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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메리카****국가들/⊙미국***동부지역

미국ㅡ뉴 욕(NewYork)ㅡ프라이드치킨에 묻어있는 씁쓸한 인종차별

by 삼수갑산 2022. 8. 12.

뉴 욕(NewYork)ㅡ프라이드치킨에 묻어있는 씁쓸한 인종차별

▲1840년대 노예 수입이 금지된 미국에서는 자유주(州)의 흑인을 납치해 노예주로 팔아 넘기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뉴욕주에 살던 음악가 솔로몬 노섭은 어느날 갑자기 납치돼 노예주 중에서도 악명 높은 루이지애나로 팔려가 무려 12년이나 노예로 고통스럽게 산다. 영화 '노예 12년'은 자유의 몸이 된 노섭이 자신의 경험을 기록한 같은 제목의 책을 스크린에 옮겼다./판씨네마

 

남자가 마차에 올라타고 농장을 떠난다. 12년의 세월 가운데 대부분을 보낸, 엄혹한 인권 유린의 현장이었다. 기어이 그는 자유를 되찾았다. 가까이 지냈던 팻시에게 손을 들어 인사한 뒤 그가 고개를 정면으로 돌리자 카메라가 초점을 얼굴에 서서히 맞춘다.

 

초점이 맞아 가는 느리지만 짧은 순간 동안 그의 머리가 하얗게 세고 얼굴에 주름이 진다. 너무나도 처참해 차마 드러날 기미조차 보이지 못했던 세월이 그제서야 싸락눈처럼 내려앉은 것일까?

‘노예 12년’(2014년)은 실화이기에 더 와 닿는 영화이다. 주인공 솔로몬 노섭은 뉴욕 주 새러토가에 정착한 자유인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해 생계를 꾸려나갔다. 가정을 꾸리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았던 그는 노예제도가 유효한 미국 수도 워싱턴에 갔다가 노예 상인들에게 납치 당하고, 졸지에 조지아 출신 탈주 노예로 신분이 바뀌어 루이지애나로 팔려간다.

 

이름마저 빼앗겨 ‘플랫’이라 불리며 제정신이 아닌 농장주 엡스에게 소유권이 넘어가 무려 12년 동안이나 고통 받는다. 다시 자유의 몸이 된 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노예 12년’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남겼다. 이 책은 오늘날까지 가장 정확한 노예시대의 기록물 가운데 하나로 남아있다.

미국 특히 남부는 노예제도에 다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 같은 참혹한 인권 유린 및 노동력 수탈이야 두말하면 입이 아프지만 그게 전부도 아니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왔던 노예들이 생존을 무시로 위협 받는 현실 속에서도 지키고 가꿔온 음식 문화가 남부 문화의 상징처럼 대접 받고 있다.

 

영화의 배경이기도 한 루이지애나를 중심으로 퍼진 케이준(Cajun)이나 크리올(Creole) 같은 요리 세계가 대표적인 예이다. 각각 미국으로 강제 이주된 캐나다 아카디아(현재의 노바스코샤 주)와 앤틸리스 제도의 요리를 바탕으로 프랑스·스페인 등 유럽은 물론 서아프리카·카리브해 지역의 영향을 두루 섭렵했다.

많은 미국 남부 음식이 아직도 우리에게 낯설다. 밀가루 반죽을 튀겨 설탕을 수북하게 뿌린 도넛 베녜(beignet)처럼 이름이 약간 알려진 음식도 있다. 하지만 현지에서 ‘소울 푸드’로 누리는 명성에 비해 우리에게는 대부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꼽자면 끝이 없을 정도로 낯선 음식이 많지만 그래도 이제 세계인의 음식인 프라이드치킨 하나가 일당 천 쯤으로 모든 낯섦을 상쇄시켜 준다.

