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유럽********국가들/⊙독일*******기행

독일ㅡ에르푸르트(Erfurt)ㅡ마틴 루터가 사제 서품을 받은 에르푸르트 대성당.

by 삼수갑산 2022. 8. 21.

에르푸르트(Erfurt)ㅡ마틴 루터가 사제 서품을 받은 에르푸르트 대성당.

▲에르푸르트(Erfurt)대성당  

 

에르푸르트(Erfurt)는 튀링겐 주의 주도로 인구 21,5만의 과거에 번성했던 상업도시였다. 괴태가 나폴레옹을 만났던 곳으로 유명하며 한 때 러시아 황제 알랙산드로 1세가 살았다고 한다. 마틴 루터가 사제 서품을 받은 곳이 바로 에르푸르트 대성당(Erfurter Dom)이다. 

 

이 대성당은 1278년부터 1400년까지 약 120여년에 걸쳐 건축되었고, 독일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걸작품으로 꼽히며 에르푸르트의 랜드마크로서 자리잡았다. 대성당 옆에 있는 3개의 첨탑이 있는 세베리교회 중 가운데 첨탑에는  5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성당의 종 '글로리오사(Gloriosa)'가 있다. 

 

이 종은 자유롭게 울리는 중세 시대 종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종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여름에 개최되는 '대성당 계단 축제' 때에는 대성당으로 오르는 70개의 계단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외 축제무대가 된다.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에르푸르트(Erfurt)대성당

 

▲에르푸르트(Erfurt)대성당  야경

 

▲에르푸르트(Erfurt)대성당

 

▲에르푸르트(Erfurt)대성당

 

▲에르푸르트(Erfurt)대성당

 

▲에르푸르트(Erfurt)대성당

 

▲에르푸르트(Erfurt)대성당

 

▲에르푸르트(Erfurt)대성당

 

▲에르푸르트(Erfurt)대성당

 

▲에르푸르트(Erfurt)대성당 부조

 

▲에르푸르트(Erfurt)대성당

 

▲에르푸르트(Erfurt)대성당  내부

 

▲에르푸르트(Erfurt)대성당  내부

 

▲에르푸르트(Erfurt)대성당  내부

 

▲에르푸르트(Erfurt)대성당  내부

 

▲에르푸르트(Erfurt)대성당  내부

 

▲에르푸르트(Erfurt)대성당  내부

 

▲에르푸르트(Erfurt)대성당  내부

 

◆루터와 종교개혁

 

루터(Martin Luter)는 A.D. 1483년 11월 작센 선제후의 영토인 아이스레벤(Eisleben)에서 광부인 아버지와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인 어머니 슬하에 태어나 성장했다.

 

교육열이 강한 아버지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도 아들을 공부시키고 18세 때에 독일에서 유명한 에르푸르트(Erfurt) 대학에 입학시켰다. 루터는 에르프르트 대학에서 스콜라철학과 라틴의 고전 문학을 공부하고 A.D. 1505년에 문학 석사로 졸업하고 법관이 되기 위하여 준비하던 중 어느 비오는날 비를 피하기 위하여 나무아래 있다가 찬구가 낙 뇌를 맞아 죽는 것을 보고 영혼을 위하여 고민하다가 출세의 길을 버리고 에르푸르트 어거스틴 수도원에 들어갔고. 수도원에서 루터는 인정을 받았고 A.D. 1507년에 신부안수를 받았다.

 

특히 루터에게 신앙의 영향을 준 사람이있으니 스타우핏츠(Johon von Staupitz)인데 스타우핏츠는 A.D. 1502년에 세워진 웨덴버그 교수였는데 루터를 추천하여 루터는 전임하게 되었고 A.D. 1509년에 신학사로 졸업했다. A.D. 1510년 11월에서 1511년 4월까지 수도원 일로 로마에 여행하게 되었고 A.D. 1512년 10월에 신학박사가 되고 신학교수가 되었다. 그는 설교가로서 명성을 높아 웨덴버그 대학교에 학생의 수가 점점 증가하였다. 그는 A.D. 1513년에서 A.D. 1515년까지 시편과 바울서신을 강의하였고 A.D. 1516년 말까지 로마서를 강의하였다.

