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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아메리카***국가들/⊙온두라스****기행

온두라스ㅡ온두라스와 과테말라 국경 지대 근처에 있는 코판 마야 전기 유적지

by 삼수갑산 2022. 1. 20.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국경 지대 근처에 있는 코판 마야 전기 유적지

▲온두라스 코판 유적지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국경 지대 근처에 있는 코판 유적지는 마야의 전기 고전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융성했던 곳으로서, 그곳에 있는 신전은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사각형의 스테디움같은 신전 계단부분 위쪽으로 앉아 있으면, 물이 풍부했던 시기엔 계단 아래 부분을 진짜 물을 채워서, 물의 세계에서 신이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게 했던 것이다.

 

이후 물이 부족해진 이후로는 사람들에게 어스름한 밤에 환각작용을 이용해 물이 차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신전 곳곳엔 물의 세계와 수면 위의 세계를 상징하는 조각들이 보인다.

 

그곳 한 켠으로는 역대 왕들의 모습이 새겨진 사각형의 돌이 있다. 물의 신전 뒤편으로는 왕족이 살던 주거지와 왕의 무덤이 있고, 뒤쪽 너머로는 왕족의 주거지가 보인다. 현재 발굴이 계속 진행중이다.

 

중앙광장 스텔라 (STELA OF THE GREAT PLAZA) - 넓은 광장의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고 이곳의 중앙에 피라미드(GREAT PLAZA)가 있고 주의에 각각의 왕들을 묘사하는 석상이 8개 서있다. 13대 왕때 만들어 졌다고 하는 5개 석상과 3개 석상을 차례로 둘러보면 당시의 조각이 매우 섬세한 것을 느낄 수 있고 같은 연도에 만들어 졌다.

 

정교한 조각은 아직 잘 보전되어 있으며 중앙의 피라미드는 작지만 안정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남쪽 방향으로 앞쪽에 접대실(BALL COURT)이 위치하고 있다. 3개의 건물 군으로 광장을 바라보고 있는 테라스가 있고 뒤쪽에 서로 마주보고 있다

 

2개의 신전이 있다 바로 뒤쪽으로는 현재 보수 공사 및 발굴을 계속하고 있는 신전이 위치하고 있다.이 신전 옆으로 반은 많이붕괴된 신성문자의 계단이(HIEROGLYPHIC STAIRWAY) 정면의 광장을 바라보면 옛날의 영광을 묵묵히 바로 보고 있다.

 

한켠으로는 이홀레 신전에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있다. 이곳은 신전 내부의 신전이다. 마야는 처음 지은 신전위에 다시 덧씌우는 형식으로 신전의 규모를 점점 키워갔고, 이때 이전에 지은 신전에 존재하는 신상은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재건축을 했기 때문에 신전 안에 또다른 신전의 형태를 볼 수 있는데, 코판에서는 성공적으로 내부 신전을 다시 복원시킬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당시에는 새로 신전을 지을 때 기존 신전 위에 건축하는 것이 관례였다는 독특한 '문화'를 확인한셈이다. 이때 발굴 책임자는 온두라스 고고학자였고, 그가 발굴 당시 내부 신전의 모습을 보고 첫마디로 터트린 것이 이홀래여서 이름이 그렇게 붙었다.

 

이홀래는 온두라스사람들이 "세상에" 또는 "우--와"라고 말할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선명한 색상으로 칠한 부분이 잘 남아있는 이홀래신전 모습은 코판 유적지 박물관에 똑같이 만들어 놓았다.

 

바로 이 박물관이 이곳 코판 유적지의 포인트 중의 하나이다.코판이 유명한 이유는 섬세한 조각품들 때문이다. 유명한

다른 마야 유적지의 거대한 신전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겠지만 섬세한 석조품들은 어디에 내어 놓아도 빠지지 않는다. 신성문자의 계단의 위쪽의 신전(acropolis)들은 모두 많은 조각이 남아있으면 그 예술성은 참으로 정교하다.

 

시성문의 계단의 앞쪽은 중앙 광장이며 뒤쪽으로는 생활터전 및 공동묘지가 있는 지역으로 .두개의 생활 군이(WEST COURT / EAST COURT) 위치하고 있다.서쪽 군(WEST COURT) 지역에 유명한 "알따 Q"의 제단이 사면에 조각을 품고 신전의 중앙 앞에 위치하고 있다.

 

앞쪽의 신전은 자규어의 신전이라고도 불리우며 이곳에 마야 7. 12대왕의 아들의 무덤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많은 보석과 마야문자로 쓰여진 CODEX이라는 책이 발굴되었다. 작은 상부구조로 되어 있으며 지하에는 지하 동굴이 있다

 

온두라스 역사=에스파냐인이 정주하기 이전 AD300∼900년까지 북서부 코마야과고원지방에 마야제국의 고전기문명이 발달했고 코판유적이 그 중심이었다. 1502년 C.콜럼버스가 제4차 항해 때 콜론지방(모스키토스해안)에 상륙했으며, 근해가 길기 때문에이 고장을 <깊음>을 뜻하는 온두라스라 이름붙인 데서 국명이 유래되었다.

 

39년 과테말라총독령에 편입되었고 89년 테구시갈파 부근에서 금·은 광산이 발견된 뒤 에스파냐식민지로서의 개발이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에스파냐의 정복에 대해 각 지역에서 인디오의 반란이 잇따라 일어났는데, 특히 렘피라의 지도 아래 대반란이 일어났으나 진압되었다.

 

1821년 과테말라총독령이 독립할 때 그 일부로서 독립했으나, 22년 다른 중앙아메리카 여러나라와 함께 A.이투르비데의 멕시코제국에 한때 병합되었다. 24년 멕시코제국 붕괴 뒤, 그들 여러 나라와 함께 중앙아메리카연방공화국을 결성했으나, 이것도 내부분쟁으로 해체되었기 때문에 38년 완전분리독립을 달성했다

 

▲온두라스 코판 유적지

 

▲왕의 조각상

 

코판 유적은 다른 마야유적과는 다르게 많은 인간의 얼굴 형상의 조각상을 볼 수 있다. 왕을 거의 신격화 했던 것 같다.

야스 팍(Yax Pac)왕을 주인공으로 그려놓고 그 아래에 763년 7월 7일 새겨놓은 제단 석 알따 Q 제단 등 흥미로운 것들이 많이 있다.

 

▲왕의 조각상

 

▲왕의 조각상

 

▲마야 상형문자가 적혀있는 계단, (HIEROGLYPHIC STAIRWAY)

 

돌비석 M 뒤에 있는 62단의 이 계단에는 2,000자 이상의 마야문자가 기록돼 있다. 현존 마야문자 자료 중 가장 긴 기록이다. 1891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100여년이 지나도록 해독하지 못한 채 지구상에 가장 난해한 퍼즐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