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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국가들/⊙리비아*****기행

리비아ㅡ키레네(Cyrene)ㅡ리비아의 자발아크다르주에 있는 그리스. 로마의 고고유적

by 삼수갑산 2022. 9. 24.

리비아 키레네(Cyrene)

리비아의 자발아크다르주에 있는 그리스. 로마의 고고유적

▲리비아 북동부의 관광 · 휴양지. 지중해 해안 지대에 위치

 

키레네의 기원은 테라섬에서 건너온 그리스 이민자들의 식민지로써 전설과 역사의 구전으로써 전래되었고 이는 거의 기원전 631년 시기의 일이다. B.C. 7세기 중반쯤, 조그마한 에게 섬에 7년에 걸친 장기간의 가뭄과 인구 과잉으로 인하여 기근이 계속되자, 강제 이주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철저한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사회 지도층에서는, 델피 (그리스의 옛 도읍)에 거주하는 “아폴로”라는 유명한 현인과 상담 결과, 리비아에 식민지를 건설하라는 조언을 받게 된다. 이에 따라 첫 번째 이주대가 구성되었으며, 나중에 이름을 바투스로 바꾸고, 키레네의 첫 번째 왕이 된, 아리스토텔레스 (그리스 철학자)에게 전권을 맡기게 되었다.

 

이 백명 가량의 젊은이들이 바투스를 따라, 크레타섬 (지중해의 섬, 그리스 영토)까지 항해를 하여, 이곳에서 리비아로 안내할 선원을 구하여 아프리카 해안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들은, 비옥한 키레네 고원의 동쪽 변두리에 위치한, 봄바만의 플라테라는 작은 섬에 첫 정착을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바투스는 말더듬이를 치료하기 위해 델피에 거주하는 현인과 상담하였을 때, 현자가 예언하기를 “바투스야! 너는 리비아에서 양들에게 좋은 목장을 찾으라고 아폴로 신이 너를 보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이후, 바투스가 리비아에 도착했을 때, 한 번은 으르렁대며 포효하는 사자를 만나 깜짝 놀랐으나, 전혀 해를 입지 않아 그 예언이 입증되었다. 플라테 섬은 키레네 보다 적었고, 육지에 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첫 정착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2년 후에 이민자들은 현자를 다시 만나, “리비아에 살아보니 먹을 것이 없다”고 항의하자, 현자는 답하기를 “너희들이 양들에게 좋은 목장을 제공해주는 리비아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면, 나는 너희들을 크게 찬양하리라”고 빈정거리며 대답하였다.

 

정착자들은 다시 진정한 리비아 땅을 찾아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아프리카로 돌아와, 그들의 정착지를 불모의 플라테에서 봄바와 데르나 (지금의 와디 칼리즈)라는 더 좋은 곳으로 옮겼다.

 

이곳에서 그들은 6년 이상을 살았는데, 그 후에 그들은 서쪽 고원 지대에, 더 좋은 땅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서부 고원 지대로 이주 시, 친절한 리비아인 들은, 그들이 영원히 정착할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리스인들이 리비아에서 가장 좋은 지역인, 이라사 (아마 데르나, 혹은 아인 마라 지역)을 바라보게 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리비아사람을 피하여, 밤에만 행군을 하여 그들은 결국, 키레네에 도착하게 된다.

 

리비아인 안내자는 “그리스인들이여, 이곳은 하늘에 구멍이 뚫려 여러분들이 잘 지낼 수 있을 것이요” 라고 말하였다. 물론 이 말은, 키레네 지역은 비가 많이 온다는 것을 견주어서 한 말이었다.

 

리비아는 인구는 적고 땅은 넓었으므로, 그들은 아프리카 특유의 거친 날씨를 피하여 더 높은 고원 지대에 흩어져 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그리스 본토와 같지 않은 리비아 경치에 매료되었으며, 또한, 테라 지역에서 겪었던 가뭄에서도 해방되었다. 그

 

곳에는 경작에 적합한 흙과 광활한 초원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리비아인들이 우호적이었으며, 가족 없이 이곳에 온 이방인인, 그리스인들에게 그들의 딸을 결혼 시켰다.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Map of Cyrene, Libya

1. Entrance Gates to the Agora 8. Hadrian's Milestone 15. Triumphal Arch (Antonine) 22. Center of Roman City
2. Corner Tower of the Acropolis 9. Sacred Way 16. Theater 2 23. Byzantine Wall
3. Sanctury of Isis & Serapis 10. New Fountain 17.   Temple of Demeter 24. Tower on City Walls
4. Roman House 11. Pasage to the Fountain 18. Market Theater 25. Temple of Zeus
5. Acropolis 12. Unidentified Building 18a. South Gate 26. Hippodrome
6. Sanctury of Apollo 13. Dionysus Mosaic House 19. Cathedral 27. Hilltop Temple
7. North Gate 14. Greek Baths 20. Arab Tower ; 21. Church 28. Hospitum

 

리비아의 자발아크다르주에 있는 고고유적이다. 키레네는 그리스 티라의 식민지로서 헬레니즘 세계 주요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BC 600년 무렵 인구 20만 명을 넘어섰고 그리스에 곡물을 공급하는 곡창지대였다. BC 96년 로마제국의 키레나이카 속주가 된 뒤에도 로마의 중심도시로 역할하였다.