 

그리고 그 이후 갈리디아서와 히브리서와 디도서를 강의하였다. 루터는 어거스틴의 가르침과 스콜라철학과는 현저하게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고 아리스도텔레스를 버리고 스콜라 철학을 배격했다. 그리고 성서와 어거스틴으로 돌아갈 것을 강조하였다. A.D. 1515년에 그는 자기 수도원 연구 주임 겸 11개 수도원을 관리하는 지방 신부로 임명되었고 그는 수도원에서 헌신, 경건, 수도적 열성 자로 호평을 받았다.

 

루터는 수도사이며 신학박사이며 신학 교수이면서도 구원에 확신이 없었다.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도사로서는 영혼이 평화를 얻지 못하고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때에 그의 스승인 스타우핏츠가 도왔다. 스타우핏츠는 루터에게 “진정한 회개는 형벌하시는 신을 두려워함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신을 사랑함으로 시작되는 것이다”라고 권면하였다. 루터는 스타우핏츠로 하여금 어렴풋이 복음에 눈을 뜨기는 했지만 확신을 갖기 가지는 시일이 걸렸다.

 

A.D. 1513년에서 A.D. 1525년 시편과 로마서를 강의를 하면서 그는 구원은 인간의 공덕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절대 신뢰함으로 얻는바 인간은 죄인이면서도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으로 하여금 값없이 완전히 사하심을 받은 용서받은 죄인이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기인하고 그리스도께서 인간대신 죄를 짊어지시고 그의 의를 우리들에게 돌려주시므로 우리를 의롭게 만드셨다. 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그 복음을 가르쳤다.

 

독일의 신비가 학자들이 이 진리를 인정하고 따르게 되었고 그 중에 타울러(Tauler)가 루터를 도와 “인간의 구원은 사람의 생각했던 대로 인간의 공덕이 아니요 하나님을 절대로 신뢰함으로 얻어진다고 결론을 내렸다. A.D 1517년 루터는 교황청이 자행하는 극심한 부패에 대하여 반기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루터는 당초부터 교황청에 반기를 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성경을 연구한 결과 그 사상이 한 걸음 한 걸음 교황청과 멀어지고 있었다.

 

당시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기 위하여 막대한 건축비용으로 100년 이상 공사를 했으나 완공하지 못하자 교황 네오 10세가 공사비 조달을 위하여 면죄부를 본격적으로 팔기 시작했다. 면죄부판매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유리어스 2세가 처음에 공포하였고 그의 후계자네오 10세(A.D 1503-A.D. 1513)는 더욱 극대화했다. 독일 국내에서는 마인즈의 대 감독인 알브레히트(Albrecht)에게 판매 권한을 주었다 알브레히트는 자기 지방에서 판 수입의 절반을 자기가 먹었다

 

. 그리고 판매, 수금, 책임자로 도미닉 교단에 수도사인 테첼에게 임명했는데 테첼은 웅변가였으므로 능수능란한 웅변술로 선전하여 판매실적을 높였다. 테첼은 민중을 모아 놓고 이렇게 선전하였다. [지금 맬 수도 풀 수도 있는 권세를 받은 교회가 천국과 지옥의 문을 열어 놓았다. 이 면죄부를 사는 자는 사는 즉시 이 자리에서 용서받을 것이다. 그리고 연옥에 있는 자를 위하여 이 표를 사면 그 은화가 헌금 궤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는 곧 천국으로 올라 갈 것이다] 했다. 테첼의 말을 들은 선량한 농민이나 양심에 예민한 민중들은 자신의 죄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너도나도 몰려들었고 재산을 아까와 하지 아니하고 이 면죄부를 샀다.

 

그리하여 판매고가 급격히 올라갔다. 신과의 인격관계만이 구원을 얻을 줄 믿는 루터에게는 면죄부 판매가 용납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허무한 면죄부 판매는 참 종교를 파괴하는 일인 것을 믿었다. 그리고 도저히 묵과 할 수 없는 일임을 확신하였다.

 

 테첼 일행이 루터가 있는 비덴버그를 향해 오고 있었다. 루터는 테첼의 입성을 금하고 강단에서 설교하면서 돈으로 죄를 용서할 수 있는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선량한 민중의 재산을 사기해 가는 자들이라고 테첼 일행을 맹렬하게 공박했다.

