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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 아시아****국가들/⊙중국****서북지방

간쑤성(甘肅省)ㅡ실크로드. 란저우(蘭州)ㅡ병령사 석굴(炳靈寺 石窟).

by 삼수갑산 2021. 8. 27.

실크로드ㅡ란저우(蘭州)ㅡ병령사 석굴(炳靈寺 石窟). 

▲6굴. 얼굴이 둥글고 입, 눈, 코가 작으며 표정이 온화합니다.

 

란저우(蘭州)는 감숙성(甘肃省)의 성도(省都)로, 황하 문명의 발원지로서 실크로드의 주 교역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곳이며, 란저우에서 둔황(敦煌)으로 가는 유일한 길인 하서주랑(河西走廊)이 있는 곳입니다.

 

고대에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이어 주던 실크로드 상의 주요 도시이며 동시에 고비 사람 북쪽의 몽골 고원의 유목민과 칭하이(靑海) 지방의 티베트 족을 이어주던 연결지로서 사통팔달의 요충지였습니다.

 

기원전 2세기인 한(汉) 나라 때부터 감숙성에 세워진 여러 도시들이 본격적으로 이용되면서 여행 중인 상인들의 숙박과 지친 말과 낙타 등을 바꿔주는 교통도시로 발전하였고, 또한 새로운 사상과 상품이 중국 내외부로 들어오고 나가기 전에 걸러지는 중요한 역할을 한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그로 인해 투르트, 위구르, 티베트, 흉노와 중원(중국)이 서로 치려고 할 때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전략의 요충지이자 교역로이기도 해서 목구멍 같은 곳이라 하여 ‘인후부(咽喉部)’라고불리기도 했습니다. 십 수세기 동안 벌어진 전쟁으로 인해 이 곳 감숙성을 이들 여러 소수 민족들의 향이기도 합니다.

 

중국인들은 이 감숙성 지방을 허시(河西)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한강을 중심으로 지역을 나누어 지칭하는 것처럼 황하(黃河)의 서쪽에 위치한 지방이라는의미의 중국인들의 정서적 명칭입니다.

 

란저우(兰州)에서 서남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용징(永靖)현에 있는 병령사(炳灵寺)는 서기 420년에 창건 되었으며, 서진(西秦)시대부터 시작된 서북 불교 미술의 흔적을 살펴 볼 수 있는 곳으로,5개 북방 민족(흉노, 선비, 갈, 강, 저)에 의해 어지럽던 5호 16국 시대 당시 북방 민족들이 중국인들을 정신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도구로 불교를 전파하면서 서북 지역에 수많은 석굴을 개착하였는데, 이곳도 그 중에 한 곳입니다.

 

석굴은 주로 당(唐)나라 때 조성 된 것으로 지금은 석불 694개, 점토 불상 82개, 벽화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가장 오래 된 것은 북위(北魏) 시대 것이고, 가장 최근의 것은 초기 청(淸) 나라 때 것입니다.

 

당 나라 때까지는 영안사(灵安寺)라고 불리었으나, 후에 불교 왕국 티베트가 이 지역에서 세력을 얻으면서 티베트 어로 ‘수천 불상의 자리’라는 의미의 ‘빙링(炳灵)’으로 불리게 되었는데,현재 중국 한자로 쓰는 빙링은 티베트 발음을 그대로 음차해서 표기 한 것으로, 본래 빙링의 뜻을 담아 의역한 천불동(千佛洞)이라는 용어는 이후 중국에서는 불교 동굴 사원 군을 일컫는 일반적인 명칭으로 고착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천개가 되지 않는 불교 동굴 사원도 천불동이라고 지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기 때는 이곳 석굴 밑에까지 물이 차서 경치가 무척 좋으나 이곳까지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7굴. 불상

 

란저우에서 약 2시간가량(관광버스나 버스가 많이 없고 시간도 많이 걸려 택시 대절시) 차를 타고 유가협(刘家峡) 댐까지 가서는 다시 쾌속선(배)을 타고 약 1시간가량 가야 이곳에 도착합니다.

 

천천히 가는 유람선 같은 배도 있으나 듣기에 편도만 약 3시간가량 걸려서 시간이 없는 사람은 비싸더라도 쾌속선을 대절해 타야합니다.

 

저는 여행사를 통해 투어를 갔었습니다. 비용은 1인당 300위안이었고, 이 비용 안에는 교통비, 가이드 비, 유가협 댐에서 병령사 석굴까지 가는 쾌속선 비, 입장료까지 모두 포함된 금액입니다.단, 식대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개방되어 있는 석굴 외에 다른 석굴을 관람하려면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하는데, 개방되어 있는 석굴만 봐도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8굴. 얼굴과 손이 없네요.

 

하서주랑(河西走廊)=중원에서 서역으로 갈 때나, 서역에서 중원으로 올 때 반드시 걸쳐야 하는 곳인데, 그 이유는 이곳 이외에 길이 없는데다 양쪽으로 치리엔산맥(祁连山脉)과 또 다른 산맥들이 둘러쳐져 있어 기다란 복도 같은 곳이라 하였고, 또 황하 서쪽에 있는 긴 복도라는 뜻으로 불렸습니다.

 

한족과 소수민족의 문화가 혼합되어 독특한 문화 양식을 보여주는 곳으로, 이곳에 오면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까지의 중국인과 서양인(위구르족, 회족, 장족, 몽고족, 카자흐족 등) 같은 사람들이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0굴. 청나라 말기에 손상된 굴입니다. 위에 나무 벽화를 중심으로 찍은 것입니다.

 

▲22굴. 온전히 보존된 굴입니다

 

▲28굴. 온전히 보존된 굴입니다.

 

▲64굴. 1불, 2 보살, 2천왕으로 구성된 굴입니다.

 

▲69굴. 천수관음상입니다

 

▲169굴. 병령사를 대표하는 대불로 높이 27m의 마애석조대불(摩崖石雕大佛)입니다.

 

▲16굴로 와불(臥佛)입니다.

 

169굴 대불 건너편에 있는 와불로서 발견 당시 목이 끊기고 가슴에

구멍이 나 있었으나 다시 보수한 것으로 북위(北魏)시대 작품입니다.

 

▲노군동(老君洞) 불상들입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이지만, 이곳도 공개하는 굴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그나마 좋았던 점은 공개하는 굴은 이렇게 온전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 놓았다는 것입니다.찍을 수 있는 굴 중에서 제대로 찍을 수 있는 것만 찍을 것입니다.