 

도시는 두 언덕 사이에 동서로 뻗어 있는데, 도시 남서쪽은 지난날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가장 오래된 건축물은 아크로폴리스의 신전 구역과 아폴론 신전으로서 BC 7∼BC 4세기에 건설한 것으로 추정된다.

 

트라야누스 공공목욕탕은 트라야누스 황제(재위 98∼117년) 때 지은 것이며 공공광장·원형경기장은 2세기에 로마식으로 재건한 것이다.

 

도시 중심부에 있는 그리스 광장에서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와 그의 딸 페르세포네를 위한 원형 건축물과 주거터가 발견되었고, 도시 북서쪽에는 제우스를 모신 도리아식 신전을 발굴하였다.

 

또 규모가 크고 매장법과 형태가 다양한 공동묘지 유적이 보존되어 있다.1982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Cyrene (Greek, 3rd/4th century B.C.); looking toward the lower city and Fountain of Apollo

 

서쪽 기념문 [West Propylon(25)]옆에 위치한 아고라를 떠나면, 오래된 바투스 거리는 아크로 폴리스까지 똑바로 이어지게 된다. 테메테르 사원 뒤쪽, 서쪽 기념문의 북쪽에는 연무장(34)으로 짐작되는 규칙적으로 배치된 골조가 부분적으로 발굴되었다.

 

연무장의 중앙 출입구는 현대적 규격을 갖춘 기념문 쪽으로 향해 있으며, 지붕을 4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는 중앙 홀로 이어져 있다. 이 중앙 홀은, 이오니아식 기둥이 측면을 받치고 있는 커다란 중앙 마당으로 통하게 되며, 만약 이곳이 체육관이 맞다면, 중앙 도로로 나 있는 조그만 방들은 탈의실로 여겨진다.

 

건물의 반쪽 즉, 북쪽에 위치한 다른 방들은 후세에 세워진 식품 저장 창고로 인하여 전체 윤곽이 혼란을 주고 있다. 건물의 북동쪽, 악간 깊은 곳에 모자익 바닥으로 장식된 헬레니즘 시기의 개인 집을 볼 수 있다. 체육관은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로마 시대에 재건축 되었다.

 

체육관 후면에 위치한, 도로 측면의 건물들은 현재까지 발굴이 되지 않았으며, 1916년에 설치한 이태리 방어벽을 지나, 고대 통행로에 인접하게 된다. 

 

통행로는 곧, 우리가 방금 떠났던 시민들의 산책로를 보여주는, 서쪽 기념문에 도달하게 된다. 아크로폴리스 출입구(Acropolis Gate)는, 한개의 넓은 출입구로 되어 있으며, 상부의 돌출된 사각탑에 의해 지탱되어 있으며, 비문의 원래 위치는 Gateway 상부에 있었으나 현재는 땅위에 놓여 있다.

 

당시, 비문에는 “요새의 벽 (The walls of the Citadel)"이라고 새겨져 있고, 당시 아우구스 지역 총독인 ”루카니스 프로쿨루스“에 의해, 보수 작업이 실시되었다. 노출된 정도를 통하여, 아크로폴리스의 벽은, 복구한 분명한 흔적을 보여주고 있으며, 추가적인 다른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향후 계속적인 연구를 하지 않고는 원래의 시기를 분명히 구별하는 것은 현재까지는 불가능하다. 현존하는 석조 건물의 주된 건물들은, 헬레니즘과 로마 시대의 것으로 여겨지며, 초기의 그리스 건축물이라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아크로폴리스 안쪽으로는 약간 발굴 작업이 진행되었으며, 1910년 미국인 탐험대에 의해 발굴된 호화로운 집의 잔해는 오늘날은 파편만 남아 있으며, 이태리 방어벽에 의해 가리워져 있다.

 

그러므로 방문객들은 쉽게 아크로폴리스 Wall을 발견할 수 있으며, Corner-Tower(B)로부터 “아시스 신전(C)"까지 진행할 수 있다. 후자의 “아시스 신전(아폴로 신전의 조그만 사원과 혼동하지 않기 바람.)”은 1915년경, 처음 발굴이 시작되어 1935년 완전히 노출되었다.

 

 아시스 신전은, 아크로폴리스 주변 안쪽으로 굽은 위치를 하고 있으며, 그의 존재는 초기 로마시대에 재 건축된 Wall의 배치에 영향을 준 것으로 여겨진다.  신전에는 2개의 사원이 있으며, 2개의 사원 중, 동쪽에 위치한 사원이 오래 되었으나, 4세기경 화재로 소실되었다.