 

그리고 A.D 12517 10 3일 비덴 버그 성교회 정문이면서 비덴버그 대학의 게시판으로 사용하는 문에 95개 조항을 라틴어로 서서 계시하였다. 그 다음에는 지방인들이 모인 성당에서 그 95개 조항을 낭독했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1. 우리의 주요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회개하라'하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땅 위에 믿는 자들의 전 생애는 계속적 참회라야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

 

2. 이 회개라는 말은 참회의 예전 곧 사제의 직에 의하여 집행되는 참회나 사 죄에 대한 말로 이해될 수 없다.

 

3. 오늘의 선언은 내적인 회개만을 뜻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 법이 다. 만약 육신의 내적인 회개가 정욕까지도 정복하지 못한다면 그 회개는 무가치한 것이다

4. 형벌은 자기 자신을 증오하는 동안은 계속되는 것과 같이 내면적 참된 회개 역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된다.

 

5. 교황은 그 직권으로 교회의 권위를 이용해서 징계나 그 어떤 벌도 용서할 권세를 갖지 못한다.

 

6. 교황은 하나님으로부터 죄가 사해 졌다는 것을 선언하고 확증하는 것 이외 에 아무 죄책도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만일 억제당한 일에서 사죄한 다든지 그의 직책 이 멸시받는 경우에는 죄는 제거되지 않고 용서 받지도 못한다.

 

7. 하나님은 철저히 겸손하게 되지 않은 사람의 죄책을 용서하지 않으신다. 그 러나 자기의 대행자인 사제에게는 굴복하신다.

 

8. 고해와 참회를 하게하는 교회의 법규는 산 자에게만 부여되는 것이며 죽은 자에게는 아무 것도 용서할 수 없다.

 

9. 그러므로 교황이 언제나 죽음과 외적 공경을 예외로 취급할 때면 성령께서 교황을 통하여 자비를 내리신다.

 

10. 임종을 맞이한 사람들에게 장차 사면을 받을 연옥 때문에 교회가 제정한 참회를 보류하는 사제들이 어리석고 사악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11. 사람들이 교회에서 하는 참회와 사죄를 연옥의 징벌이란 것으로 변해버린 이 가라지는 감독들이 자는 동안에 심겨진 것이다.

 

12. 전에는 일어난 죄의 사건에 대한 참회와 사죄라는 소위“교회법에 따른 징 벌”은 진실한 회개가 있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사면 선언 후가 아니라 그 이전에 부과되는 것이다.

 

13. 죽은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으로써 모든 허물에 대하여 치루어야 할 것을 만족시켰고 교회 법규에 대하여 이미 폐기 되었다.

 

​14. 죽은 사람의 불완전한 경건이나 불완전한 사랑은 필연적으로 큰 공포를 동반하는데 사랑이 적으면 적을수록 더 큰 공포가 있게 된다.

 

15. 이 공포와 놀람 자체만으로도 그리고 다른 것을 말하지 않더라도 연옥의 고통과 아픔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16. 지옥, 연옥, 또 천국은 각각 구별되기를 이미 절망한 상태와 절망에 빠져 들어가는 경우와 구원의 확실성이 각각 구별되는 것과 같다.

 

 

17. 연옥에 가있는 영들은 불안과 공포가 증가하고 동시에 그들의 사랑이 그들에게서 점점 자라고 더해지는 것을 경험할 것이다.

 

18. 연옥에 있는 영들은 공로의 상태에나 사랑의 증가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은 이성의 근거로나 성서에 의하여 증명되지 않는 것 같다.

 

19. 연옥에 가있는 영들은 모두가 행복을 누리고 있고 그들의 축복을 확신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매우 확실한 것이라고 한다고 해도 증명할 수 없다.

 

20. 그래서 교황은 “모든 징벌의 완전한 사면”이란 말로써 벌이 깨끗이 사면 받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가 부과하려 했던 징벌만을 사면한다는것을 생각하고 있다.

 

21. 그러므로 교황의 면죄부를 사므로써 사람이 모든 징벌에서 해방 받고 행복해 진다고 말하는 면죄부 판매 권유자는 그릇되다.

 

22. 교황은 지옥에 있는 영혼에 대하여 그 어떤 형벌도 사할 수 없다. 죄 문제로 인한 형벌은 오직 성경적 방법으로서 현세에서 사함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23. 모든 죄의 문제로 사면이 가능하다면 그는 완전한 사람이어야 하며 그 수는 극히 제한 된 숫자일 것이다.

