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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 아시아****국가들/⊙베트남****기행

베트남ㅡ호이안(會安. Hoi An)ㅡ올드타운에서 15세기를 만나다

by 삼수갑산 2022. 10. 9.

호이안(會安. Hoi An)ㅡ올드타운에서 15세기를 만나다

하늘길에서 가끔 신의 눈과 마음이 되어 구름 아래 세상을 내려다본다. 비행기가 날개를 가다듬어 목적지 공항에 접근할 때면 태초에 이곳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한다.

 

미국 뉴욕, 호주 시드니, 페루 리마 하늘길에서는 경이로움보다 두려움을 먼저 느꼈다. 큰 산과 푸른 대지를 밀어낸 자리에 빼곡하게 들어선 마천루를 보며 인간이 너무 교만한 건 아닐지 신의 분노가 떠올랐다. 

3년 만에 떠난 해외 여행지, 호이안 상공에 접근할 때도 예전과 같았다. 우주 깊숙한 별, 지구에 인간이 ‘천혜天惠’라 부르는 산·바다·대지를 펼쳐놓고 생명을 불어넣은 신의 심정을 헤아리며 이번 여행에서도 나는 끝내 지키고 싶은 자연과 문명이 준 안락함 사이에서 무엇이 더 소중한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았다. 

다년간 국내외 여행지를 취재한 편집자로 근무한 나의 여름 휴가지 선택 조건은 의외로 간단하다. 최대한 자연과 가까울 것. 산과 바다를 크게 훼손하거나 태초의 모습을 어설프게 흉내 내지 않고 자연을 배려한 해양 관광지일 것. 

 

▲500여 년간 동서양 주거문화가 공존해 온 호이안 올드타운.

◈‘신의 손길’이 머무는 도시, 호이안

지난 6월 미디어 취재 일행과 함께 방문한 베트남 남부 호이안(Hôi An)은 그런 나의 기준에 잘 맞는 휴양도시다. 깨끗한 자연은 물론 옛 도시의 역사와 문화가 남긴 풍경이 매력적이라 이번이 두 번째 방문임에도 무척 만족스러웠다. 특히 다시 만나고 싶었던 올드타운의 낮과 밤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15세기부터 동서양 무역항의 중심 무대를 제공해 온 호이안 올드타운의 주거 문화는 대부분 17~18세기 중국, 일본, 스페인,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형성되었다.

 

베트남에서 유일하게 훼손되지 않고 현존하는 곳이기에 이방인의 눈에는 더 귀한 보물이다. 1960년부터 1975년까지 무려 15년간 계속된 베트남전쟁 때도 미군의 폭격을 피해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내원교는 이곳의 상징이자 꼭 봐야 하는 최고 관광 포인트다. 투본강 지류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어 목교를 완성했다. 베트남 화폐 2만 동(한화 약 1,000원)짜리에도 등장할 만큼 현지에서도 유명한데, 정작 내 관심을 끈 건 건립 당시 역사 기록이다. 

 

▲베트남은 동남아 국가 중에서도 결혼 적령기 남녀 인구 비율이 높다.

내원교는 1593년 일본 에도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응우옌(Nguyen) 왕조와 국교를 맺은 기념으로 일본 상인이 건립했다. 그래서 현지에서는 ‘일본교’라 부르기도 한다. 정말 뜻밖이었다.

 

베트남에서 일본을 떠올리게 될 줄이야. 서둘러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 중으로 나라의 흥망이 백척간두에 있을 시기였다. 불과 18m밖에 되지 않는 내원교를 걸으며 만감이 교차했다.  

내원교를 지나 고색창연한 거리를 걷다 보면 낡고 허름한 상점 건물이 나타난다. 노란색, 붉은색이 인상적인 건축물은 높이가 대부분 3층 이상을 넘지 않아 위협적이지 않다. 그 사이사이 골목도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어 지나는 여행자들의 흥미를 끈다.

 

올드타운 중심부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기 때문에 한가로이 산책하며 사진을 남기는 이들도 많다. 진한 커피 향에 고소한 뒷맛을 남기는 ‘코코넛커피’가 시그너처 메뉴인 루프톱 카페와 베트남의 전쟁 문화를 미화한 카페 등이 즐비해 다소 생경했지만, 그나마 옛 도시의 미관을 크게 해치지는 않아 마음이 놓였다.

