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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 아시아****국가들/⊙네팔*******기행

네팔ㅡ초록이 실종된 곳…히말라야서 황량한 ‘외계 행성’을 만나다

by 삼수갑산 2022. 9. 21.

네팔ㅡ초록이 실종된 곳…히말라야서 황량한 ‘외계 행성’을 만나다

◆히말라야 오지 트레킹 해발 2,000~6,000m 고산병과 싸움

 

나르Naar(4,110m) 가는 길은 상당한 오르막이었다. 사람들은 어쩌자고 이 꼭대기에 마을을 만들었는지, 두 번째 방문이라 해도 힘든 건 여전했다. 몇 개월째 히말라야 트레킹을 해도 해발 4,000m가 넘는 곳에선 밤새 깨어 있는 느낌이 들곤 했다. 이번에도 뒤척이다 아침을 맞았다.

 

▲땅게마을 위로 오래된 사원의 흙기둥 같은 절벽이 병풍처럼 서 있었다. 세월이 만든 작품이었다./ 월간산

 

출발부터 징그럽게 올라갔다가 다시 징그럽게 내려갔다. 하루 동안 올려놓은 고도를 순식간에 까먹었다. 모두 처음 가는 길이다 보니 야영지 위치를 몰랐다. 일단 계곡 옆에 텐트를 쳤다. 포터들은 오후 5시도 되기 전에 저녁을 준비했다.

 

밝을 동안 모든 것을 끝내야 해서다. 이번 트레킹은 가이드 역할을 하는 셰르파 한 명, 포터 4명만 동행했다. 그런 이유로 아침과 점심은 내가 직접 해 먹고, 저녁은 포터들이 만든 것을 같이 먹었다.

 

간밤에 눈이 내려 밀가루를 뿌려 놓은 것처럼 하얗다. 산짐승이 다닌 흔적이 달팽이 자국처럼 구불구불했다. 눈은 그쳤지만 구름은 그대로였다. 시작부터 희뿌연 안개 속을 걸었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 거의 없어 길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원본출처 / graphicmaps.com

 

▲나르마을에서 출발하는 포터들. 밤새 추위에 떨어도 아침이면 따뜻한 햇살에 몸이 녹았다./ 월간산

 

드물게 만나는 돌탑만이 우리가 가는 길을 확인해 주었다. 철분이 많은 계곡은 여기저기 피를 뿌려 놓은 듯 붉었다. 기괴한 모습이 익숙해지려던 차에 계곡이 끝나고 맨몸의 산이 드러났다. 산은 시나몬 가루를 뿌려 놓은 듯 오묘한 색이었다. 고도는 5,000m를 넘어섰다.

 

테리 라Teri La(5,595m) 정상은 자그마한 돌탑이 전부였다. 돌탑 위에는 타르초가 펄럭였고, 아래로는 황량하고 척박한 풍경이 펼쳐졌다. 올라갈 땐 4시간이 걸려도 내려갈 땐 순식간이었다. 하이캠프(5,028m)는 유독 바람이 심했다. 야영지 옆으로 졸졸 흐르는 물이 유일한 식수였는데 바닥이 노란색이었다. 의심스러웠지만 다행히 아무도 탈이 나지 않았다.

 

너덜지대와 사태 지역을 통과하는 데만 3시간이 걸렸다. 지도에는 분명 계곡과 초원이 있었는데 우리 앞에는 돌과 메마른 흙뿐이었다. 점심이 한참 지나도록 물을 찾을 수 없었다. 극심한 배고픔에 무언가 위를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

 

▲베이스캠프부터 테리 라까지 계곡을 따라갔다. 철분이 많은 계곡은 피를 뿌려 놓은 듯 붉고 기괴했다./ 월간산

 

고개 위에 서자 다크룽 콜라Dhakrung Khola의 시커먼 물이 보였다. 저기까지 가면 방법이 있을까? 내려가는 길이 몹시 가팔라 수시로 미끄러졌다. 그런데도 포터들은 지팡이 하나 없이 잘 내려갔다. 나는 양쪽에 스틱을 잡고 좋은 등산화를 신었음에도 그들을 따라잡지 못했다.

 

“빠니 데레이 람므로 처이나(물이 많이 안 좋아요).”