 

24.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형벌로부터 해방된다는 무제한하고 화 려한 약속에 의하여 버젓이 사기 당하고 있는 것이다

 

.25. 교황이 연옥에서도 일반적으로 장악했다는 것은, 같은 권세를 가진 모든 감독과 목사도 자기의 감독구와 교구 안에서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다.

 

26. 교황은 그가 (연옥에 대하여 전혀 갖지 않은) 이 열쇠의 권세를 근거로 하 여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대속의 방법으로 영들에게 사유한다는 것은 매 우 잘하는 일이다.

 

27. 헌금 궤에 떨어진 돈이 쩌렁 소리를 내자마자 연옥에서 영혼들이 올라온 다고 하는 사람들의 사람은 교설(巧舌)을 설교하는 것이다.

 

28. 헌금궤 안에서 울려나자마자 이득과 탐욕이 자란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 나 교직자의 도움이나 대속 기도가 성립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한 뜻에만 달려 있다.

 

29. 마치 성 세베린(St, Severin)과 파스칼리스(Paschalis)에 관한 전설의 기 록과 같이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이 그 곳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하는지 어떠한지를 아무도 인수 없다.

 

30. 아무도 자기의 회개가 진실 된 지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그가 죄의 완전한 사면을 받겠는지는 더욱 확신할 수 없다.

 

31. 진실 된 참회를 하는 사람도 드물고 진실 된 마음으로 면죄부를 사는 사 람도 드물다. 말하자면 그런 사람이 매우 드문 것이다.

 

32. 면죄증서에 의하여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친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33. 교황의 사면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의 은총이라고 설득한 사람은 모든 이들은 특별히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34. 그 이유는 사면의 은총(Ablessgneden)은 인간에 의하여 정해진 예전적인 사죄행위의 형벌에만 적용되는 것이다.

 

35. 영혼을 연옥에서 구출한다거나 참회사를 마음대로 택할 수 있는 참회 증 서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에게 참회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은 그 리스도적이 아닌 것을 설교한다.

 

36. 어떤 크리스천이든 자기의 죄에 대하여 참된 회개를 하는 사람은 면죄부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히 면죄 받는다.

 

37. 모든 참된 크리스천들은 산자든지 죽은 자든지 면죄부 없이도 하나님의 선물에 의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든 영역 재산에 참예할 수 있다.

 

38. 그러나 교황이 주는 사죄와 거기에 참예하는 것을 무시해서는 안되는데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교황의 사죄는 하나님의 선언이기 때문이다.

39. 면죄부의 관대한 선사와 동시에 참된 회개를 민중 앞에서 자랑한다는 것 은 극도로 어려운 일이며 학식이 있는 신학자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40. 참된 회계는 징벌을 구하고 그것을 사랑하나 많은 면죄부를 갖는 것은 징 벌에서 해방하고 사랑이 그것이 싫어하도록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도 그 렇게 할 기회를 준다.

 

41. 사도 계승과 교황 사면증을 받게 하는 행위를 선한 일보다 더 중요한 것 으로 알도록 설교해서는 안 된다.

 

42. 교황의 지도가 면죄증을 미끼로해서 그것을 자선사업인양 교훈한 것은 교 황의 잘못된 의도임을 그리스쳔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3. 불상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행위는 면죄증을 사는 것보다 더 선한 일이라는 것을 모든 크리스쳔들에게 교훈해야 한다.

 

44. 면죄증으로 인간은 선하게 되지 못하며 사랑의 선한 행위로만이 형벌로부 터 자유케 되는 것이다.

 

45. 이웃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도 본체만체하고 면죄부를 하는 사람들은 교 황의 사죄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 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46. 딤전 5장 8절의 교훈 같이 경제생활이 어려운 가족을 위하여서는 필요한 것을 저축할 수 있어도 결코 면죄증 때문에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모든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7. 면죄증 판매행위는 그 어떤 개인에게는 자유로운 행위일지 모르나 그것을 성도들에게 강요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

 

48. 교황은 면죄부를 주는데서 얻는 돈보다는 사랑의 열성이 깃든 기도를 더 원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49. 교황의 면죄부는 사람이 그것에 신뢰를 두지 않는다면 유익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사람은 그것으로 하나님을 두려워 할 것을 잃는다면 그처럼 해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50. 만일 교황이 면죄부 판매에 설교자들의 공갈행위를 안다면 그는 그의 양 들의 가죽과 살과 뼈로 베드로 성당이 세워지는 것보다는 불태워 재로 만 드는 것을 더 원할 것이다.

