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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아시아****국가들/⊙일본***규슈(九州)

규슈(九州)ㅡ야마구치(山口)ㅡ메이지유신의 策源地(책원지), 야마구치를 가다

by 삼수갑산 2022. 2. 8.

야마구치ㅡ메이지유신의 策源地(책원지), 야마구치를 가다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이끈 인재들을 길러낸 쇼카손주쿠(松下村塾).

 

2019년 11월 말 지인(知人)들과 함께 야마구치(山口)의 하기(萩)와 시모노세키(下關)를 여행했다. 야마구치의 옛 이름은 조슈(長州). 사쓰마[薩摩·지금의 가고시마(鹿兒島)]와 함께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양 축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은 인구가 5만명도 안 되는 작은 도시가 총리를 네 명(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데라우치 마사타케, 다나카 기이치)이나 배출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조슈가 메이지유신의 주역이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1859)과 다카스기 신사쿠(高衫晉作·1839~1867) 두 사람이었다.

 

▲원본출처 / naver 백과

▲요시다 쇼인이 14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던 노야마옥(野山獄).

 

조슈번(藩)의 병학(兵學)사범이었던 젊은 무사 요시다 쇼인은 1854년 3월 미국 밀항(密航)을 시도하다가 실패한 후 하기(萩)에 있는 노야마옥(野山獄)에 수감됐다. 이곳에서 요시다 쇼인은 수인(囚人)들을 상대로 《맹자(孟子)》를 가르쳤는데, 이에 대한 소문이 나면서 일반인들까지 강의를 들으러 모여들었다

 

14개월 후 가택연금(軟禁)으로 형(刑)이 완화되자 요시다 쇼인은 1857년 11월 집 근처에 쇼카손주쿠(松下村塾)를 개설했다. 조슈번의 공립학교인 메이린칸(明倫館)에서 사무라이의 자제들만을 받아들인 것과는 달리, 쇼카손주쿠는 빈부귀천(貧富貴賤)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을 받아들였다.

 

이후 1년2개월 동안 90여 명의 학생들이 쇼카손주쿠를 거쳐 갔다. 이들 중에는 후일 총리(1·5·7·10대)와 조선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일본 군벌(軍閥)의 우두머리로 3·9대 총리를 지낸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 등이 있었다.

 

▲조슈번의 공립학교였던 메이린칸(明倫館). 그 후 메이린칸(明倫館)소학교가 들어섰다가

지금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기념관이 되어 있다.

 

요시다 쇼인은 막부 요인 암살을 기도한 죄로 1859년 10월 26일 처형됐지만, 그의 가르침은 살아남았다. 평소 요시다 쇼인은 기득권 유지에 급급해하는 조슈번의 상급 사무라이들에게 실망해서 ‘초망굴기(草莽屈起)’를 외쳤다.

‘깨어 있는 민초(民草)들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요시다 쇼인의 수제자인 다카스기 신사쿠는 1864년 12월 16일 시모노세키의 고잔지(功山寺)에서 기병대(奇兵隊)라는 민병대를 이끌고, 도쿠가와 막부에 순종하는 조슈번의 속론파(俗論派) 정권을 타도하기 위한 쿠데타를 일으켰다.

 

기병대는 사무라이만이 무장을 한다는 봉건시대의 철칙을 깨고, 평민들까지도 부대원으로 받아들인‘초망들의 군대’였다. 이토 히로부미, 을미사변의 주범 미우라 고로(三浦梧樓)가 이때 활약했다.

 

▲시모노세키 고잔지에 있는 ‘회천의 기수’ 다카스기 신사쿠의 동상.

 

다카스기 신사쿠(高杉 晋作)의 쿠데타가 성공한 덕분에 조슈는 후일 사쓰마와 함께 메이지유신이라는 역사의 무대에 주연(主演)으로 설 수 있었다. 역사의 물굽이를 바꾼 다카스기 신사쿠는 ‘회천(回天)의 기수’로 일컬어진다.

메이지유신 이후 조슈 출신들은 일본 정치를 좌우했다. 미우라 고로, 가쓰라 다로(桂太郞),이토 히로부미, 초대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 등 우리에게 익숙한 조선 침략의 원흉들이 조슈 하기 출신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의 침략주의는 요시다 쇼인, 다카스기 신사쿠가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이었다.

 

▲시모노세키 일대를 다스렸던 조후 모리(毛利) 씨의 저택은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하다.

 

오늘날 하기와 시모노세키는 ‘유신’으로 먹고산다. 하기의 시립병원에는 ‘건강유신’, 토종닭 전문음식점 앞에는 ‘지계(地鷄)유신’이라는 배너가 걸려 있을 정도다. 시모노세키의 다카스기 신사쿠 사망지 인근에 있는 허름한 불고깃집의 이름은 ‘신사쿠’였다.

시모노세키는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의 지역구이기도 하다. 아베 신조의 ‘신(晉)’은 다카스기 신사쿠에게서 따온 것이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요시다 쇼인이다. 2015년 7월 아베 총리는 오랜 노력 끝에 쇼카손주쿠를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문화유산’의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성공했다

 

▲다카스기 신사쿠는 폐병을 앓다가 28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그가 사망한 곳에 세워진 비석 옆에는 ‘유신의 발상지 시모노세키’라는 배너가 휘날리고 있다.

▲시모노세키 단노우라 해변에는 1864년 8월 조슈번과 4개국(미국·영국·프랑스·네덜란드) 연합함대 간의

전쟁 당시에 사용했던 해안포의 복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시모노세키 조후(長府)에는 예스러운 예쁜 골목길이 많이 남아 있다.

 

▲시모노세키와 규슈의 모지(門司)를 연결하는 간몬대교.

 

▲시모노세키 가메야마하치만구(龜山八幡宮)신사에서 발견한 에마(繪馬·신사나 절에서 소원을 적는 팻말).

홍콩의 반중(反中)시위를 지지하는 글귀가 적혀 있다.

 

출처 / chosun.com / 월간조선 1월호 / 글.사진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