 

1830년대까지 기록이 거슬러 올라가는 프라이드치킨은 스코틀랜드 식 튀김 조리법에 서아프리카의 향신료와 노예들에게 그나마 접근이 쉬웠던 농장의 닭이 만나 탄생한 음식이다.

 

멀고 먼 여정을 거쳐 요즘은 한국식 치킨이 미국에도 진출하는 시대이지만, 원조라 자부하는 미국 남부 식 치킨은 파프리카·마늘·양파 가루 등을 더한 반죽을 입힌 닭을 솥이 아닌 무쇠 프라이팬에 튀겨 만든다.

 

▲프라이드치킨은 미국 남부 음식 중에서 가장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스코틀랜드 식 튀김 조리법에

서아프리카의 향신료와 노예들에게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있던 닭이 만나 탄생했다./조선일보DB

 

치킨 하나만 놓고 보아도 미국 더 나아가 전 세계가 노예의 식문화에 빚을 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치킨의 뒷맛이 언제나 고소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노예제도가 폐지되고 심지어 인종차별조차 명시적으로는 사라진 후에도 흑인은 프라이드치킨과 얽혀 고정관념과 편견에 시달렸다. 비뚤어진 ‘원조’의 홍보 수단으로 노예시대의 흑인을 상징으로 내세운 치킨집이 한참 난립했던 것이다.

심지어 이들이 사라진 뒤에도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은 완전히 청산되지 않았으니, 대표적인 예가 팬케이크 믹스 및 시럽 브랜드 ‘앤트 제미마(Aunt Jemima·제미마 아줌마)’다.

 

일단 이름부터 1875년의 노래 ‘늙은 제미마 아줌마(Old Aunt Jemima)’에서 가져온 것은 물론, 존재 자체가 1800년대 후반 인기를 끌었던 ‘민스트렐 쇼(백인이 피부를 까맣게 칠하고 나와 흑인을 희화하는 쇼)’의 산물이다.

 

쇼의 단골 등장 인물이었던 매미(mammy) 즉 백인 가정의 살림을 책임지는 여성 노예의 이미지를 제미마 아줌마가 고스란히 담고 있다. 논란에 시달리면서도 앤트 제미마는 오늘날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실 우리도 음식을 통한 인종차별적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하필 대상도 치킨이다. 2014년 이태원의 한 주점에서 양념으로 검게 만든 치킨에 ‘흑형치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고작 네 음절에 불과한 음식의 이름을 놓고 어디까지가 차별인지 논쟁이 벌어졌다. 스페인 골프 선수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타이거 우즈에게 “식사에 초대해 프라이드치킨을 대접하고 싶다”고 말해 인종차별 논란이 벌어진 다음 해이기도 했다.

당시 ’흑형’은 ‘흑인 형’의 줄임말이므로 괜찮지만 노예 제도와 얽힌 치킨의 역사를 감안하면 둘을 짝지을 경우 차별이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거기까지라도 논의가 나아갔다는 것만으로도 한편으로 발전이라 여긴다. 하지만 좀 더 엄밀하자면 ‘흑인 형’ 또한 피부색으로 소수인종을 지칭하므로 차별적인 표현이다.

 

블랙(흑인), 옐로우(아시아인), 레드(미국 원주민) 모두 마찬가지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올바른 표현이다. 물론 ‘백인 형’이라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더 친근하다는 의미에서 쓰는 ‘흑인 형’ 또한 칭찬이라기보다는 ‘제미마 아줌마’와 비슷한 수준의 정형화이다.

이런 논의는 재미 없고 골치도 아프다. 하지만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의식주 그 가운데서도 없으면 살 수 없는 ‘식’을 수단으로 삼은 정형화와 차별이 아직도 세상에 만연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우리 또한 그런 차별의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타국에서 어렵게 생활을 이어나가는 교포들이 마늘 냄새가 난다며 타박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과거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의 넷우익은 2020년에도 우리를 공격할 때 ‘김치 냄새’를 들먹인다.

출처 / chosun.com / 김성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