 

51. 어떤 면죄부 판매설교자들 그 돈을 빼앗긴 많은 사람들에 대해서 교황은 자기 돈으로 또는 베드로 성당을 팔아서라도 갚아줄 것이라는 것을 그리 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2. 면죄부를 구입함으로써 행복해지리라 믿는 것은 헛된 신앙이다. 교황 자신이 자기의 영

혼을 걸고 보증을 하려 한대도 그렇다.

 

53. 모든 교회에서 면죄증 문제가 묵인된다면 그렇게 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적이 되는 것이다.

 

54. 말씀을 증거하는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면죄증 문제를 더 깊게 다루는 행위는 부정을 행하는 것이다.

 

55. 만일 사람이 매우 적은 가치를 가진 면죄부를 한 방울과 단순한 행렬과 축제로써 축하한다면 매우 값비싼 백 개의 방울과 백배의 행렬과 굉장한 축제로써 기리고 축제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교황의 견해이다.

 

56. 교황이 면죄부를 나눠주는 것은 근본인 교회의 “보화”(여분의 공적을 말 함)는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충분히 묘사할 수도 알려줄 수도 없다.

 

57. 왜냐하면 그것이 현세적 보화(사죄)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많은 설교자들 이 이 보화를 쉽게 나누어주지 않고 도리어 모으기에만 힘쓴다는 것에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58. 그 보화는 그리스도의 보화이지 성자들의 공로는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교화의 작업

없이도 언제나 역사하고 내적 인간을 위해서는 은총을 주며 외적 인간을 위해서는 십자가의

죽음과 지옥을 주는 것이다.

 

59. 성 로체스는 공동체 안의 가난한 사람들을 교회의 보배라고 불렀지만 그는 그 시대의 통용되는 의미로 그 말을 사용했던 것이다.

 

60. 우리는 이 보화란 것을 그리스도의 공로로써 교회의 산물로 준 교회의 열쇠의 권한이라고

근거 있게 또 심증 있게 말할 수 있다.

 

61. 왜냐하면 형벌의 면죄와 교황이 관리하도록 된 조건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교황의 권한

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62. 그러나 교회의 참된 보호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에 대한 거룩한 복음이다.

 

63. 이 보화는 자연적 상태로는 미움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처음된 자를 마지막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64. 그 반대로 면죄부의 근거인 보화는 자연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환영을 받 는다. 그것은 마지막 자를 첫째로 만들기 때문이다.

 

65. 그래서 복음의 보화는 옛날에는 돈 많은 사람들을 낚던 그물이다.

 

66. 그러나 면죄부의 보화는 오늘 날에는 사람의 부를 낚는 그물이다.

 

67. 설교자가 큰 은총을 주기 위하여 외치며 파는 면죄부는 큰 이익과 향락을 가져다 주기 때문에 큰 은총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68. 그러나 그 같은 면죄부는 사람이 그것을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의 축복 과 비교한다면 매우 적은 은총이다.

69. 감독들과 교구 목사들은 교황의 사죄권을 위임받은 자들을 큰 경의를 가 지고 맞아들이게 한 책임이 있다.

 

70. 그러나 그들이 더 큰 책임을 지는 일은 이 위임받은 자들이 교황이 맡긴 일 대신에 자기들의 꿈을 설교하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데 대해서 이다.

 

71. 사도 계승의 면죄의 진리에 반대하여 말하는 자는 추방과 저주를 분별해 야 한다.

 

72. 다른 한편 면죄증 설교자들의 잘못되고 뻔뻔스런 말에 대항하는 자는 복 을 받을지어다.

 

73. 교황은 어떤 방법이든지 면죄증 판매를 방해하는 사람에 대하여 분노로서 책망할 것은 당연하다 고 말할 수 있다.

 

74. 교황은 면죄부라는 구실 안에서 거룩한 사랑과 진실성에 손실을 끼치기 위하여 책동하는 사람들에게 더 심하게 분노와 추방을 내리는 것이 좋다 고 볼 것이다.

 

75. 교황의 면죄부에는 굉장한 힘이 있어서 어떤 사람이 그것은 불가능한 일 이지만 성모를 능욕했더라도 죄에서 해방해 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헛 된 생각이다.