 

짐을 내려놓자마자 계곡부터 다녀온 포터 라즈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들 중 가장 활달한 포터 데브는 작은 콜라병에 물을 담아왔다. 개흙을 잔뜩 풀어 놓은 것처럼 시커먼 물이었다. 그는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눈을 꼭 감고 코를 막았다. 그러더니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미 배고픔은 절정에 달했고, 물 한 방울 없이 6시간을 왔으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물이 있는 야영지에 도착한 건 오후 3시가 넘어서였다. 포터들은 늦은 점심을 준비하고 나는 국수를 끓였다. 한 줌밖에 안 되는 양이어서 국물도 남김없이 마셔버렸다. 배 고파서 쓰러질 것 같던 고통은 지난 일이 되었다. 걷다 보면 많은 것들이 자주 과거가 되었다.

 

▲테리 라 정상에서 셰르파와 포터들. 어려운 일정을 함께한 든든한 친구들이었다./ 월간산

 

◆사과 맛 하면 무스탕

 

해가 지면서 땅게Tangge(3,240m)가 나타났다. 1,000년 전 마을을 만난 듯 우리는 땅게로 빨려들었다. 마을 위로는 오래된 사원의 흙기둥 같은 절벽이 병풍처럼 서 있었다. 오랫동안 바다 속에 있던 지구의 속살이 이러할까.

 

어디에도 입구가 없는데 절벽 가운데 뻥 뚫린 동굴들도 신비함을 더했다. 먼 옛날 무스탕 사람들은 절벽의 동굴에서 살았다고 한다. 지금처럼 집을 짓고 산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4년 전 네팔에서 처음 찾은 곳이 무스탕이었다. 그때 이틀간 머물렀던 로지Lodge(여행자 숙소)를 다시 찾아갔다. 그 사이 로지에는 샤워실이 생겼다. 제공된 물은 양동이 하나가 전부였지만 물이 귀한 무스탕에서는 그마저도 황송했다.

 

휴일 아침. 마을은 한창 추수 시기라 바빴다. 포터들은 로지 주인을 도우러 들에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들은 메밀같이 생긴 작물을 잔뜩 지고 나타났다. 말 3마리는 마당 가운데 박혀 있는 말뚝을 중심으로 빙빙 돌았다. 그 아래는 마른 작물이 놓여 있었다. 말을 이용한 타작 방법이었다.

 

무스탕은 사과가 유명했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잘 익은 사과를 보자 침이 고였다. 마을 여자에게 사과를 샀다. 사과는 아이 주먹 정도 크기였지만 맛은 최고였다. 한 번도 개량하지 않은 사과 본연의 맛이랄까.

 

루리 곰파Luri Gompa 야영지를 지나자 5시간 가까이 오르막이 이어졌다. 쉬는 동안 포터들을 기다리는데 셰르파 겔젠이 누군가와 한참 통화했다. 그는 전화를 끊더니 친구가 타시랍차 라Tashi Labtsa La(5,760m)에서 죽었다며 허무하게 웃었다. 그리곤 걷는 동안 ‘옴마니밧메훔(불교 진언)’을 중얼거렸다. 나는 말없이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다모다르 쿤드Damodar Kund(4,890m)까지는 5,000m가 넘는 고개를 2개 지나야 했다. 계곡부터 시작된 고개는 올라갈수록 시원하게 트였다. 뒤로는 티베트 고원이, 오른쪽으로는 다울라기리Dhaulagiri산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량한 무스탕과 그 위로 솟은 하얀 다울라기리가 묘한 조화를 이뤘다. 소의 등처럼 밋밋한 곳에 도착하자 작은 돌탑이 보였다. 고개라는 뜻이었다.

 

신성한 호수인 다모다르 쿤드에는 3개의 호수가 있었다. 8월 음력 보름이면 큰 축제가 있어 힌두교도들은 물론 불교도들까지 찾아오는 곳이다. 네팔 최후의 오지라 불리는 무스탕에서도 무척 외진 곳이라 다른 순례지에 비해 찾는 이가 덜하다.

 

무스탕은 구름이 히말라야산맥을 넘지 못하는 비 그늘Rain Shadow 지역이다. 그런데도 사태로 무너진 곳이 제법 있었다. 엄청난 진흙더미가 길을 쓸어버린 곳을 지나는데 아찔했다. 흙더미는 계곡 아래까지 흘러내려와 물길을 막아 버렸고 그 자리에는 큰 호수가 생겼다.

