 카디프에선 서둘러야 했다. 서둘러야 하는 사람 치고는 너무 이곳저곳 기웃거렸다. 어쩔 수 없었는걸. 이 좁은 쇼핑 스트리트 한복판에 회전목마가 있는 것도 신기했고 우리 동네와 다르게 카페가 즐비한 것도 좋았고 세일 중인 ZARA도 좋았다. 좀 전에 산 원두 덕분에 발자국마다 커피 향이 뿜어져 나왔다.

 

▲ 카디프 성 아케이드 입구

 

▲아케이드 내부에 위치한 온갖 종류의 서적이 다 있는 서점

 

카디프 성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성보다 일찍 문을 닫는다는 아케이드를 먼저 들르기로 했다. 쇼핑 스트리트와는 별개로 카디프 성 입구 맞은편에 작은 아케이드가 있는데 바, 레스토랑, 서점 등이 모여있다.

 

그중에서도 아케이드 바로 입구에 위치한 ‘Fabulous welshcakes’는 이미 맛집으로 관광객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한 웨일즈 전통 팬케이크 집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경주의 황남빵 같은 느낌이다. 팬케이크 하나에 0.50 파운드인데 맛은 딱 3가지다. 플레인, 초코, 블루베리. 딱 하나씩만 사서 맛만 보려고 했는데 사진으로 본 것보다 작아서 너무 많이 사버렸다.

 

참고사항 / 일찍 문을 닫는 날도 있고, 팬케이크가 빨리 떨어지는 날도 비일비재하다.

클로징 타임보다 2-3시간 빨리 방문하는 걸 추천한다.

 

▲아케이드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찾기 쉽다

 

▲플레인 4개랑 초코 3개 그리고 블루베리 2개 주세요!
(주인할머니가 '그렇게나 많이' 라는 시선을 담아 나를 흘끗 보신다)

 

문 닫기 30분 전에 도착해서 얼마 남지 않은 팬케이크를 보자 뭔가 초조해져서 봉지 한가득구매해버렸지만 아케이드를 구경하면서 절반을 해치워버렸다. 너무 작아서 한입이면 쏙이다.

 

쫄깃하고 폭신한 팬케이크라기보다는 부스스 떨어지는 쿠키 같은 식감이다. 겉에는 설탕이 묻어있어서 살짝 거친 느낌이다. 속에 박힌 달달한 초코와 블루베리 덕분에 출출한 오후 4시쯤 홍차랑 먹으면 완벽할 것 같다.

 

▲산 위에 솟아난 것 같은 카디프 성

 

◆카디프 성 Cardiff Castle

운영시간 9:00AM - 6PM

위 치 Castle St, Cardiff CF10 3RB, UK

가 격 13파운드(성인 1인 기준)

참고사항 / 하우스 투어는 별도의 요금이 부과된다.

특히 6월 중으로 입장료 변경 예정이라고 하니 알아두자.

 

▲카디프 성은 겉만 봐서는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없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그 진가가 드러난다.

비엔나의 벨베데레 궁전처럼 화려한 것도 아니고 남한산성처럼 견고한 것도 아니지만 그 자리에 있는 게

가장 자연스러운 일인 양 푸른 잔디밭 위에 우뚝 서있다.

 

빅토리안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카디프 성은 무려 11세기에 건축된 아주 역사가 깊은 곳이다. 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알록달록 화려한 카디건을 걸친 남자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혹시 일본인?’

 

최근 들어 일본인으로 오해받는 일이 잦아지고 있는 터라 웃으면서 대답했다.

 

하하 아니예요

 

'응? 일본 말 하잖아'

 

아, 일본어는 할 수 있는데 한국인이에요’

 

그렇게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카디프 사진 동지 나오키 상을 만나게 되었다. 주얼리 디자이너라는 나오키상은 일 때문에 영국을 찾았다가 웨일즈로 건너와 잠깐 여행 중이라고 했다. 카디프 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일본인처럼 보이는 나에게 부탁하고자 말을 걸었던 것이다.

 

이전에 여러 차례 다른 관광객에게 부탁을 했었지만 얼굴만 클로즈업한다거나 배경이 다 담기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해서 아쉬웠다는 나오키상. 그녀와 나는 의기투합하여 하루 종일 카디프를 함께 돌아다니게 되었다.

 

평소 혼자 돌아다니는 걸 선호하는 편인데 우연히 만난 상대와 마음이 잘 맞아 함께 다니는 것도 꽤 괜찮았다. 서로에게 방해가 안 가는 선에서 사진을 찍고, 찍어주고 직업이나 취미, 관심사 같은 주제로 이야기도 나눴다가 인스타용 사진을 찍자며 자리 선정까지 하는 열정을 보여줬다. 디자이너답게 열심히 디렉션까지 주면서 내 모습을 담아준 나오키상한테 너무 감사했다

 

▲뷰트 파크(Bute Park)

 

여행지에서 편안하게 빈둥거리며 돌아다닌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보통은 나와 같은 관광객 인파 속에서 그들과는 다르게 현지인처럼 보이고 싶어 한다.

 

그래서 길을 잃어도 지도를 펼쳐보거나 구글맵을 사용하지 않고 돌아다니곤 한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데 말이다. 특히 파리나 비엔나 같은 곳에서는 혹시라도 소매치기나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신경을 곤두세운 채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샌가 양 어깨가 뭉쳐있다.

 

무엇보다 이것저것 봐야 한다는 사명감에 무리하게 돌아다니기가 일쑤. 근데 카디프에서는 아니었다. 굳이 현지인처럼 굴려고 날을 세울 때와는 다르게 나른하게 풀어져 관광객인 게 티가 나도 상관없게 되어버렸다.

 

나오키상과 열심히 지도를 찾아보면서 더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카디프는 소도시 특유의 푸근한 느낌이드는 곳이었다. 곳곳에 위치한 공원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외지인도 쉽게 녹아들 수 있는 사랑스러운 도시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은 7시가 되기도 전에 모든 곳이 문을 닫는다는 점이다. 아직 대낮처럼 환한데도 말이다. 하늘 높이 떠 있는 태양만 믿고 걸어 다니다가 어느덧 8시가 넘어버려 나오키상과는 커피 한잔 못하고 헤어지게 되었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자는 약속과 함께 아쉬움 없이 헤어졌다.

 

아직 못 가본 카디프 베이와 바닷가에서 즐기는 서핑 그리고 내 다이어리 속 카디프 동네 카페들. 하루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카디프에서의 24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