 

76. 그와 반대로 우리는 교황의 면죄부는 가장 적은 죄도 없이 할 수 없으며 죄로써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주장한다.

 

77. 만일 성 베드로가 지금 교황이었더라도 큰 은총을 내릴 수 없었을 것이 라고 말하는 것은 성 베드로와 교황을 모독하는 것이다.

 

78. 그와 반대로 우리는 이 교황이나 다른 어떤 교황이라도 면죄부보다 더 큰 은총, 즉 다시 말하자면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말하고 있는 복음(福音)과 성령의 능력과 병 고치는 은사들을 자유로이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79. 교황의 문장을 화려하게 찍은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 더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80. 이 같은 가르침이 민중 앞에서 말해지는 것을 보고 묵인하는 감독 교구 목사 신학자들은 거기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81. 면죄부에 대한 그 같은 뻔뻔스럽고 파렴치한 설교는 교황의 명예와 품위 를 비방이나 또는 순박한 삶을 이끌 수 없는 예리한 질문에 대해서 수호하 는 것은 아무리 학식있는 사람일 찌라도 어렵게 만든다.

 

82. 예를 들면 교황은 왜 모든 영들을 그의 가장 정당한 이유로서 가장 거룩 한 사랑 때문에 또 심령들의 지극한 곤궁 때문에 연옥에서 해방시키지 않 는가. 실제로 그는 베드로 성당을 세우는데 불쌍한 그리스도인의 돈으로 써 하기 보다는 자기의 돈으로 해야 할 것이 아닌가 ?

 

83.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옳지 않은데 왜 아직 죽은 자의 장례식이나 해마다 하는 제사가 남아있으며 교황은 죽은 자들을 위해 바친 것을 돌려주지도 않고 그 기부금을 취소하기를 허락하지도 않는가 ?

 

84. 또는 그들이 하나님 없이 사는 자 즉, 적대자들에게는 돈 때문에 하나님 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영혼으로 속해내기를 허락하면서 하나 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영혼자체의 큰 곤경을 위해서 사랑 으로부터 해방하여 내지 않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하나님과 교황에 대한 경건이 아니겠는가 ?

 

85. 또는 참회에 관한 옛 조문이 오래전에 사실 폐지되고 사용되지 않고 죽은 글이 되었는데 왜 아직 사죄권과 관련되어 그것이 아직 효력이 있고 산 조 문인 것처럼 돈으로써 구해낸다고 인정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86. 또는 오늘날 제일 부자보다 더 돈을 많이 가진 교황이 지금 성 베드로 성당을 세우는데 불쌍한 그리스도인의 돈으로 하기 보다는 자기 돈으로 할 것이 아닌가 ?

 

87. 또는 교황은 참회로써 완전한 속죄를 받고 영적 재산에 참예할 수 있는 사람에게 무엇을 사해주고 나누어 주려고 하는가 ?

 

88. 또는 교황은 용서와 은총에 대한 참여를 지금 하루에 한번 주는 대신에 백번 모든 믿는 자에게 준다면 그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 되겠는가 ?

 

89. 교황이 면죄부로써 돈보다 구원을 관심했다고 본다면 왜 그는 똑같은 효 력을 가졌다고 보이는 면죄부에 대한 옛 교서를 정지시켰겠는가 ?

 

90. 만일 평신도의 예리하고 사려 깊은 항의를 권력으로 억압하고 근거제시를 통하여 가라앉히지 않는다면 교회의 교황은 원수에게 조소거리가 되고 그 리스도인은 불행하게 되는 것이다.

 

91. 만일 면죄부가 교황의 정신과 의견에 따라 설교로 권유한다면 이 모든 의 문은 해답되었을 것이며 사실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92.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 '평화'하고 말하는 모든 예언자들은 사라졌으면 좋 겠다.

 

93. 그러나 십자가 없는 곳에 '십자가', '십자가'하고 그리스도 백성들에게 말하 는 예언자만이 축복을 받을 것이다.

 

94. 기독교인은 벌이나 죽음이나 지옥을 통해서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따르도 록 노력해야 한다.

 

95. 그래서 여기 평화가 있다고 하는 태평한 환상으로 보다는 많은 고난을 통 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더 의지하게 하여야 한다.

 

출처 / blog.daum / sungh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