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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ㅡ히잡 안써 체포된 자매의 죽음, 이란 뒤덮은 여성들의 분노

by 삼수갑산 2022. 9. 24.

히잡 안써 체포된 자매의 죽음, 이란 뒤덮은 여성들의 분노

한 여성의 죽음이 불 지핀 분노

 

이란에서 젊은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아 체포된 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해 연일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슬람식 강경 통치와 억압에 지친 이란인들의 분노가 표출되면서 이번 시위가 이란 정권을 흔들 뇌관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일(현지시간) 이스탄불 이스티클랄 거리에서 시위자들이 테헤란에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된 후 사망한 이란여성 마흐사 아미니를 지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마흐사 아미니(22)는 지난 13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히잡(얼굴을 제외한 머리와 목 등 상반신을 가리는 이슬람 여성 복장)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체포 3일 후인 지난 16일 혼수상태에 빠진 후 숨졌다.

 

그가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사진은 소셜미디어에서 활발히 공유되며 경찰의 가혹행위 의혹을 키웠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지난 주말 수도 테헤란을 비롯해 아사니의 고향인 사케즈 등 전역에서 시위가 일어났으며, 아미니의 이름은 트위터에서 500만번 이상 언급됐다.

 

시위는 시간이 갈수록 과격해지고 있다. 파스통신은 지난 17일 사케즈에서 아미니의 장례식에 이어 열린 시위에서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했다고 보도했고, 현지 언론 메흐르뉴스는 시위대가 주지사의 사무실에 돌을 던졌다고 전했다.

 

소셜미디어에 게시된 시위 현장 영상을 보면 경찰과 대치한 시위대는 히잡을 불태우며 “우리 자매를 위해 복수하자”고 외쳤다.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아 체포됐다가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의 사건에 분노한 시민들이 19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집회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시위대의 사망과 부상 또한 속속 보고되고 있다. 이란의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인권단체 헹가우는 시위에서 6명이 숨지고 450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21일 밝혔다.

 

한편 이스마일 자레이 쿠샤 쿠르디스탄주 주지사는 “최근 벌어진 시위로 3명이 숨진 것으로 파악했다”면서 “이들의 죽음은 모두 적들의 음모”라고 밝혔다. 이란 당국은 21일까지 이란 전역에서 최소 1000명의 시위대가 체포된 것으로 집계했다.

 

가디언은 젊은 여성의 죽음으로 이처럼 광범위한 저항이 일어난 건 2009년 이후 처음이라고 전했다. 이어 아미니가 경찰에게 끌려가는 장면이 2009년 6월 당시 네다 솔탄이 반정부 시위에서 저격수에게 총을 맞고 사망한 장면을 연상시킨다고도 분석했다.

 

2009년 이후 10여 년 사이 이란은 여성 및 반대세력에 대한 억압과 통제가 증가했다. 지난해 집권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강경한 시아파 해석에 근거해 도덕경찰의 권한을 확대해왔다.

 

이란은 1979년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끈 이슬람혁명(이란혁명) 이후 교육권, 참정권을 비롯한 여성의 권리를 제한했으며 공공장소에서 머리카락을 가리는 히잡을 의무화했다.

 

“폭력 없었다” 해명 불신···정권 향한 저항으로 확산

 

경찰 측 설명과 목격자, 유가족의 진술이 엇갈리는 점 또한 대중의 분노를 키우는 요인이다. 경찰은 재교육센터로 이송된 아미니가 쓰러지는 순간을 담은 폐쇄회로(CC)TV 영상을 공개하며 아미니의 사인이 심장마비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가 간질 등을 앓는 기저질환자였다고도 언급했다.

 

그러나 아미니의 가족은 아미니가 “완벽하게 건강했다”며 경찰 측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아버지 암자드 아미니는 “그 영상이 조작됐다고 믿는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파스통신에 밝혔다.

 

그는 “경찰서 마당뿐 아니라 차 내부의 카메라에서 찍힌 동영상을 요구했지만 답이 없다”며 “경찰이 아미니를 즉각 이송했더라면 살 수도 있었다”고 현지 매체에 말했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아미니의 시신을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며 “발에 멍이 든 것이 살짝 보였다”고도 했다.

 

아울러 당국이 시위대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아미니를 밤중에 매장하도록 압박했으나, 가족들이 설득해 오전 8시에 장례를 치렀다고 전했다.

 

▲구금 중 숨진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사진이 소셜미디어에서 공유되고 있다. 소셜미디어 갈무리

 

또한 목격자들은 아미니가 이송되는 동안 경찰 밴 안에서 구타를 당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경찰은 “잘못된 문제 제기다. 아미니는 구금 과정과 구금 이후 물리적으로 해를 입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란 정부는 아미니의 시신을 부검했으며, 검토를 거쳐 결과를 발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시위는 ‘아미니의 죽음’이라는 특정 사건으로 시작됐지만 정권을 향한 저항으로 확산하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시위 현장에서는 “독재자에게 죽음을”, “압제자에게 죽음을”, “하메네이를 끌어내리자”와 같은 구호도 나왔다.

 

온라인에선 이란 여성들이 긴 머리카락을 자르는 영상도 공유 중이다. 시위의 대부분은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를 겨낭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현지 언론과 소셜미디어에 따르면 시위대는 하메네이의 죽음과 후계자로 거론되는 그의 아들 모즈타바의 몰락을 외쳤다.

 

▲터키에 거주중인 한 이란 여성이 터키 이스탄불 이란 영사관 밖에서 마흐사 아마니를 추모하는 시위 도중 자신의 머리를 자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하디 개미 이란인권센터 이사는 “우리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미국에서 경찰이 비무장한 흑인 용의자를 체포하다 사망케 한 사건)과 같은 전국적인 반응을 목격하고 있다. 폭력과 지배층이 일반 시민을 죽이는 논리를 더는 감내할 수 없다는 국가적인 양심의 가책”이라고 NYT에 말했다.

 

시위가 5일째 잦아들지 않자 이란 정부는 이례적으로 유화적인 메시지를 내놨다. 하메네이는 유족들에게 대표단을 보내고 철저한 진상 조사를 약속했다. 모함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은 “이런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도덕경찰의 단속 및 조사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한 목소리로 이란 정부를 규탄하고 있다. 유엔인권사무소(OHCHR)는 20일 성명에서 도덕경찰이 최근 수개월 동안 거리 순찰을 확대했으며 ‘헐렁한 히잡’을 착용한 것으로 보이는 여성을 언어적, 신체적으로 괴롭히고 체포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여성의 얼굴을 때리고 곤봉으로 구타하고 경찰차에 던지는 등 폭력적 처우가 담긴 수많은 동영상을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나다 알 나시프 유엔 인권최고대표 대행은 “아미니의 비극적인 죽음과 고문 및 부당대우 혐의는 독립적인 주체가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의 이란 대사관 앞에 마흐사 아미니를 추모하는 사진이 놓여 있다. EPA 연합뉴스

 

로버트 맬리 미국 이란 특사는 지난 16일 트위터를 통해 여성의 기본권에 대한 부당한 폭력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어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이들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나세르 카나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에 대해 “이란의 내정과 관련된 미국 당국의 개입적 발언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미국이 이란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면, 수십 년간 이란에 대한 잔인하고 일방적이며 불법적인 봉쇄를 해제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가디언은 “이란 지도자들은 그들이 억누를 수 없는 거리를 두려워하고 있다. 정권이 까다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글.사진출처 / kyunghyang.com / 김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