 

▲해가 지면서 땅게마을이 나타났다. 1,000년 전 마을을 만난 듯 우리는 땅게로 빨려들었다./월간산

 

베이스캠프를 지나자 빙하가 나타났다. 지금까지가 황량한 길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얼음길이었다. 황량한 땅과 새하얀 빙하가 공존하는 곳. 한 장면만 떼어놓고 보면 다른 행성이라 해도 믿을 것 같았다.

 

빙하에는 하얀 세락Serac(빙하가 떨어질 때 생겨난 빙벽이나 빙탑)이 장벽처럼 이어져 있었다. 가운데 도로처럼 뚫려 있어 우리는 그 길을 따라갔다.

 

얼음지대를 지나 큰 바위산 아래에 도착했다. 5,800m의 하이캠프였다. 온통 돌무더기인 야영지에 텐트 한 동 들어갈 공간이 몇 군데 있었다. 유일한 식수는 얼음이 녹아 고인 물이었다. 왠지 긴 밤이 될 것 같았다.

 

▲신성한 호수 다모다르 쿤드. 신기하게도 땅 속에서 물이 올라왔다./ 월간산

 

간밤엔 뭔가 가슴을 누르는 것처럼 답답했다. 숨이 막혀 잠깐 일어나 앉기도 했다. 온도계는 영하 20도℃를 가리켰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보니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짐을 꾸리면서도 자꾸 뭔가를 빠트리는 통에 몇 번이나 텐트 안을 들락거렸다.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데는 추위만 한 것도 없었다. 시간마저 얼어버린 듯.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아침은 괴로웠다. 너무 추워 아픈 손가락을 주무르며 천천히 걸음을 뗐다. 나의 고통과는 상관없이 하늘은 티 없이 맑았고, 설원은 푸르게 빛났다.

◇6,042m 고개에 오르다!

 

사리붕 라Saribuna La(6,042m)에는 흔한 돌탑도 초르텐(불탑)도 없었다. 하얀 눈으로 덮인 밋밋한 고개에선 북쪽으로 티베트 고원과 다모다르 히말, 남쪽으로는 안나푸르나 산군이 보였다. 고개 하나를 두고 두 곳의 풍경은 참 달랐다.

 

금방일 것 같은 푸Phu마을(4,100m)은 가도 가도 나오지 않았다. 비슷한 풍경이 연속되어 환상방황(방향 감각을 잃고 같은 지점을 맴도는 일)을 하는 것 같았다.

 

푸마을은 좁은 언덕 위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성 같았다. 좁은 골목으로 집과 집이 연결되어 미로 같기도 했다. 우리는 마을에서 마지막 야영을 하고 첫날 올라왔던 길로 하산했다.

 

그렇게 무스탕에서 가장 높은 고개 2개를 넘었다. 그곳에 뭔가가 있는 것도, 도전해 보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지도를 보며 길을 연결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이제 궁금증이 풀렸다. 결국 길은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무스탕은 사과로 유명했다 아이주먹 정도로 작앗았지만 사과 본연에 맛 그대로 였다

 

▲언덕 위의 푸마을은 마치 하나의 성 같았다. 좁은 골목으로 집과 집이 연결되어 미로 같았다./ 월간산

 

◆트레킹 정보

 

* 필자가 다녀온 코스 : 메타(3,560m) ~ 나르(4,110m) ~ 랍세 콜라 캠프(4,300m) ~ 테리 라(5,595m) ~ 하이캠프(5,028m) ~ 사메나 콜라 캠프(4,300m) ~ 땅게(3,240m) ~ 야라(3,650m) ~ 큐무파니 패스(5,297m) ~ 다모다르 쿤드(4,890m) ~ 하이캠프(5,800m) ~ 사리붕 라(6,042m)-푸(4,100m) ~ 코토

 

* 트레킹 거리는 약 200km로 이동 시간과 예비일을 포함해 25~28일 정도 필요하다.

 

* 안나푸르나 허가 외에 나르-푸와 무스탕 지역의 특별 허가가 필요하며 가이드 또한 필수다.

 

* 로지(숙소)가 없는 지역이 많아 야영 장비를 챙겨야 한다.

 

글.사진출처 / 월간산 / 거칠부(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