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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ㅡ사라고사(Zaragoza)ㅡ고야(Goya)가 그린 천장화가 있는 필라르 성모성당

삼수갑산 2021. 12. 9. 20:26

사라고사(Zaragoza)ㅡ필라르 성모성당 

▲필라르 성모 성당

 

사라고사(Zaragoza)는 아라곤 지방의 수도이자, 스페인의 5번째 대도시로 수도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 중간에 위치하여, 예로부터 자연스레 물류, 교통 중심지로 성장했다. 원래 이곳은 살두바라고 하는 켈트족의 거주지였다. 그러나 쎄싸라우구스따라고 하는 로마인들의 거주지로부터 '사라고사'라는 이름이 유래한다.

 

시내를 가로지르는 에브로(Ebro) 강가에 있는 필라르 성모 성당은 화려하게 타일을 붙인 11개의 둥근지붕으로유명하다.

필라르(Pilar)는 스페인어로 기둥이란 뜻인데, 옛날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신앙을 전파하러 온 야곱에게 기둥을 전했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이 성당의 천장에는 이 도시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인 고야(F.Goya:1746~1828)의 천정화가 있다. 스페인 시민전쟁시 이성당을 뚫고 들어온 포탄 2개가 다행히 불발이 되었는데. 고야가 그린 프레스코화는 오늘날까지 무사히 보전되었다.성당 내부에 있는 ‘산따 까비야’는 벤뚜라 로드리게스의 작품으로 빛나는 은과 꽃들 사이의 기둥위에 작은 성모상이 있다.

 

성당 한 켠의 작은 보석박물관에는, 역대 성당 주교들의 장신구, 18C 귀족들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기증한 각종 보석들이 전시되어있다. 그중에는 에바 페론의 귀걸이도 있다.

 

▲필라르 성모 성당

 

▲필라르 성모 성당

 

▲필라르 성모 성당

 

▲필라르 성모 성당

 

▲필라르 성모 성당

 

▲필라르 성모 성당

 

▲필라르 성모 성당

 

▲필라르 성모 성당

 

▲요한 바오로 2세 방문 기념

 

▲중앙제대, 황금관을 쓴 마리아 

 

▲중앙제대, 황금관을 쓴 마리아 

 

▲소 제대

▲소 제대

 

▲소 제대

 

▲성모성당내부

 

필라르 성당의 고야의 천장화 = 고야는 1780년 10월에서 1781년 6월 사이에 사라고사 소재 엘 필라르대성당의 천장화 [순교자들의 성모]의 스케치를 부탁받았다. 그러나 고야는 그의 처남이자 이 작업의 공식적인 책임자였던 프란시스코 바예우와 근본적인 개념에서부터마찰을 빚었다. 고야는 불만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스케치를 부분적으로 바꾸는 데 동의했다.

 

그렇지만 작업이 진행되어 가자 자신의 의견을 완강히 고집했다. 천장화는 당시의 전통대로 장엄하게장식할 계획이었으나 고야는 풍부한 표정이 드러나는 형상들과 시원스러운 구도, 부분에 대한 섬세한 관심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지닌 생각들은 멩스의 미학에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었고 이것은 바예우에게는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철칙이었다.고야는 공식적인 견해와 늘 대립했는데 그 이유는 항상 똑같았다.

 

그는 작품의 구도, 주제, 목적을 당시의 취향에 따라서 설정하려 했지만 자신의 성향을 숨기지 못했다. 결과는 매번 달랐고 항상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드리드의 산 프란시스코 엘 그란데 대성당을 위해 1784년에 완성한 ·[아라곤의 알폰소 4세에게 설교하는 성 베르나르디오]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고야의 인기는 갑작스럽게 높아졌다. 고야는 초상화 작업을 기꺼이 맡아 초상화를 그리면서 점점 더 큰 만족을 느꼈던 것 같다. 당시의 초상화 작품으로는 1774년 [돈 페드로 알칸타라 데 수이고의 초상], 1781년 [코르넬리우스 반 데르 고텐의 초상], 1783년 [플로리다블랑카 백작의 초상]이 있다

 

고야의 초상화 제작은 왕족, 특히 어린 돈 루이스의 초상화를 그리고 난 후 더욱 활발해졌다. 초상화 제작은 종교화의 경우와 동일한 스타일상의 선택을 하지만, 화가에게 심리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영역을 보다 넓게 제공한다.

 

▲천장화

 

▲천장화

 

▲천장화

 

▲고야의 천장화  

 

▲고야의 천장화

 

▲소 제대

 

▲소 제대

 

▲소 제대

 

▲소 제대

 

▲소 제대

 

▲소 제대

 

▲유리화

 

▲스페인 시민전쟁시 성당을 뚫고 들어온 포탄 2개   

 

▲고야(Goya)

 

프란시스코 데 고야는 1746년 3월 30일, 스페인 아라곤 지방의 사라고사 부근 펜테토도스 마을에서 평범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호세는 공증인의 아들로 도금업에 종사했고, 어머니 그라시아 루시엔테스는 펜테토도스 마을의 소지주 출신이었다.

 

고야가 이 마을에서 태어난 것은 사라고사에 살던 부모가 경제적 이유로 잠시 동안 이곳으로 이사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태어난 주변 환경은 18세기 스페인의 대부분 지방에서 볼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화려한 궁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영주들의 무관심 속에 버려진 메마르고 황량한 땅 이런 곳에서는 자연에 대한 관찰도, 시적인 감흥도 불가능했다.

 

이웃간의 접촉이 유일한 체험이었고, 이러한 접촉은 인간조건에 대한 인식을 눈뜨게 했다. 화가로서 고야가겪었던 여우곡절과 다양한 체험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와 작품은 스페인적인 토양에 근거한다그는 전형적인 스페인 사람이었으며 그의 삶 또한 다분히 스페인 사람으로서의 삶이었다.

 

▲고야(Goya)

 

▲고야(Goya) 조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