 

500여 년 넘은 주거 문화 유적은 지난 시간을 그립게 하고 도시인의 마음을 순하게 정화하는 힘이 있다. 우연히 마주친 현지 예비 신랑 신부에게 살짝 어색한 미소도 지어보고, 베트남 전통 모자 ‘농’을 쓰고 지나가는 쌀국수 노점 상인과 손 인사를 건네본다. 낯선 이에게도 저절로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이 해외여행이 주는 축복 중 하나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오랜 전쟁의 슬픔을 겪은 국가일수록 꽃가게가 많은 편이다. 다낭과 호이안도 그중에 속한다.

 ◈호이안 랜턴의 불빛이 흔들리는 올드타운의 밤

올드타운의 특징 중 하나는 낮과 밤의 표정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호이안 전체가 늦잠을 오래 즐기다 오후에 눈을 뜨는 ‘야행성’ 고양이처럼 밤을 향해 달려간다. 고즈넉한 낮과 달리 올드타운의 밤은 늘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붐빈다.

 

‘호이안 랜턴’의 불빛이 선사하는 낭만적 분위기는 여행객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중국의 홍등에서 발전한 호이안 랜턴은 대나무로 만들어 가볍고 접이식이라 휴대하기도 용이하다. 무엇보다 은은하게 비치는 불빛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라 관광 기념품으로 인기가 많다. 

호이안의 밤은 세계 각지 젊은이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제대로 만끽하게 해주는 ‘영혼의 휴식처’이기도 하다. 도시 중심부를 흐르는 폭 넓은 투본강 주변에 줄지어 들어선 고급 레스토랑과 펍, 현대식 시설을 갖춘 주점에서는 동양의 정취를 술잔에 담는 유럽 여행객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짧게는 20일, 길게는 한 달여간 휴가를 즐기는 그들만의 여유로운 삶의 방식이 낳은 결과다. 우리 일행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시간. 조바심과 성급함은 잠시 내려놓고 느긋하게 호이안의 화려한 불빛을 바라보며 지난 삶을 흔들어보았다.

▲국제선이 오가는 다낭 공항에서 자동차로 45분 떨어진 호이안은 엔데믹 이후 한국 관광객의 방문이 늘고 있다.

호이안의 건축물이 전쟁을 비껴간 것처럼 바다와 육지의 자연환경도 다행히 도시 개발의 광풍을 피했다. 호이안의 해변과 습지, 주거지역에는 아직 ‘인간의 손길’이 크게 미치지 않아 소박하고 순수하게 느껴지는 곳이 많다.

 

자동차로 45분 정도 떨어진 대도시이자 호이안의 국제적 관문 역할을 하는 다낭Da Nâng이 벌써부터 도시화가 이뤄져 한국의 대기업 마트가 성업 중일 만큼 개발된 것과 대조적이다. 

호이안이 새로운 여행지로 각광받게 된 배경에는 ‘신의 손길’이라 할 만한 자연의 흐름이 자리한다. 세계 강국의 무역선이 앞다투어 오가던 투본강 하류에 남중국해의 파도가 싣고 온 모래가 계속 퇴적되면서 큰 배가 정박할 수 없게 되었고, 호이안 항구들은 대외 무역항의 기능을 점차 상실했다.

 

자연환경의 변화에 맞춰 자연스럽게 무역의 중심은 광활한 해변이 펼쳐진 다낭으로 이동했다. 한때 번성했다 급속도로 쇠락한 호이안의 어제가 이제는 인류가 사랑하는 문화유산으로 거듭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 있다. 

▲거칠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강조한 스코틀랜드 정통 스타일의 골프장으로 자연 친화적 디자인을 자랑한다. 현지에서 가장 인기 있는 16홀 코스 어디에서나 푸른 바다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한국 '골프 트래블'과 중국 '골프 트래블'이 공동 주관한 2022년 ‘아시아 100대 골프 코스TOP100 Golf Courses ASIA’로 명성을 확보했다

◈ 자연을 최대한 배려한 럭셔리 리조트

여러 나라 사람이 모이는 관광지답게 호이안 내 숙소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베트남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부터 전통과 현대적 느낌이 공존하는 호텔, 하룻밤에 한화 3만 원 정도의 저렴한 호스텔까지 어디를 선택하든 대부분 숙소는 깔끔한 편이다.