 

사원은 간단한 형식의 현관과 성스러운 장소 및 이교도 조각상이 북쪽 Wall을 향하여 서있는 간단한 구조였다. 기초는 세라피스와 이시스를 모방한 2개의 인물 초상을 위한 Foot-Socket이 있으며, 세라피스의 조그만 대리석 상반신 조각품은 1935년 발견되었다.

 

동쪽 사원은 파괴된 후 재건축이 되지 않았으나, 그 대신 그 자리에 약간 서쪽으로 아크로폴리스 Wall에 대치하여 조악하게 건축한 매우 다른 특성을 가진 사원이 건립되었다.

 

사원 내부에서는 동전도 발견이 되었으며, 이것은 이교도의 영광을 재현시키고저 짧은 시기 동안 시도했던 쥴리안 황제 (서기 361 ~ 363) 시대에 건축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이교도의 영광을 재현하려던 시도가 실패하였고, 오래된 이교도의 조각상들은 사원의 뒷 뜰에 묻혀지게 되었으며, 1915년경 발굴되었다.

 

그 중에는 이시스 동상, 그녀의 영광을 새긴 묘비명, 삼 인의 그리스인 및 베레니스의 수장 등, 예술품도 함께 발굴되었다. (Sculpture 박물관 소장) 이시스 신전으로부터 가파른 내리막길의 계단이 북서쪽으로 나있는데, 이 계단은 중앙 계곡으로 향해 있다.

 

아직 확인되지 않고 발굴이 완전히 되지도 않은 많은 건물들이 여기 저기 튀어나와 있으며, Valley-street 바로 위 언덕에 2개의 기둥으로 지탱되고 있는 직사각형의 "Edifice (E)"가 세워져 있으나 역할이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발굴도 진행중이다. Edifice 동쪽에 바로 인접하여 약간 낮은 곳에 "House of the Dionysus Mosaic (F)"가 작으나 로마시대의 잘 보존된 저택이 있다.

 

명칭은 디오니수스를 모방한 모자이크 패널에서 따 왔으며, 현재는 조각 기념관(Sculpture Museum)에 보존되어 있다. 이 건물로부터 서쪽으로 약간 내리막길의 언덕길은 신전으로 향하고 있으며, “바투스로 통하는 길”이라고 잘못 알려진 핀다르에 의해 명칭이 잘못 붙여졌다.

 

이 도로는 아폴로의 기초 주변에서 끝나고 있으며, 의심할 것도 없이 남서쪽 언덕 위에 위치한 집에 물을 길어 나르기 위한 도로로 사용되었었다. 아폴로 신전까지의 종교 의식을 위한 행렬은 아마도 Valley-street로 통하는 준비된 넓고 쉬운 통로를 따라 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Cyrene's Necropolis encompasses hundreds of tombs expertly cut into the hills

 

▲Sanctuary of Demeter and Kore, 4th - 3rd century B.C

 

헤르메스(Hermes) ,Mercury 는 제우스와 아틀라스 딸인 마이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제우스의 전령이자 죽음 의 나라에 영혼을 인도하는 안내자. 길과 여행자를 지키고 행운을 가져다주며, 도둑과 상인의 수호신이기도 했다.

 

깃털이 달린 넓은 차양의 모자를 쓰고 역시 깃털이 달린 샌들을 신었으며, 두 마리 뱀이 감겨있는 전령의 지팡이인 케리케 이온를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탄생설화 : 제우스는 아틀라스의 딸인 마이아를 사랑하여, 헤라가 잠든 사이에 키레네산중의 동굴에서 헤르메스를 낳게 되었다. 일화 : 아폴론과 친했던 그는, 아폴론이 그를 가축의 수호신으로 삼고 돌로 점을 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또한 소몰이에 사용하는 지팡이인 케리케이온도 주었다.

 

헤르메스는 종종 어깨에 새끼양을 메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노미오 스('양치기'의 뜻)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다. 헤르메스는 제우스를 비롯한 다른 신들에 대한 전령으로서도 활약하고 있다.

 

또 그는 저승과도 관련이 있다. 헤르메스는 페르세포네를 어머니인 데메테르에게 다시 한 번 되돌려주도록 교섭 하러 가기도 하고, 헤라클레스가 케르베로스 사냥을 위해 저승에 가는 일을 돕 기도 하였다.

 

▲키레네 (Cyrene)  아폴로 신전

 

▲Temple of Zeus; Greek, 5th century B.C

 

▲Temple of Zeus; Greek, 5th century B.C.

 

▲Cyrene: the temple of the Sun-god Zeus, 6th century BC, rebuilt during the 2nd century AD

 

▲A damaged statue of a goddess still standing in the open air

 

▲Theater, originally Greek 3rd/4th century B.C.; then Roman, 2nd century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