 

다만 엔데믹이 시작된 지 불과 3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숙소만큼은 안전한 먹거리와 서비스를 갖춘 럭셔리 리조트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다행히 베트남 물가는 인근 나라보다 저렴한 편이다.

다낭은 물론 호이안에도 글로벌 기업이 운영하는 특급 호텔과 럭셔리 리조트가 많지만 자연을 해석하는 방법은 각각 다르다. 긴 해변과 모래밭, 바다 바람길 등 자연환경을 최대한 보호한 리조트일수록 투자 비용이 높다. 투숙객은 자연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높아진 숙박 요금을 감수해야 한다.

 

▲거칠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강조한 스코틀랜드 정통 스타일의 골프장으로 자연 친화적 디자인을 자랑한다. 현지에서 가장 인기 있는 16홀 코스 어디에서나 푸른 바다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한국 '골프 트래블'과 중국 '골프 트래블'이 공동 주관한 2022년 ‘아시아 100대 골프 코스TOP100 Golf Courses ASIA’로 명성을 확보했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숙소는 새롭게 문을 연 호이아나 리조트&골프로 자연의 경이로움과 숭고함을 지키려는 의지가 돋보인다. 14km에 달하는 긴 해변에는 포토 존을 위해 설치한 대형 선글라스와 ‘거인의 의자’만 놓였을 뿐 호젓한 산책을 방해하는 인공 구조물을 세우지 않았다.

 

남중국해의 멋진 일출과 일몰을 테라스의 안락한 의자에서 느긋하게 조망할 수 있도록 141개 전 객실을 스위트 룸으로 조성한 것도 특이하다. 숙소 어디서나 꽃 내음을 따라 걸을 수 있고, 열대 식물을 모티프로 꾸민 인테리어와 햇살 가득한 창을 만끽할 수 있어 머무는 내내 자연의 놀이터에 초대받은 ‘귀빈’이 된 듯 편안했다.

리조트 내 시설 중에서 자연과 홀로 대면하는 즐거움을 선사한 곳은 16층에 있는 인피니티 풀. 투숙객이라면 누구나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채 눈과 마음으로 손만 뻗으면 닿을 듯한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다.

 

‘청정 그대로의 가치’를 지닌 바다, 지구에 남은 신의 걸작품을 잠시나마 어루만지며 보낸 인피니티 풀에서의 마지막 오후가 이번 여정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실외 수영장 바로 옆에 위치한 코브(Cove)는 해질녘의 하늘을 감상하기에 좋다. 파도 소리와 감미로운 음악, 호이안

랜턴의 불빛 아래 열대 음료와 고수를 넣은 칵테일 ’모히토’를 즐기며 이국의 밤을 만끽할 수 있다.

▲호이아나 리조트&골프는 오는 9월까지 ‘순간을 살아라(Live the Moment’)라는 주제로 여름휴가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합리적 가격에 자연의 품에서 휴양하며 옛 도시가 주는 정취를 만끽하고 싶은 여행객에게 추천한다

◈호이안 체험 프로그램 안내

일정이 여유롭다면 리조트에서 추천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다채로운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다. 호이아나 리조트&골프는 직접 호이안 랜턴을 만들어보는 ‘호이안 랜턴 메이킹 클래스’, 리조트 버스로 50여 분 거리에 위치한 ‘도자 마을(Thanh Ha Pottery Village) 관광’ 등 연계 프로그램을 안내한다.

 

최근에는 코코넛보트 혹은 일명 소쿠리배(baymau)를 타고 강을 천천히 돌아보는 체험에 관광객이 몰린다. 젊은 뱃사공들은 강에 그물을 던지거나 유행가에 맞춰 춤을 추는 등 한국 여행객의 흥을 돋우기도 한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배는 소박하고 코코넛 숲을 오가는 유람 코스도 단순한 편이지만, 현지 뱃사공들의 순박한 미소와 전통 마을 주민들의 생활상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글.사진출처 / chosun.com / 월간산 2022년 8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